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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에피쿠로스가 전하는 행복 메시지(4)

by 행복 리부트 2025. 10. 22.

 


불안의 시대, 영혼의 의사

내 이름은 에피쿠로스다. 나는 아테네의 번잡한 아고라를 떠나, '정원(Kepos)'이라 불리는 작은 안식처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았다.  나는 대단한 이론이나 복잡한 체계를 세우지 않았다. 나의 유일한 목표는 인간이 겪는 가장 큰 질병, 즉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었다. 나는 철학자이기 이전에 마음을 치유하는 정신과 의사였다.

불안한 영혼을 가진 현대인을 보고 염려하는 에피쿠로스

 

나는 너희의 번영에 감탄하고, 너희의 기술에 경탄한다.  너희는 굶주림과 질병으로부터 상당 부분 해방되었고, 과거의 왕들조차 누리지 못했던 안락함을 누리고 있다. 너희는 역사상 가장 안전한 세상에 살면서 역사상 가장 불안한 영혼을 가졌다. 이것이 내가 내린 진단이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러 왔다. 나의 철학은 약상자와 같다.  그 안에는 너희를 괴롭히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잠재울  네 가지 약, 테트라파르마코스(Tetrapharmakos)가 들어있다. 나의 처방은 금욕이나 고행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의 유일한 목표는 너희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가장 순수하고 안정된 형태의 쾌락 속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자, 이제 너희의 지친 영혼을 나의 정원으로 초대한다. 나의 진단에 귀 기울이고, 나의 처방을 따를 용기가 있다면, 너희는 마침내 그토록 갈망해온 마음의 평온, 아타락시아(Ataraxia)를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거대한 오진(誤診) 

너희의 모든 불행은 쾌락이라는 단어를 오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너희는 내가 쾌락주의자라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쾌락주의자가 아니다. 오늘날 '에피큐리언(Epicurean)'이라는 말은 값비싼 음식과 와인을 즐기는 미식가나, 사치스러운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고 들었다. 이보다 더 큰 오해는 없다. 이것은 나의 적들이 퍼뜨린 악의적인 왜곡이거나, 나의 철학을 한 줄도 이해하지 못한 자들의 무지일 뿐이다. 산해진미를 찾아다니는 삶을 생각해보라. 그런 식사는 비싸다. 그것을 구하기 위해 너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스트레스의 공격을 받아야 한다. 막상 먹고 나면 즐거움은 잠시뿐이다. 배는 곧 다시 고파오고, 어제의 진수성찬 때문에, 오늘은 평범한 음식은 눈에 차지도 않는다. 너는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인 맛을 찾아 헤매게 된다. 이것은 쾌락이 아니라 스스로 고문하는 것이다.

 

나의 정원에서는 소박한 빵과 치즈, 그리고 샘물 한 잔으로 식사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 왕의 연회보다 더 큰 기쁨을 누렸다.

에피쿠로스가 볼 때 명품에 열광하는 현대인

 

왜냐하면 우리의 즐거움은 음식의 화려함이 아니라 굶주림이라는 고통이 사라진 상태, 그리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열광하는 사치품, 명품, 화려한 휴가를 생각해보라. 그것들을 소유하기 위한 불안,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 남과 비교하는 데서 오는 비참함, 이 모든 고통의 총합이 그것들이 주는 찰나의 기쁨보다 훨씬 더 크지 않은가? 너희는 꿀 한 방울을 핥기 위해 독이 든 잔을 들이켜고 있다. 내 철학의 목표는 요란한 파티가 아니라 고요한 정원이다. 요동치는 파도가 아니라 잔잔한 바다이다.

 

뺄셈의 기술

그렇다면 진정한 쾌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언가를 더하는 덧셈의 기술이 아니고, 고통을 없애는 뺄셈의 기술이다. 나는 쾌락을 두 가지 상태로 정의했다. 첫째는 아포니아(Aponia), 즉 육체적 고통이 없는 상태다. 둘째는 아타락시아(Ataraxia), 즉 정신적 고통(불안, 두려움)이 없는 상태다.  이 두 가지 고통이 모두 제거된 평온한 상태, 이것이야말로 쾌락의 최고점이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이다. 너희의 영혼을 밑 빠진 독이라고 상상해 보자. 너희는 그 독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경험, 새로운 물건, 새로운 자극이라는 물을 끊임없이 쏟아붓는다. 하지만 독에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불필요한 두려움이라는 구멍이 뚫려 있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나의 방식은 다르다. 나는 먼저 독의 구멍을 막으라고 가르친다. 불필요한 욕망을 제거하고, 근거 없는 두려움을 이성으로 없애는 것이다. 구멍이 막힌 독은 어떤가? 아주 적은 양의 물만으로도 쉽게 가득 채울 수 있다. 이것이 행복에 관한 나의 비밀이다. 행복은 더 많이 얻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덜 원함으로써 완성된다. 너희가 추구하는 쾌락은 움직이는 쾌락, 즉 동적(動的) 쾌락이다. 배고플 때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다.  이것은 필요하지만 과정일 뿐이다.

