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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맹자의 시대적 배경과 삶(1)

by 행복 리부트 2025. 10. 22.


혼돈의 세상, 전국시대의 개막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지 약 100년 후, 또 한 명의 위대한 사상가가 등장한다. 바로 맹자(孟子)다. 이름은 맹극(孟軻), 자는 자여(子輿). 그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더욱 강하게, 때로는 분노를 담아 세상에 외친다.맹자의 시대는 전국시대(戰國時代)다. 맹자가 눈을 뜬 시대는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보다 한층 더 지독한 혼란기였다. 춘추시대까지만 해도 제후들은 주나라 천자라는 희미한 권위를 명분 삼아 움직이는 시늉이라도 했다. 하지만 전국시대에 이르면 그런 최소한의 체면치레조차 사라진다. 세상은 오직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거대한 정글로 변했다.

혼란한 세상, 전국시대


춘추전국시대

중국 역사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강력했던 주(周)나라가 힘을 잃었다. 수도(낙읍)를 동쪽으로 옮기면서 그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춘추전국시대'라는 기나긴 혼돈이 시작된다. 이는 약 500년간 이어진 대격변기였다. 먼저 '춘추시대 (BC 770년 ~ BC 476년)'가 열렸다. 왕은 이름뿐이었고, 제후들이 실세였다. 대표적인 춘추 제후국으로는 제(齊), 진(晉), 초(楚), 오(吳), 월(越) 등이 있으며, 그들은 '패자(覇者)'가 되기 위해 서로 다투었다. 하지만 아직은 명분과 최소한의 예의가 남아있었다. 공자가 이 시대를 살며 '인(仁)'과 '예(禮)'를 외쳤다. 이후 '전국시대'는 더욱 잔혹해졌다. 이제는 생존을 건 '전쟁'뿐이었다. 일곱 개의 강대국, '전국칠웅'이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전국칠웅(戰國七雄)인 진(秦), 초(楚), 제(齊), 연(燕), 조(趙), 위(魏), 한(韓)나라이다. 철제 무기가 등장하고, 수십만 대군이 격돌했다.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냉혹한 시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극심한 혼돈 속에서 사상은 폭발했다. '제자백가(諸子百家)'가 등장한다. 공자, 노자, 묵자, 한비자 등 수많은 사상가들이 해법을 제시했다. 그들은 "어떻게 이 난세를 구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법가, 도가, 유가 등 다양한 철학이 이때 탄생했다.

춘추전국시대는 피로 물든 시대였다. 하지만 가장 역동적인 시대이기도 했다. 오래된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상과 기술, 제도가 태동했다. 결국 진(秦)나라가 이 모든 혼란을 끝내고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운다. 


 

이런 시대에 군주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땅을 빼앗고, 어떻게 하면 더 강한 군대를 키울 것인가. 그들은 이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았다.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남자들은 전쟁터로 끌려가 죽어 나갔고, 남은 사람들은 끝없는 세금과 부역에 시달렸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치였다. 바로 이런 암흑기에 맹자는 "아니다, 이게 아니다!"라고 외치며 등장했다. 모두가 힘과 이익(利)을 이야기할 때, 그는 홀로 인간의 선한 본성과 인의(仁義)를 부르짖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타오르는 촛불과도 같았다.

 

될성부른 떡잎

맹자는 기원전 372년경,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 근처의 추나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지만 몰락한 귀족의 후예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삶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단연 '맹모삼천지교(孟母三千之敎)'일 것이다. 이는  맹자의 위대한 인격이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일화다. 처음 그들이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어린 맹자는 매일 곡을 하고 장사 지내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맹모삼천지교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은 내 아이를 기를 곳이 못 된다"며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맹자가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또다시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으로 서당(書堂) 옆으로 집을 옮겼다. 비로소 맹자는 글을 읽고 예법을 따르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어머니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살 곳이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교육에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유명한 일화는 단기지교(斷機之敎)다. 맹자가 유학을 떠났다가 잠시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학문은 얼마나 나아갔느냐?"라고 묻자, 맹자는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라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 순간,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틀의 날실을 칼로 끊어버렸다. 깜짝 놀란 맹자에게 어머니는 엄하게 말했다. "네가 학문을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내가 짜던 베의 날실을 끊어버리는 것과 같다." 맹자는 어머니의 깊은 뜻을 깨닫고 다시 학문에 정진하여 대성하게 된다. 맹자의 뒤에는 이처럼 현명하고 단호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맹자는 스스로 공자의 사상을 잇는 '정통 계승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상계의 이종격투기

전국시대는 사상의 용광로이기도 했다.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저마다의 처방전이 쏟아져 나왔다. 맹자는 유가(儒家)의 대표 선수로서 다른 학파의 사상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그의 가장 큰 라이벌 중 하나는 농가(農家)의 허행(許行)이었다. 그는 "현명한 군주라도 백성들과 함께 밭을 갈아 밥을 지어 먹으며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핏 들으면 매우 평등하고 이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맹자는 이를 단호히 비판했다. "세상에는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大人)과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小人)의 역할 분담이 있는 법이다. 군주가 밭까지 갈면 어느 세월에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이는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주장이다. " 맹자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사회적 분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다른 강력한 적수는 묵가(墨家)였다. 묵가는 겸애(兼愛), 즉 내 부모와 남의 부모를, 내 나라와 남의 나라를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매우 박애주의적인 사상처럼 들린다. 하지만 맹자는 이를 "아비도 없는 주장(無父)"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사랑에는 순서와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내 부모를 먼저 사랑하는 마음(仁)이 있어야 그 마음을 남에게까지 넓혀갈 수 있다. 처음부터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무시하는 실현 불가능한 공허한 외침이라고 보았다. 맹자는 이러한 논쟁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어찌 논쟁을 좋아하겠는가? 마지못해 하는 것이다(予豈好辯哉 予不得已也)"라고 말했다. 맹자는 세상에 잘못된 사상이 넘쳐나 성인의 도(道)가 가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은 기꺼이 비판의 칼을 들 수밖에 없다는 비장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왕들을 꾸짖다

