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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스토아 학파가 전하는 행복 메시지(4)

by 행복 리부트 202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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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요새

우리는 스토아학파다. 우리의 목소리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것이다. 노예였던 에픽테토스, 부유한 정치가였던 세네카, 그리고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목소리가 함께 한다. 노예의 골방에서도, 화려한 권력의 중심에서도, 격렬한 전쟁터의 막사 안에서도 우리의 철학은 흔들림 없이 작동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지혜가 인간의 '조건'이 아닌,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온갖 폭풍우에 흔들리는 현대인들

 

우리는 2천년의 시간을 넘어 너희의 시대를 본다. 너희의 세상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와 같다. 정보의 홍수, 끊임없는 경쟁, 타인의 시선, 예측 불가능한 미래, 너희는 이 모든 파도에 휩쓸려 불안에 떨고 분노하며 절망한다. 너희는 폭풍이 멎기만을, 바다가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우리가 너희에게 주는 메시지는 폭풍을 멈추는 주문이 아니다. 바다를 잠재우는 기적도 아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너의 마음이라는 내면의 성채를 말한다. 외부의 어떤 파도도, 어떤 바람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절대적인 평온의 공간을 구축하는 법이다. 이것은 삶이라는 전쟁터에 나선 전사를 위한 무기이다. 이제부터 그 훈련을 시작하겠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따라오길 바란다.

 

위대한 해방

모든 훈련은 가장 중요한 제1원칙에서 시작한다. 이 원칙 하나만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너희는 지금 이 순간 고통의 절반 이상에서 해방될 수 있다.너희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의 착각에서 비롯된다. 바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제 너의 삶을 두 개의 상자로 나누어 보라. 첫 번째 상자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담는다. 두 번째 상자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담는다. 이것이 우리 철학의 전부이자, 가장 위대한 발견인 '통제의 이분법(Dichotomy of Control)'이다.

첫 번째 상자, 즉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들어가는가? 오직 세 가지뿐이다. 너의 생각(판단), 너의 의지(충동), 그리고 너의 행동. 이것만이 너의 완전한 왕국이다. 신들조차 이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 두 번째 상자, 즉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무엇이 들어가는가? 그 밖의 모든 것이다. 너의 육체(병들거나 다치는 것), 너의 재산(언제든 잃을 수 있는 것), 너의 평판(타인의 변덕스러운 생각), 타인의 행동, 날씨, 주식 시장,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포함한다.

 

너희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두 번째 상자에 담긴 것들을 첫 번째 상자에 넣으려고, 즉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려고 안간힘을 쓸 때 발생한다. 너는 교통체증에 갇혀 분노한다. 교통 흐름은 통제 불가능한 것이다. 너는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에 좋아요 가 적어서 실망한다. 타인의 반응은 통제 불가능한 것이다. 너는 상사가 너를 인정해주지 않아서 좌절한다. 상사의 마음은 통제 불가능한 것이다. 너는 늙고 병드는 너의 몸을 보며 절망한다. 노화와 질병은 통제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벽에다 대고 주먹질을 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픈 것은 너의 손이지 벽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와 평온으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다. 너의 모든 정신적 에너지를 첫 번째 상자, 즉 너의 생각과 판단과 행동에만 쏟아붓 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상자에 담긴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마치 너의 일이 아니라는 듯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교통체증에 갇혔는가? "이 상황은 내 통제 밖에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나의 판단은 내 통제안에 있다. 

차분히 음악을 듣거나, 오디오북을 듣겠다." 악플이 달렸는가? "그의 말은 내 통제 밖에 있다. 하지만 그 말을 '모욕'으로 판단할지, 아니면 '의미 없는 소음'으로 판단할지는 내 통제안에 있다." 이것이 진정한 해방이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마라. 너는 그럴 수 없다. 대신, 세상에 대한 너의 판단을 바꿔라. 그것만이 네가 가진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힘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그저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들을 '받아 들이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 그것들이 일어나야만 했던  필연적인 일이었음을 이해하라는 뜻이다.

 

자연따라 사는 삶

여기서 자연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바로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따라서 자연에 따라 산다는 것은, 너의 이성을 사용하여 지혜롭고 정의롭게, 그리고 타인과 협력하며 사는 것이다.