정적인 쾌락을 이루어 가는 일부의 현대인

 

내가 추구하는 쾌락은 고요한 쾌락, 즉 정적(靜的) 쾌락이다. 배고픔이라는 고통이 사라지고, 더 이상 음식을 원하지 않는 평온한 만족감의 상태다. 이것이 쾌락의 목적이다. 너희는 평생 먹는 과정의 자극만 좇다가, 정작 배부른 상태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욕망의 위계질서

"행복은 덜 원함으로써 완성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것을 분별하는 것이 지혜의 핵심이다. 

나는 모든 욕망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이 나침반만 있다면 너희는 욕망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4-1. 첫째는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욕구(Natural and Necessary Desi res)이다. 이것은 우리 본성이 요구하는 것으로, 충족되지 않으면 고통이 따르는 욕구다. 여기에는 배고플 때의 음식, 목마를 때의 물, 추울 때의 옷과 거처가 포함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우정(Friendship)과 사유(Thought)가 여기에 속한다. 이 욕구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쉽게 충족시킬 수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은 소박한 음식과 물, 기본적인 거처를 구할 수 있다. 진실한 친구와 생각을 나누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큰 기쁨을 준다. 굶주리다 먹는 빵 한 조각은 왕의 진수성찬보다 기쁨이 더 크다. 친구와의 대화는 그 어떤 오락보다 더 깊은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자연적인 한계가 있다.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음식을 원하지 않는다. 이 욕구는 우리를 끝없는 탐욕으로 이끌지 않는다. 너희 삶의 에너지를 90% 이상 바로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사용하라. 이것이 평온한 삶의 토대다.

4-2. 둘째는 자연적이지만 불필요한 욕구(Natural but Unnecessary Desires)이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의 고급 버전이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빵이 아니라, 미식을 위한 화려한 식사. 추위를 피하기 위한 옷이 아니라, 과시를 위한 명품 옷. 비바람을 막기 위한 집이 아니라,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 위한 호화로운 저택. 이 욕구들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험하다.
이 욕구는 충족시키기 어렵다. 이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낳는다.
이 욕구는 더 큰 기쁨을 주지 않는다. 화려한 식사가 빵 한 조각보다 본질적으로 더 큰 만족감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화불량이나 건강 문제 같은 새로운 고통을 낳을 수 있다. 이 욕구는 한계가 없다. 더 좋은 음식, 더 좋은 옷을 향한 욕망은 끝이 없다. 이 욕구들은 가끔 즐기되, 결코 여기에 집착하지 마라.  너희가 행복은 여기에 달려 있다고 믿는 순간, 너희는 불안의 노예가 될 것이다.

4-3. 셋째는 헛되고 공허한 욕구(Vain and Empty Desires)이다. 이것은 너희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와 타인, 그리고 너희의 그릇된 신념이 만든 욕구이다. 이들은 모든 고통의 근원이다. 이 욕구에는 부와 명예가 있다. 안락한 삶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는 부,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칭송받고 싶은 욕망, 이것은 채울 수 없는 밑 빠진 독과 같다. 더 많은 부는 더 큰 불안을 낳고, 더 높은 명예는 더 큰 시기심과 추락의 공포를 동반한다. 너희 시대의 '소셜 미디어'는 바로 이 헛된 욕망을 부추기는 거대한 기계 장치다. 이 욕구에는 권력이 있다.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망, 이것은 끊임없는 경쟁과 암투를 낳으며, 너를 의심과 두려움 속에 살게 한다. 나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가르쳤다. 그곳은 헛된 욕망의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이 욕구에는 불멸이 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 이것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으로, 죽음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만 키울 뿐이다. 이 헛되고 공허한 욕구들을 너희의 마음에서 뿌리째 뽑아내라. 이것들이 너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암 덩어리다.
이제 너희의 삶을 돌아보라. 너희는 하루 대부분을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쓰고 있는가?  혹시 헛되고 공허한 욕망을 위해, 정작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욕구(친구와의 시간, 조용한 사유)를 희생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너희가 불행한 것은 당연하다. 너희는 행복의 나침반을 거꾸로 들고 항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 가지 처방

