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시대의 거인, 이어령 박사를 모셨습니다. 이 박사님은 언어의 마술사였고, 우리 삶의 아주 사소한 틈새에서 행복의 원형을 길어 올린 생명의 탐험가였습니다. 이 박사님의 파란만장한 에피소드와 그 속에 녹아 있는 행복의 철학을 더욱 생생하게 리부트해 드립니다.

굴렁쇠 소년 뒤에 숨겨진 정적의 미학
1988년 올림픽 개막식 당일입니다. 전 세계가 화려한 군무와 웅장한 음악을 기다릴 때, 이어령 박사는 고집스럽게 적막(profound silence, 寂寞)을 시전했습니다. 사실 반대 여론이 엄청났습니다. 전 세계가 보는데 꼬마 하나만 내보내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죠. 하지만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나타난 순간, 주경기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정적 속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을 마주했습니다. 이 박사님이 여기서 말하고자 한 행복은 소음으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남들의 시선과 소리에 갇혀 삽니다. 하지만 진짜 행복은 시끄러운 소리를 잠재우고, 나만의 굴렁쇠를 굴리는 평화로운 고독 속에 있음을 그는 전 세계에 증명해 보였습니다.

어머니의 문창지, 사이의 행복
이어령 박사가 평생 추구한 학문의 핵심은 사이(In-between)였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박사님은 어머니의 방 문창지를 바라보며 자랐습니다. 얇은 종이 한 장은 방 안과 밖을 완벽하게 단절하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바람이 불면 종이가 떨리고, 달빛이 비치면 방 안으로 은은하게 스며들었죠.

이 박사님은 깨달았습니다. 행복은 안도 밖도 아닌, 그 사이의 소통에 있다는 것을요. 디지털과 아날로그, 서양과 동양, 삶과 죽음, 이 박사님은 이렇게 상반된 것들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이 것들 사이에 문창지 같은 마음을 두고 서로를 스며들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한 디지로그(Digilog)적 행복의 정체였습니다.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입니다. 이 박사님의 디지로그적 행복은 차가운 기술의 세계 속에서도 인간의 따뜻한 감성과 느림을 잃지 않음으로써 삶을 더 넓고 깊게 누리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또한 디지로그적 행복은 빠름과 느림, 기술과 감성이 서로를 보완하며 완성하는 인간다운 삶의 조화입니다.

왜 라고 묻는 아이, 관습을 파괴하는 기쁨
이어령 박사는 학문의 길을 걷는 내내 관습의 파괴자였습니다. 이 박사님이 행복했던 순간은 남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에 물음표를 던질 때였습니다. 한번은 그가 한국인은 왜 젓가락질을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서양인들은 찌르는 포크를 쓰지만 우리는 집어 올리는 젓가락을 씁니다. 그는 여기서 상생과 조화를 읽어냈습니다. 포크가 공격적이라면, 젓가락은 음식을 배려하고 기다리는 도구라는 것이죠.

이 박사님에게 학문은 지루한 학습이 아니었습니다. 일상 속에 숨겨진 코드를 읽어내고, 그 속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를 발견하는 지적 유희였습니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평범한 젓가락질 한 번도 행복한 문화적 체험이 될 수 있음을 그는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 병상에서의 나뭇잎 수업'
생의 마지막에 이 박사님은 암과 싸우며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지금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멋지게 편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자에게 창밖의 나뭇잎을 보며 물었습니다. "저 잎이 왜 초록색인지 아나?" 제자가 생물학적인 답변을 하려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 저 잎은 지금 우주가 나에게 보낸 러브레터야."

이 박사님은 죽음이라는 불행 앞에서도 경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모든 고통을 지적 호기심으로 승화시킨 것이죠. 그는 행복이란 결국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능력임을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든 것은 선물이었습니다
이어령 박사의 마지막 글귀는 감사가 아닌 경이였습니다. 이 박사님은 우리가 내 것이라고 믿었던 지능, 건강, 재산이 사실은 잠시 빌려 쓴 선물이었다고 말합니다. 내 것이라고 움켜쥘 때는 불행하지만 선물로 받아들이는 순간, 세상 모든 것이 축제가 됩니다. 이 박사님은 대단히 특별하신 분입니다. 저와 같은 범부는 그 분의 말씀을 따라가기도 벅찹니다. 저는 그 분이 남기신 삶의 의미를 오래도록 가슴에 간직하고자 합니다.

다음 분은 <라틴어 수업, 2017>으로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지혜의 불을 지핀 한동일 교수입니다. 한 교수의 행복론은 우리의 마음에 큰 울림을 안겨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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