둘째는 우주의 본성이다. 우리는 우주 전체가 로고스(Logos)라고 불리는 거대한 이성적 원리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고 보았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설사 그것이 너에게 개인적인 불행으로 보일지라도, 이 거대한 전체의 조화와 완성을 위해 필요한 필연적인 과정의 일부다. 너의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했다고 치자. 이것은 너에게 닥친 불행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너를 더 강하게 단련시키거나, 너에게 더 맞는 다른 길을 열어주기 위한 거대한 계획의 일부일 수 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팔을 살리기 위해 손가락을 절단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연에 따라 산다는 것은, 통제할 수 있는 것, 즉 너의 판단과 행동은 너의 이성에 따라 최대한 탁월하게 만들고, 통제할 수 없는 것, 즉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외부 사건들은 그것이 우주의 이성(로고스)의 일부임을 믿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의 거대한 흐름에 너 자신을 조화시키는, 가장 적극적이고 지혜로운 삶의 태도다.

 

내면의 성채 

이제 너의 내면에 요새를 짓는 구체적인 건축술을 가르쳐주겠다. 이 요새의 벽돌은 덕(Virtue)이라고 불린다. 너희는 무엇이 좋은 것 이고, 무엇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마 부, 건강, 명예, 쾌락은 좋은 것이고, 가난, 질병, 불명예, 고통은 나쁜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다. 그것들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비아디아포라(adiaphora), 즉 무관한 것들이다.

오직 좋은 것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너의 덕(Virtue), 즉 훌륭한 성품이다. 여기에는 지혜, 정의, 용기, 절제라는 네 가지 핵심 덕목이 포함된다.반대로, 오직 '나쁜 것'도 단 하나뿐이다. 바로 너의 악덕(Vice), 즉 어리석고, 부당하며, 비겁하고, 방종한 성품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건강, 그 자체는 좋은 것이 아니다. 건강한 몸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 그 자체는 좋은 것이 아니다.  부유한 재산으로 타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삶, 에우다이모니아

 

그것들은 단지 재료일 뿐이다. 칼과 같다. 의사는 칼로 사람을 살리고, 강도는 칼로 사람을 해친다. 칼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칼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다. 건강, 부, 명예는 덕을 실천하는 데 유용할 수 있는 선호되는 무관한 것일 뿐이다. 질병, 가난, 고통은 덕을 실천하는 데 불편함을 주는 선호되지 않는 무관한 것일 뿐이다. 너는 선호되는 무관한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결코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너의 행복, 즉 너의 평온은 오직 너의 덕에만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재정의는 너를 모든 외부 조건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너는 부자가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다. 너는 가난 속에서도 정의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건강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너는 질병 속에서도 용기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의 행복은 더 이상 외부 상황에 저당 잡히지 않는다. 너의 성품이 너의 유일한 재산이 된다.

 

운명을 사랑하는 기술, '아모르 파티'

무관한 것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는 단지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그것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바로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애'다.아모르 파티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완전한 긍정이며,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그것을 회피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삼아 삶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어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너에게 닥치는 사건, 특히 너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애물'을, 너의 덕을 훈련시킬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그것을 환영하라.

스토아학파, 아모르파티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이성의 힘은 자신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재료로 전환 시킨다. 불길이 자신에게 던져지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 더 높이 타오르듯이 말이다" 너를 비난하는 동료가 있는가? 그는 너에게 인내와 관용을 훈련시킬 최고의 스승이다. 그에게 감사하라. 갑작스러운 실패로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는가? 이것은 너의 회복탄력성과 창의성을 시험할 완벽한 기회다. 이 도전을 사랑하라. 몸이 아파 계획했던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는가? 이것은 너에게 겸손과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 배움을 받아들여라. 너에게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네가 그 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스토아주의자에게는 나쁜 일 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덕을 실천할 새로운 기회만이 존재할 뿐이다. 장애물을 피하려 하지 마라. 장애물을 너의 길로 만들어라. 불평과 원망을 멈춰라. 그리고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이것이 강자를 위한 궁극의 삶의 기술이다.

 

정신의 갑옷,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

그렇다면 어떻게 이토록 강한 정신력을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꾸준한 '정신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훈련 중 하나가 바로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Prem editatio Malorum)', 즉 악의 예행연습이다. 이것은 매일 시간을 내어, 너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훈련이다. 이것은 너의 정신에 예방주사를 놓는 것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내가 만날 사람들이 무례하고, 이기적이며, 배은망덕할 것이라고 상상하라. 그러면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그럴 줄 알았지. 이것은 자연의 일부다"라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너의 직장을 잃는 모습을 상상하라. 너의 재산이 모두 사라지는 모습을 상상하라. 너의 건강이 나빠지는 모습을 상상하라. 너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는 너의 곁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명상하라.