이제 너희를 괴롭히는 가장 근원적인 질병, 즉 '두려움'을 치료할 시간이다. 나는 제자들에게 '테트라파르마코스(Tetrapharmakos)',  즉 네 가지 약을 주었다. 이 네 문장만 기억하고 이해한다면, 너희 영혼의 모든 그림자는 걷힐 것이다. 이 네 가지 처방은 시대를 초월한다. 너희의 불안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똑같기 때문이다. 신을 두려워하지 말라. 죽음을 걱정하지 말라. 좋은 것은 얻기 쉽다.  끔찍한 것은 견디기 쉽다. 이제 이 약들을 하나씩 복용해 보자. 5-1. 신들의 시선에서 해방되라. 나의 시대 사람들은 변덕스럽고 복수심에 불타는 신들이 자신들의 삶에 개입하여 벌을 내릴까 봐 두려워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신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완벽하고 축복받은 존재이기에, 우리 인간의 일에 관여하며 자신의 평온을 깨뜨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 너희 시대의 신은 누구인가? 그것은 페이스북의 '뉴스피드'이며,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이다. 그것은 너를 평가하는 상사의 시선이며, 너를 질투하는 동료의 뒷담화이며,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판단하는 익명의 대중이다. 너희는 이 새로운 신들의 심판을 두려워한다. 좋아요를 받지 못할까 봐, 미움을 살까 봐,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일까 봐 전전긍긍한다.

 

나의 처방은 똑같다. 그 신들은 너의 삶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 뿐이다. 설사 그들이 너를 비난한다 해도, 그것이 너의 육체에 어떤 고통을 주는가? 너의 영혼에 어떤 불안을 주는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너 자신이 그들의 평가가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고통이 생길 뿐이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신전에서 걸어 나와라. 네 삶의 기준을 편안한 마음에 두어라. 너의 가치는 '좋아요'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직 너의 마음이 얼마나 편안한가에 의해서만 측정된다. 이것이 진정한 해방이다. 5-2. 죽음과 실패라는 공포를 무장 해제하라. 인간의 모든 불안 밑바닥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깔려 있다. 나는 이 공포를 아주 간단한 논리로 부수었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할 때, 죽음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이 왔을 때,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을 결코 경험할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왜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이성적이지 않다. 영혼은 미세한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죽으면 그저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논리를 너희 시대의 또 다른 죽음, 즉 실패'와 사회적 죽음에 적용해보자. 너희는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것을, 사업에 실패하는 것을, 사람들로부터 잊히는 것을 죽음처럼 두려워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실패가 너를 찾아왔을 때, 너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가? 아니다. 너는 여전히 숨 쉬고, 먹고,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다.

현재의 실패를 두려워 하는 현대인들

 

실패는 너의 상태가 변한 것이지, 너의 존재가 소멸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는 너를 헛되고 공허한 욕망(높은 지위, 과도한 책임)에서 해방시켜 자연스럽고 편안한 삶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는 선물일 수도 있다. 죽음이든 실패든, 그것을 두려워하며 현재의 안정을 망치지 마라. 우리가 가진 것은 오직 '지금'뿐이다. 지금 편안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5-3. 너희 발밑에 놓인 행복. 너희는 행복이 아주 멀리 있고, 비싼 값을 치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언젠가 떠날 멋진 휴가를 위해 오늘을 견딘다. 이것은 어리석은 착각이다. 좋은 것, 즉 진정한 쾌락을 주는 것들은 대부분 공짜이거나 아주 싸다. 너의 주변을 둘러보라. 목마를 때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잔의 기쁨.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공원을 산책하는 즐거움. 사랑하는 친구와 나누는 진솔한 대화의 충만함. 흥미로운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깨닫는 지적인 희열. 이것들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안정적이며, 가장 큰 쾌락을 주는 것들이다. 이것을 얻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한가? 아니다. 이것을 즐기기 위해 남들과 경쟁할 필요가 있는가? 아니다. 너희는 이미 행복의 재료들을 발밑에 가득 쌓아두고도, 저 멀리 하늘에 떠 있는 가짜 보석을 잡으려고 허우적대고 있다. 너의 일상에서 작고 확실한 쾌락들을 음미하는 법을 배워라. 행복은 언젠가 도달할 목적지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누리는 기술이다.

