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펼쳐진 스토아학파의 철학,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세 명의 별,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로마, 불안한 무대
스토아학파의 철학이 꽃을 피운 로마 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화려한 문명 중 하나였다. 잘 닦인 도로는 제국의 구석구석까지 동맥처럼 뻗어있었고, 거대한 수로와 웅장한 콜로세움은 로마의 기술력과 권위를 과시했다. 지중해는 로마의 '안마당'이라 불릴 정도로 완전한 지배하에 있었다. 세상의 모든 부와 권력이 로마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이면에는 깊은 불안과 혼돈이 자리했다. 정치 암살은 일상적인 사건이었고, 황제의 자리는 하룻밤 사이에 바뀌기도 했다. 검투사들의 잔혹한 싸움은 시민들의 오락거리였으며, 제국의 번영은 수많은 노예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다. 역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고, 국경 밖에서는 야만족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다.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행운과 불운, 부와 몰락, 영광과 죽음이 교차하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사람들은 절실하게 물었다. "이토록 변덕스러운 세상 속에서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평온하게 살 수 있는가?" 스토아 철학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실천적인 대답이었다. 그것은 서재에 갇힌 이론이 아니라, 삶의 전장에서 써 내려간 생존의 지혜였다. 그리고 이 지혜를 각기 다른 삶의 위치에서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 세 명의 위대한 철학자가 있었다.
세네카, 부와 권력의 정점에서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그는 스토아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롭고 논쟁적인 인물이다. 그는 로마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이었고, 황제의 스승이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정치가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부와 권력에 초연하라고 가르친 스토아 철학자였다.

이 극적인 모순이야말로 그의 삶과 철학을 이해하는 열쇠다. 스페인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로마로 와서 수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뛰어난 글솜씨와 연설 능력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칼리굴라 황제의 질투를 사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에는 정적들의 모함으로 코르시카라는 척박한 섬으로 8년간 유배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그는 유배지에서 절망하는 대신, 수많은 편지와 철학적인 글을 쓰며 자신의 내면을 단련했다. 고통이야말로 철학을 시험하는 최고의 시금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은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Younger)라는 야심만만한 여인에 의해 극적으로 반전된다.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아들 네로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던 세네카를 아들의 스승으로 불러들인다. 세네카는 로마로 화려하게 복귀하여 어린 네로의 가정교사가 된다. 그리고 네로가 17세의 나이로 황제에 오르자, 세네카는 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다. 그가 다스렸던 초기 5년은 로마 역사상 가장 평화롭고 안정된 시기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시기에 그의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는 고리대금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가난을 두려워 말라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황금 침대에서 잠을 자는 위선자!" 세네카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부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라고 항변했다. 현자에게 부는 단지 '덕(德)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부를 경멸하지도, 좇지도 않으며, 언제든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스승의 가르침에 싫증이 난 네로는 점점 광기 어린 폭군으로 변해갔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살해하고, 스승이었던 세네카마저 정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네로는 세네카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세네카의 마지막 순간은 그의 철학이 삶으로 증명되는 장엄한 무대였다. 그는 슬퍼하는 아내와 친구들을 위로하며 말했다. "우리가 철학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가? 바로 이런 순간에 평정을 잃지 않는 법이 아니었던가?" 그는 의연하게 손목 혈관을 끊고, 독약을 마시고, 뜨거운 목욕물에 들어가며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은 부와 권력의 덧없음, 죽음 앞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존엄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한 편의 비극이었다.
에픽테토스, 노예 철학자
세네카가 권력의 정점에서 스토아 철학을 논했다면, 에픽테토스( Epictetus)는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자리, 바로 '노예'의 신분에서 철학을 말했다. 그의 삶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은 외부 조건에 의해 결코 파괴될 수 없다"는 스토아 철학의 가장 강력한 증거다.

