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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마음과 관계 속의 행복

성적 욕동과 행복

by 행복 리부트 2025. 10. 30.

통제 불능의 사고

최근 끔찍한 사고들이 뉴스를 뒤덮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불법 촬영, 스토킹 범죄들입니다. 한 개인의 성적 욕동이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공포를 줍니다. 사람들은 이 욕동을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혹은 추하고 더럽다고 말하며 금기시합니다. 하지만 이 욕동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능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식욕이나 수면욕과 같은 근원적인 에너지입니다. 이 힘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외면하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큰 폭발이나 왜곡을 초래할 뿐입니다. 이 글은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그 원초적인 본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성적 욕동이란

성적 욕동은 종족 번식만을 위한 욕구가 아닙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이 에너지에 리비도(Libido)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리비도는 삶의 에너지'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근원지가 바로 이드(Id)입니다. 이드는 우리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 덩어리입니다. 이드는 쾌락 원칙에 따라서만 움직입니다. 즉각적인 만족과 쾌락을 요구합니다. 성적 욕동은 이드의 가장 강력한 요구 중 하나입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욕은 가장 아래층, 생리적 욕구에 속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배고픔과 목마름과 같은 수준입니다. 이 힘은 좋고 나쁨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저 존재하는 자연입니다. 문제는 이 힘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습니다.

 

프로이트 주장한 이드(ID)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두 얼굴의 불꽃

이 강력한 에너지는 행복에 두 가지 극단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천국을 만들기도 지옥을 만들기도 합니다. 첫째, 왜곡된 욕동이 만드는 지옥입니다. 욕동이 이드의 쾌락 원칙에만 머무를 때입니다. 타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한 대상이나 도구로만 봅니다. 서론에서 언급된 범죄들이 바로 그 결과입니다. 혹은 범죄가 아니더라도 중독에 빠집니다. 성적 쾌락은 강력한 도파민을 분비시킵니다. 뇌는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됩니다. 현실의 인간관계는 시시해집니다. 그는 공허해지고 고립됩니다. 이것은 행복과는 정반대의 길입니다.

둘째, 통합된 욕동이 만드는 행복입니다. 성적 욕동은 친밀감의 가장 강력한 접착제입니다. 이것은 두 사람을 가장 가깝게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쾌락을 넘어 정서적 교감으로 이어질 때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아낄 때 이 욕동은 관계를 풍요롭게 합니다. 또한, 이 에너지는 활력의 원천입니다. 삶에 대한 의욕, 열정,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이것이 행복의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3. 억압이 아닌 관리

이 강력한 욕동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많은 사람이 솔루션을 억압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아야 한다",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가장 위험한 방법입니다. 억압은 화산의 분화구를 틀어막는 것과 같습니다. 내부의 압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압력은 언젠가 가장 약한 곳에서 터져 나옵니다. 그것이 신경증이 되거나 범죄가 됩니다. 해결책은 관리와 승화입니다. 첫째, '인정하기'입니다. 자신의 욕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이런 욕구를 가졌다." "이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정은 통제의 첫걸음입니다. 둘째, 연결하기입니다. 욕동을 쾌락(Id)에만 두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을 관계(Ego)와 존중(Superego)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나의 쾌락만큼 타인의 감정과 인격이 중요함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사랑입니다. 셋째, 승화(Sublimation)시키기입니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제시한 가장 건강한 방어기제입니다. 리비도(에너지)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 강력한 에너지는 꼭 성적인 방식으로만 풀리지 않아도 됩니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이 욕동을 창작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운동선수들은 이것을 경쟁과 훈련으로 승화시킵니다. 누군가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사용합니다. 넘치는 에너지를 생산적인 활동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성적 욕동을 운동으로 승화시키는 이미지

 

 

금기가 만든 비극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짚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 주제를 지나치게 금기시해왔습니다. 금기는 건강한 토론을 막습니다. 음지로 숨어든 욕동은 반드시 왜곡됩니다. 우리는 억압이 아닌 교육을 선택해야 합니다.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정상이지만, 남의 밥을 뺏는 것은 범죄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적 욕동을 느끼는 것은 정상이지만, 타인을 침해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이 경계를 명확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아니오의 의미를 무겁게 가르쳐야 합니다. 존중이 빠진 쾌락은 폭력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불의 주인

성적 욕동은 불과 같습니다. 불은 인류 문명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불로 음식을 익히고, 추위를 녹이고, 어둠을 밝힙니다. 하지만 통제되지 않은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재앙이 됩니다. 그 누구도 불이 위험하다고 해서 불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불을 다루는 법을 배웁니다. 성적 욕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데우는 난로가 될 수도, 우리의 삶을 태우는 화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행복은 이 원초적인 불을 꺼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그 불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뜨거운 에너지를 파괴가 아닌 창조와 연결에 쓸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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