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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스토아 철학의 핵심(2)

by 행복 리부트 2025. 10. 22.


로고스(Logos)와 자연

스토아 철학의 세계관은 거대한 믿음 위에 서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우주는 무질서한 힘들의 우연한 집합이 아니라, '로고스(Logos)'라는 신적인 이성(理性)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운행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는 믿음이다. 이 로고스는 우주 만물에 스며들어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자 신의 섭리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설령 그것이 나에게 불행처럼 보이더라도, 전체 우주의 조화와 질서를 위한 필연적인 과정의 일부다. 지진이 일어나고, 역병이 돌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는 일조차도 이 거대한 로고스의 계획 속에서는 나름의 이유와 의미를 가진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사는 삶

 

이러한 세계관에서 최고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연에 따라 사는 삶(living according to nature)'이다. 여기서 '자연'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우주 전체의 자연', 즉 로고스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내게 닥쳐온 운명을 거부하고 저항하며 분노하는 대신, 그것이 우주적 질서의 일부임을 이해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다. 둘째는 '인간의 고유한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고유한 본성이 바로 '이성(reason)'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자연에 따라 산다는 것은, 충동이나 감정에 휘둘리는 대신,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삶을 의미한다.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우주적 관점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평정을 유지하려 했다. 그는 '명상록'에서 자신에게 말한다.  "모든 것은 서로 엮여 있으며, 그 연결은 신성하다." "너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태초부터 우주의 직물 속에 짜여 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은 고통을 우주라는 거대한 태피스트리(tapestry)의 한 조각으로 바라봄으로써 개인적인 번뇌를 넘어설 힘을 얻었다.

 

스토아 철학의 황금률

만약 스토아 철학 전체를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해야 한다면, 그것은 단연 노예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제시한 '통제 이분법(dichotomy of control)'이다. 이것은 스토아 철학의 가장 실천적이고 강력한 무기다. 에픽테토스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두 가지로 나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우리의 몸(병들거나 다치는  것), 재산(잃어버릴 수 있는 것), 명예와 평판(남들의 생각), 다른 사람의 행동, 날씨, 죽음 등과 같다. 한마디로 '나의 의지' 바깥에서 일어나는 모든 외부적인 사건들이다.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우리의 생각, 의견, 판단, 욕망, 의지, 그리고 어떤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우리의 '선택'이다. 오직 우리의 내면세계만이 우리가 100%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려고 애쓰며 인생을 낭비한다. 비가 오는 것을 멈추게 하려 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 하며, 늙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이러한 시도는 반드시 실패하고, 그 결과 우리는 좌절하고, 분노하며, 불안에 떤다.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기대를 깨끗이 포기하고, 오직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자신의 내면에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데서 온다. 교통체증에 갇혔을 때, "왜 길이 막히는 거야!"라고 분노하는 것은 길을 통제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다. 스토아 철학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길이 막히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차 안에서 불평하며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이 시간을 이용해 오디오북을 듣거나 차분히 명상할 것인가 하는 선택은 오직 나에게 달려있다.'

 

누군가 나를 모욕했을 때, 그 사람의 입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말을 나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모욕'으로 해석할지, 아니면 그저 '의미 없는 소음'으로 판단할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다. 에픽테토스는 말한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 이것이 바로 내면의 요새를 만드는 기술이다.

 

행복의 유일 조건, 덕

그렇다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내면세계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스토아 철학자들은 망설임 없이 '덕(德, aretē)'이라고 대답한다. 스토아 철학에서 '덕'은 행복한 삶(에우다이모니아, eudaimonia)을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라 '유일한 충분조건'이다. 즉, 덕만 있다면 다른 어떤 것이 없어도 완벽하게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네 가지 핵심적인 덕

 

그들이 말하는 네 가지 핵심적인 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혜(Wisdom)이다. 무엇이 좋고, 나쁘고, 그 사이인지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둘째, 정의(Justice)이다. 다른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하고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셋째, 용기(Courage)이다. 고통이나 위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이다. 넷째, 절제(Temperance)이다. 쾌락과 욕망을 이성으로 통제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이 네 가지 덕을 갖춘 '현자(sage)'는 완벽하게 행복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부, 건강, 명예, 쾌락 등은 무엇인가?  스토아 철학은 이것들을 '아디아포라(adiaphora)'라고 부른다. 즉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들' 또는 '무관심한 것들'을 말한다. 이것은 부나 건강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다. 스토아학파는 이것들을 다시 두 종류로 나누었다. '바람직한 무관심한 것(preferred indifferents)'과 '바람직하지 않은 무관심한 것(dispreferred indiff erents)'.  건강하고 부유한 것은 병들고 가난한 것보다 분명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행복이나 도덕적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억만장자 철학자 세네카의 삶은 이 개념을 탐구하는 완벽한 사례다. 그는 부를 누렸지만, 그것이 자신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부를 '언제든 떠나보낼 수 있는 손님'처럼 대하라고 가르쳤다. 현자는 궁궐에서도 행복할 수 있고, 오두막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반대로 어리석은 자는 어디에 있든 불행하다. 행복은 통장 잔고나 건강 검진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덕 있는 인격 안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토아 철학이 제시하는 가장 단호하고도 위안을 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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