안녕하세요, 행복리부팅의 운영자 행복 리부트입니다. 오늘은 우리를 고대 로마의 광장과 바티칸의 엄숙한 법정으로 안내할 분을 모셨습니다. 바로 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이자, <라틴어 수업, 2017>으로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지혜의 불을 지핀 한동일 교수입니다.

그는 죽은 언어라 불리는 라틴어를 통해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는 행복의 비밀을 전합니다. 로마인들이 치열하게 고민했던 삶의 흔적과 한동일 교수가 로마 유학 시절 겪었던 눈물겨운 에피소드를 곁들여 품격 있는 행복론을 소개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
한동일 교수의 강의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호크 아게(Hoc age)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것을 하라, 즉 지금 네가 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로마인들은 제사를 지낼 때 사제가 이 말을 외치면 모든 잡념을 버리고 의식에만 집중했습니다. 한 교수는 이것이 행복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강력한 근육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늘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소모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행복은 위대한 성취가 아니고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책장 넘기는 소리, 입 안에 머무는 차 한 잔의 온기에 온전히 머무는 것입니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강조했듯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일들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지금, 여기의 나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자 행복입니다.

바티칸 법정의 이방인이 흘린 눈물
한동일 교수의 삶 자체가 거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는 서양인들도 통과하기 어렵다는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의 변호사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동양인으로서는 최초의 시도였죠. 로마 유학 시절, 그는 매일 엄청난 양의 라틴어 문헌과 법전을 파고들었습니다. 언어의 장벽은 높았고 고독은 뼈를 깎는 듯했습니다. 한번은 너무 힘들어서 로마의 한 성당 구석에서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성당 벽에 새겨진 문구를 보았습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역설적이게도 이 문구가 그를 살렸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는 공포가 아닌 위로가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이러한 고통이 과연 그렇게 절대적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는 다시 펜을 잡았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삶은 역설적으로 오늘 하루를 가장 뜨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습니다.

내 삶에 대하여
한동일 교수는 행복을 공부하는 태도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공부는 시험 성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죠. 라틴어 명칭인 스투디움(Studium)의 어원처럼, 무언가를 향한 열정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는 로마인들이 자신의 삶을 한 편의 긴 에세이처럼 여겼다고 설명합니다. 라틴어로 데 메아 비타(De mea vita)는 내 삶에 대하여라는 뜻입니다. 로마의 지성인들은 매일 밤 자신이 보낸 하루를 돌아보며 이 문장 아래 글을 남겼습니다.

행복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포장이 아닙니다. 비록 실수하고 좌절했을지라도, 오늘 나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대했는가? 를 스스로에게 묻는 정직한 시간 속에 행복이 있습니다. 이는 중세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통해 신과 자신 앞에 단독자로 섰던 그 치열한 성찰의 시간과 닮아 있습니다.

내 운명을 사랑하는 품격
한 교수가 전하는 로마인의 지혜 중 가장 울림이 큰 것은 역시 아모르 파티(Amor Fati)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죠.
많은 사람이 아모르 파티를 에라 모르겠다, 즐기자는 식의 낙천주의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한 교수는 이를 훨씬 더 깊은 수용의 미학으로 해석합니다. 내 삶에 닥친 고난,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불행까지도 내 삶의 소중한 일부로 껴안는 태도입니다.

그는 바티칸 변호사로서 수많은 사람의 갈등과 아픔을 지켜보았습니다. 그가 발견한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삶의 비극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나의 삶이다라고 긍정하며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태도, 그 품격 있는 용기가 바로 행복의 본질입니다.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한동일 교수의 행복론은 마지막 문장으로 귀결됩니다. 둠 스피로 스페로(Dum spiro, spero), 즉,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는 뜻입니다. 라틴어는 이미 사라진 언어일지 모르지만, 그 언어에 담긴 로마인들의 고뇌와 지혜는 오늘 우리를 리부트합니다. 행복은 완벽한 환경이 갖춰졌을 때 찾아오는 손님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나를 인정하고, 고통스러운 운명과 악수하며,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호크 아게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행복 리부트 독자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 한구석에 라틴어 한 문장을 심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 하루,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서 충분히 공부하고 사랑했는가? 이 질문 하나가 여러분의 인생을 가장 로마인다운 기품으로 가득 채워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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