학문적 기반을 다진 맹자는 공자처럼 자신의 정치적 이상인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하기 위해 천하를 주유했다. 그는 여러 나라의 왕들을 만나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그가 처음 만난 양(梁)나라 혜왕은 대뜸 이렇게 물었다. "선생께서 천 리 길을 멀다 않고 오셨으니 장차 우리나라에 어떤 이로움(利)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맹자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찌 이로움(利)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그는 왕이 이익을 추구하면 신하와 백성들도 각자의 이익만을 좇게 되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고 설파했다. 군주가 먼저 인의를 실천하면 나라는 저절로 부강해진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제나라 선왕과 맹자

 

제(齊)나라 선왕과의 만남은 더욱 극적이다. 어느 날 왕이 "내게는 남에게 차마 말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있소"라고 했다. 제물로 끌려가는 소가 벌벌 떠는 것을 보고 불쌍해서 양으로 바꾸라고 명했다는 것이다. 맹자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왕의 그 마음이 바로 인(仁)을 행할 수 있는 단서입니다. 소에게는 미치는 은혜가 어찌하여 백성에게는 미치지 않습니까?" 그는 왕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연민의 불씨를 찾아내, 그것을 백성을 위한 정치로 활활 타오르게 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맹자 특유의 뛰어난 설득술을 보여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이상적인 주장은 현실 정치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왕들은 그의 말을 흥미롭게 듣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현실과 맞지 않는 이상론'으로 치부해버렸다. 오랜 유세 생활에 지친 맹자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과 함께 책을 쓰고 교육에 전념하며 생을 마감했다.

 

2등의 설움

공자와 마찬가지로 맹자 역시 살아생전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의 사후에도 그의 책 '맹자는 오랫동안 유교의 핵심 경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그저 공자의 여러 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그의 위상이 극적으로 바뀐 것은 천 년도 더 지난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서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가 '맹자'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주희는 공자의 논어와 함께 맹자의 사상이 담긴 맹자, 그리고 대학, 중용을 묶어 사서(四書)로 편찬했다. 이때부터 맹자는 유학자들이 반드시 공부해야 할 필독서가 되었다.

주희는 맹자를 공자 다음가는 성인, 즉 아성(亞聖)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2인자라는 의미지만, 사실상 공자와 동급의 위상을 부여한 것이다. 공자가 유교의 문을 열었다면, 맹자는 그 사상적 토대를 다지고 체계화한 인물로 재평가받았다. 특히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그의 성선설은 이후 유교 사상의 기본 전제가 되었다. 비록 천 년 세월이 걸렸지만, 맹자는 마침내 유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의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용기의 원천이 되고 있다.

 

동시대, 다른 거인들의 발자취

맹자가 중국에서 왕도정치를 설파하던 기원전 4세기,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위대한 지성들이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플라톤이 '아카데메이아'를 세우고 철인(哲人) 정치를 꿈꿨으며,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에서 수많은 학문을 집대성하며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남겼다. 맹자가 이상적인 군주의 '도덕성'에서 해답을 찾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정치 체제(politeia)'를 탐구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차이를 보인다. 두 사람 모두 '덕(virtue)'을 행복과 국가 운영의 핵심으로 보았다는 점에서는 놀라운 공통점을 지닌다. 바로 이 시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던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의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를 정복하며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맹자가 그토록 비판했던 힘에 의한 정복(覇道)을 통해 동서양을 융합하는 헬레니즘 시대를 열었다. 이상적 정치를 설파한 스승과 현실적 정복자가 된 제자의 길은 맹자와 전국시대 군주들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문화를 의미하는 헬라스(Hellas)에서 유래함. 헬레니즘 시대 (Hellenistic Period, BC 323년 ~ BC 30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에서 시작됨. 그는 마케도니아에서부터 이집트, 인도에 이르는 거대 제국을 건설함. 이로 인해 그리스 문화가 동방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 나감. 이 시대는 대왕이 사망한 기원전 323년부터 로마가 마지막 왕국을 합병한 기원전 30년까지 지속됨. 헬레니즘의 핵심은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의 융합임. 아테네 대신 알렉산드리아나 안티오키아 같은 새로운 도시들이 문화의 중심지가됨. 사람들은 거대한 세계를 무대로 하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즉 세계 시민으로 살았음.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개인의 내면적 평화를 중시하는 철학이 발달하였는 데,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가 대표적. 과학과 예술 분야에서도 큰 발전이 있었으며, 유클리드의 기하학과 아르키메데스의 물리학이 이때 탄생함. 헬레니즘 시대는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고 문명이 교류했던 역동적인 시기였음. 결국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흡수되며 그 막을 내림.


 

인도에서는 찬드라굽타 마우리아(Chandragupta Maurya)가 여러 왕국을 정복하고 최초의 통일 제국인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의 책사였던 차나키야는 '아르타샤스트라(Arthashastra, 실리론(實利論)이'라는 책에서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맹자와는 정반대의 현실적인 통치술을 역설했다. 이처럼 맹자의 시대는 전 세계적으로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제국과 사상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을 만들어가던 역동적인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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