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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2)

by 행복 리부트 2025. 10. 22.


쾌락의 진짜 의미

에피쿠로스 철학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먼저 쾌락(헤도네, hēdo nē)이라는 단어에 덧씌워진 오해를 걷어야 한다. 그가 "쾌락은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결코 술과 음식, 파티와 같은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즐거움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최고의 쾌락은, 오히려 아무런 자극도 없는 고요함의 상태에 가깝다. 그는 쾌락을 두 종류로 나누었다. 하나는 동적인 쾌락(Kinetic Pleasure)이다. 무언가를 '하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이다. 배고플 때 음식을 먹는 즐거움, 목마를 때 물을 마시는 즐거움이 여기에 속한다. 이것은 필요하지만, 일시적이고 더 큰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행복

 

 

다음은 정적인 쾌락(Katastematic Pleasure)이다. 모든 고통과 불안이 사라진 '상태' 그 자체다. 이것이야말로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궁극적인 쾌락이다. 그는 이 상태를 두 가지 용어로 설명했다. 아파니아와 아타락시아이다. 아포니아(Aponia)는 몸에 고통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질병이나 상처, 굶주림과 같은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다. 아타락시아(Ataraxia)는 마음에 불안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신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 미래에 대한 걱정 등 모든 정신적 혼란과 동요로부터의 자유다.

 

결국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최고의 쾌락이란, 아포니아와 아타락시아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다. 이는 마치 잔잔한 호수와 같다. 외부의 바람(고통과 불안)이 불지 않을 때, 호수는 그 자체로 고요하고 완벽한 평화의 상태에 이른다.  쾌락은 무언가를 더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얻어지는 제로(0)의 상태에 가깝다.

 

우주는 원자

에피쿠로스는 어떻게 마음의 평온, 즉 아타락시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는 인간의 가장 큰 불안이 신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두 가지 비이성적인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 원자론(atomism)이라는  과학적 메스를 사용했다.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사상을 이어받아, 이 세상 모든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원자(atom)와 빈 공간인 허공(void)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원자들이 서로 부딪치고 결합하여 우리의 몸과 영혼, 그리고 세상 만물을 만든다. 이러한 물질주의적 세계관은 두 가지 중요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세상은 원자롤 이루어져 있음을 강조하는 에피쿠로스

 

 


첫째, 신들은 우리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 에피쿠로스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신들은 인간처럼 분노하고 질투하며 벌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신들 역시 완벽한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그들 스스로 완전한 '아타락시아'의 상태를 누리며 살아간다. 그들은 너무나 완벽하고 평온하기에, 사소한 인간사에 신경 쓰거나 관여할 이유가 전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신의 변덕이나 처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신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닮아야 할 '평온함의 이상적인 모델'일 뿐이다.

 

둘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 역시 원자들의 일시적인 결합체에 불과하다. 따라서 죽음은 이 원자들이 각자의 길로 흩어지는 자연스러운 해체 과정일 뿐이다. 영혼이 소멸하므로, 죽음 이후에 지옥에서 고통받는 일도 없다.
더 나아가 그는 유명한 논증을 펼친다.  "살아있을 때, 죽음은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죽음이 왔을 때,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죽음은 살아있는 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죽음은 감각의 완전한 소멸이므로, 우리는 죽음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없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생각일 뿐이다. 이처럼 그는 죽음이라는 가장 큰 공포를 이성적인 분석을 통해 해체해 버렸다.

 

욕망의 세 가지 종류

에피쿠로스는 신과 죽음에 대한 거대한 공포를 제거한 뒤, 일상에서 평온함을 유지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욕망(desire)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관리하는 기술이다. 그는 욕망을 세 가지 종류로 나누었다. 먼저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욕망(Natural and Necessary Desires)이다. 이 욕망은 인간이 생존하고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욕망이다. 배고플 때의 음식, 목마를 때의 물, 추울 때의 잠자리와 옷, 그리고 안전함을 위한 우정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욕망의 특징은 쉽게 충족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충족되었을 때 큰 기쁨을 주며, 그 이상을 바라지 않게 된다. 에피쿠로스는 우리의 삶이 바로 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다음은 자연스럽지만 필수적이지는 않은 욕망(Natural but Unn ecessary Desires)이다.   

에피쿠로스의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욕망

 

 

이것은 기본적인 생존을 넘어 삶을 좀 더 다채롭게 만들기 위한 욕망이다.  평범한 빵 대신 맛있는 케이크, 맹물 대신 고급 와인, 소박한 집 대신 화려한 저택을 원하는 마음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욕망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것을 추구하다 보면 더 큰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이런 욕망은 가끔 즐기되, 결코 그것에 의존하거나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헛되고 공허한 욕망(Vain and Empty Desires)이다. 이것은 자연적인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된 가치관이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생겨난 비이성적인 욕망이다. 부, 명예,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심이 대표적이다.   이 욕망의 가장 큰 문제점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백억을 가진 부자는 천억을 원하고, 최고의 권력자는 더 큰 권력을 탐한다. 이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으며,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은 우리를 끊임없는 불안과 경쟁, 시기심의 노예로 만든다. 에피쿠로스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 헛된 욕망을 단호하게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의 윤리학은 선택과 집중의 지혜다. 행복은 모든 것을 가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진정으로 필요하고 쉽게 만족할 수 있는 소박한 것들(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욕망)에 집중할 때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소비 사회에 대한 가장 비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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