그는 오늘날 튀르키예 지역인 히에라폴리스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 '에픽테토스'는 '획득된 것', '사들인 물건'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그의 주인이었던 에파프로디투스(Epaphroditus)는 네로 황제의 비서로서 매우 포악한 인물이었다. 에픽테토스의 철학적 기개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주인이 장난삼아 그의 다리를 비트는 고문 기구에 넣고 힘을 가했다. 에픽테토스는 고통 속에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계속 돌리시면, 부러질 겁니다." 주인이 계속 힘을 주자 마침내 그의 다리뼈가 부러졌다. 에픽테토스는 여전히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십시오. 제가 부러질 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는 평생 절름발이로 살아야 했다. 이 일화는 그의 철학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내 다리가 부러지는 것은 외부의 힘에 의한 것, 즉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 앞에서 비명을 지르거나, 절망하거나, 주인을 원망하는 대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오직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부러진 다리가 아니라 부러지지 않은 자신의 영혼을 선택한 것이다.
훗날 그는 노예 신분에서 풀려나 로마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로마에서 모든 철학자를 추방하자, 그는 그리스의 니코폴리스라는 작은 도시로 가서 학교를 열었다. 그는 책을 한 권도 쓰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은 제자인 아리아누스(Lucius Flavius Arrianus)가 기록한 '담화록(Discourses)'과 그 요약본인 '엥케이리디온(Enchiridion, 편람)'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그의 가르침은 매우 직설적이었다. 그는 청중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너는 너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너의 작은 몸뚱이조차 네 것이 아닌데 어찌하여 남의 평판이나 재산을 욕심내는가? 너의 영혼을 돌보는 일 외에 세상에 너의 일이란 없다!" 그의 철학은 장식이나 수사가 없는, 삶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칼과 같았다. 가장 큰 무력감을 겪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의 철학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고독한 황제
만약 플라톤이 이상적인 '철인(哲人) 왕'을 꿈꿨다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그 꿈이 현실이 된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그는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배의 선장으로서, 세상의 모든 권력과 부귀를 손에 쥔 황제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매일 밤 내면을 성찰하며 자신을 채찍질한 겸손한 철학도였다.

그는 로마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총애를 받으며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최고의 스승들에게 수사학, 법률, 그리고 스토아 철학을 배웠다. 그는 본래 조용히 책을 읽고 사색하는 삶을 사랑했지만, 운명은 그에게 세계 최강대국의 통치라는 무거운 짐을 지웠다. 그의 통치 기간은 로마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다. 동쪽에서는 파르티아 제국과 전쟁을 치러야 했고, 북쪽에서는 게르만족이 끊임없이 국경을 침범했다. 로마 군인들이 동방에서 가져온 '안토니누스 역병'은 제국 전역으로 퍼져 인구의 4분의 1을 앗아갔다. 지진과 기근이 겹쳤고, 심지어 가장 신임하던 장군마저 반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끝없는 재앙과 스트레스 속에서, 그는 매일 밤 군영의 텐트 안에서 자신을 위해 글을 썼다. 이것이 바로 '명상록(Meditations)'이다. 이 책은 출판을 위해 쓴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자리에 있던 한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스스로 다잡기 위한 다짐이며, 스토아 철학의 원리들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기록이다. 그는 '명상록'에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인간으로서의 일을 할려고 일어난다."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을 저질렀는가? 그건 그의 문제다. 내게는 나의 일이 있다." "너의 삶이 천 년, 만 년 이어질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 죽음은 늘 네 곁에 있다. 살아있는 동안, 너의 힘이 미치는 동안, 선한 사람이 되어라."
그의 삶은 개인적으로도 순탄치 않았다. 사랑했던 아내 파우스티나는 온갖 추문에 휩싸였고, 13명의 자녀 중 대부분이 어린 나이에 죽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황제 자리를 물려준 아들 콤모두스(Commodus,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등장하는 폭군 황제)는 로마 역사상 최악의 폭군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모든 고통과 실망 속에서도 그는 제국의 책무를 다하고, 관용과 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는 도나우강 유역의 전쟁터에서 병을 얻어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은 한 인간이 얼마나 거대한 운명의 무게를 짊어지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내면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증언이다.
'행복 만들기 > 철학자와 행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토아 철학에 담긴 행복(3) (0) | 2025.10.22 |
|---|---|
| 스토아 철학의 핵심(2) (0) | 2025.10.22 |
| 에피쿠로스가 전하는 행복 메시지(4) (0) | 2025.10.22 |
| 에피쿠로스 철학에 담긴 행복(3) (0) | 2025.10.22 |
|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2) (0) | 2025.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