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상 갈망
공자(BC.551-497)는 노나라의 창평향 추읍에서 태어났다. 그가 살았던 춘추 시대는 이름만 남은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끝없이 추락하던 시기였다. 과거 천자(天子)의 명으로 각 지역을 다스리던 제후들은 더 이상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그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키워 서로를 침략하고 정복하며 끝없는 전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나라가 생겨나고 사라졌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하극상(下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치는 현상이 만연했다는 점이다.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해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세상이었다. 기존의 사회를 지탱하던 혈연 기반의 봉건 질서와 예법은 설 자리를 잃었다.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나쁜지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을 상실한 채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러한 혼란은 새로운 사상의 등장을 촉발했다. 어떻게 이 혼란을 끝내고 안정된 사회를 만들 것인가?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시대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많은 사상가가 등장했으니, 이들을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부른다. 공자는 바로 이 제자백가 시대를 연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동시대, 세계는
공자가 중국 대륙에서 혼란을 바로잡을 방법을 고뇌하던 시기에 다른 문명권 역시 저마다의 역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당시 한반도는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한 고조선이 존재했다. 여러 부족 국가들이 각자의 세력을 형성하며 철기 문화가 서서히 유입되던 시기였다. 아직 통일된 강력한 국가는 형성되지 않았지만, 이후 삼국시대로 발전할 토대가 마련되고 있었다.
일본 열도는 오랜 조몬 시대를 지나 야요이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대륙으로부터 벼농사 기술과 청동기, 철기 문화가 전파되면서 수렵과 채집 중심의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이는 사회 구조의 변화와 인구 증가,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갈등을 야기했다.
지중해 세계에서는 고대 그리스가 문명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여러 폴리스(도시국가)가 경쟁하고 협력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특히 이 시기는 탈레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등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탐구하며 서양 철학의 기틀을 닦던 때였다. 또한 페르시아 제국의 부상과 그리스 세계와의 충돌(페르시아 전쟁)이 임박하며 동서양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가난한 몰락 귀족
공자의 가문은 본래 상나라 왕족의 후예였으나 그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몰락한 귀족 가문에 불과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 속에서 자랐다. 생계를 위해 창고를 관리하는 일이나 가축을 돌보는 일 등 여러 궂은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회고할 만큼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그는 정해진 스승 없이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구했다. 그의 지식은 시(詩), 서(書), 예(禮), 악(樂) 등 인간과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앎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지식과 이상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하여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고자 했다. 50대에 노나라에서 중도재(中都宰), 사공(司空), 대사구(大司寇) 등의 벼슬을 지내며 잠시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펼치는 듯했으나, 기득권 세력과의 갈등으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4. 천하를 떠돌며 이상을 전파
이후 공자는 약 14년간 제자들과 함께 천하를 떠도는 주유천하(周遊天下)의 길에 오른다. 위나라, 송나라, 진나라, 채나라 등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자신의 정치사상인 '덕치(德治)'와 '예치(禮治)'를 실현해 줄 군주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의 이상적인 주장은 당장의 부국강병을 원했던 제후들에게는 한가한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그는 때로는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식량이 떨어져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긴 유랑 생활 끝에 68세가 되어서야 고향인 노나라로 돌아왔다. 현실 정치에 대한 미련을 접은 그는 교육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제자로 받아들였다. 안회, 자로, 자공과 같은 뛰어난 제자들이 그의 곁에 모여들었다. 그는 시경, 서경, 역경 등 고대의 경전들을 정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하는 데 남은 생을 바쳤다.

당대의 평가와 후대의 위상
살아생전 공자는 실패한 정치인이자 시대를 모르는 이상주의자로 평가받았다. 그의 높은 이상은 혼란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영향력은 사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가르침은 제자들에 의해 논어(論語)라는 책으로 집대성되어 후세에 전해졌다. 그의 사상은 맹자와 순자에게 계승되어 유교(儒敎)라는 거대한 학문적 흐름을 형성했다. 마침내 한나라의 무제 때, 유교는 국가의 공식 통치 이념으로 채택되었다. 이때부터 공자는 '가장 위대한 스승(至聖)'이자 왕조의 정신적 지주로 격상되었다.
그의 사상은 이후 2천 년 넘게 중국을 비롯한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전반의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까지 깊숙이 뿌리내렸다. 비록 근대에 들어와 봉건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인간의 도리와 공동체의 가치를 강조한 그의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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