현대인의 고통, 이분법의 혼란

 

이 훈련은 두 가지 엄청난 효과를 가져온다. 첫째, 실제로 불행이 닥쳤을 때 그 충격이 훨씬 덜하다. 이미 수없이 마음속으로 겪어본 일이기 때문이다. 너는 당황하지 않고, 훈련한 대로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둘째, 역설적으로 현재 네가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해 깊이 감사하게 된다. 직장이 있다는 사실, 건강하다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를 매일 아침 새롭게 깨닫게 된다. 이것은 너의 평온을 지키고, 너의 감사를 증폭시키는 가장 강력하고 실용적인 현실주의다.

 

영혼을 위한 개인용 드론

너는 사소한 걱정과 모욕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가? 그럴 때 이 훈련을 해보라. 너의 마음속에 드론을 띄우는 것이다. 먼저, 너 자신을 너의 방 안에서 내려다보는 상상을 하라. 그 다음, 너의 집, 너의 동네, 너의 도시를 내려다보라. 드론을 더 높이 띄워, 너의 나라  전체를, 그리고 아시아 대륙을, 마침내 푸른 구슬 같은 지구 전체를 우주에서 내려다보라. 그 광활한 우주 속에서, 너의 존재는 얼마나 작은가? 너를 화나게 했던 그 사람의 말은, 그 작은 먼지 위에서 일어난 얼마나 사소한 사건인가? 너의 불안, 너의 걱정, 너의 집착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위에서 내려다보기'는 너의 이기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우주적 관점을 갖게 하는  강력한 훈련이다. 너의 문제를 객관화하고, 감정적인 동요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인류라는 형제애 

우리는 최초로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즉 '세계시민주의'를 주장했다. 우리는 모두 이성이라는 신성한 불꽃을 나누어 가진 존재이며, 따라서 우리는 아테네나 로마의 시민이기 이전에, '우주'라는 단 하나의 공동체의 시민이라는 것이다. 국적, 인종, 성별, 계급은 모두 무관한 것들에 불과하다.

상호 적대적인 현대인

 

너희 시대는 어떤가? 너희는 '우리 편'과  '네 편'을 나누어 서로를 증오하고 공격한다. 온라인에서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 게 끔찍한 말을 쏟아낸다. 네편과 내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증오하고 비난한다. 이것은 자연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우리의 본성은 '사회적'이며, 이성은 우리에게 서로 협력하라고 명령한다. 너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를 적으로 보지 마라. 그는 단지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너의 동료 시민일 뿐이다. 그를 미워하는 대신, 그를 가엾게 여기고, 네가 할 수 있는 한 정의롭고 이성적으로 그를 대하라. 이것이 우주 시민으로서의 너의 의무다.

 

스토아주의자의 인간관계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타인의 잘못에 분노하지 마라. 아 무도 일부러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그것이 최선이라고 '잘못 판단'했을 뿐이다. 그들의 무지에 분노하는 것은,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에 화를 내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기대하지 마라. 타인이 너에게 친절할 것이라고, 너를 이해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그들의 행동은 너의 통제 밖에 있다. 오직 너 자신이 그들에게 친절하고,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라.

 

간결하게 말하라. 험담이나 가십, 무의미한 대화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필요하고 본질적인 것만 간결하게 말하라. 너 자신의 성품에만 집중하라. 타인을 바꾸려는 헛된 노력을 멈춰라. 너는 오직 너 자신만 바꿀 수 있다. 네가 훌륭한 성품을 갖춘다면, 너는 자연스럽게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내면의 황제

우리의 철학은 너에게 무엇을 약속하는가? 부? 명예? 안락한 삶? 아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약속하는 것은 단 하나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너의 영혼의 평온. 네가 너의 내면 세계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황제가 될 수 있다는 약속이다. 삶이라는 폭풍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파도는 계속해서 너의 배를 덮칠 것이다. 하지만 너는 더 이상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너는 너의 배 안, 즉 너의 마음속에 어떤 폭풍도 뚫을 수 없는 강철의 성채를 지었기 때문이다. 너는 외부 세계의 노예가 아니라, 너의 내면 왕국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것이 스토아 철학이다. 이것은 평생에 걸친 훈련이다. 이것은 어렵지만, 가장 가치 있는 길이다. 이제 선택은 너의 몫이다. 계속해서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 분노하며 파도에 휩쓸리는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오늘부터 너의 내면 요새를 짓기 시작하여, 어떤 폭풍 속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는 황제로 살 것인가?
너의 이성은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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