5-4. 끔찍한 고통의 관리법. 물론 삶에는 고통이 따른다. 질병, 사고, 이별같은 고통을 말한다. 하지만 너희는 고통의 힘을 실제보다 더 크게 과장하고 두려워한다.나의 마지막 처방은 이것이다. 끔찍한 것은 견디기 쉽다. 왜냐하면, 극심한 고통은 보통 짧게 끝나기 때문이다. 몸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고통을 주지만, 그 고통은 빨리 사라진다. 반면, 오래 지속되는 고통은 보통 그 강도가 약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고통에 익숙해지거나, 다른 즐거움에 집중함으로써 그것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만성적인 통증으로 침대에 누워있다고 생각해보자. 너는 고통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그러면 너의 세상은 온통 고통뿐이다. 하지만 너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보낼 수도 있다. 과거에 친구와 함께 웃었던 즐거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너를 아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각할 수 있다. 마음은 고통보다 강하다. 이성으로 고통의 본질을 파악하고, 마음의 초점을 즐거운 기억과 생각으로 옮기는 훈련을 하라.  그러면 너희는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6. 평온한 삶의 건축술

이제 너희는 마음의 병을 치료할 약을 얻었다. 그렇다면 어떤 집을 짓고, 어떻게 살아야 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6-1. 정원, 너만의 안식처. 나는 아테네의 소란스러운 아고라를 떠나 '정원'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평온한 삶을 위한 적극적인 설계였다. '정원'은 헛되고 공허한 욕망이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었다. 그곳에는 정치적 야심도, 상업적 경쟁도, 사회적 허영도 없었다. 오직 우정과 사유, 그리고 소박한 삶의 기쁨만이 있었다. 너희도 너희만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그것은 물리적인 공간일 수도 있다. 

소음과 방해에서 벗어나, 온전히 너 자신이 될 수 있는 방 한 칸, 의자 하나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정원'이다. 너의 마음속에, 타인의 평가와 세상의 소음이 들어올 수 없는 고요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루에 단 십 분이라도, 모든 스크린을 끄고 너의 정원 안으로 들어가라. 그곳에서 너의 생각을 가꾸고, 너의 감정을 돌보고, 너의 영혼에 물을 주어라.  너만의 정원이 없는 사람은 세상의 풍파에 그대로 노출되어 평생을 흔들리며 살게 될 것이다.

6-2. 은둔해서 살라. 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는 드러나지 않게 살아라(Lathe Biosas)였다. 이것은 너희 시대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가장 급진적인 주장일 것이다. 너희는 '너 자신을 브랜딩하라', '영향력을 키워라', '세상의 중심에 서라'고 배운다.
나는 묻겠다. 왜 그래야 하는가? 드러나는 삶, 유명해지는 삶은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아니다. 그것은 불안을 낳는다. 명성을 얻은 자는 그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고, 아직 얻지 못한 자는 조급함에 시달린다. 대중의 변덕스러운 사랑에 춤을 춰야 하고, 수많은 적의 시기심과 공격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어찌 평온한 삶일 수 있는가? 정치와 공적인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라. 성공과 출세를 향한 무한 경쟁에서 이탈하라. 너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구를 내려놓아라. 너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너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삶. 그것이야말로 너를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는 가장 지혜롭고 즐거운 삶이다. 너의 가치를 아는 소수의 진정한 친구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6-3. 불멸의 선(善), 우정. 그렇다. 은둔해서 살되 혼자 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현명한 사람이 행복을 위해 마련하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것은 우정이다. "헛된 욕망을 버리고, 공적인 삶에서 물러난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바로 '친구'다. 친구는 너의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든든한 방벽이다.

소박하고 평온한 삶

 

친구는 너의 기쁨을 나누어 배가 되게 하고, 너의 슬픔을 나누어 절반으로 줄여준다. 친구와의 철학적 대화는 그 어떤 지적 쾌락보다도 뛰어나다. 수백 명의 온라인 '친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우정이 아니라 인맥 관리라는 이름의 허영이다. 너의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너의 영혼을 깊이 이해하는 소수의 진정한 친구를 만들어라. 그리고 그들과 함께 너희만의 '정원'을 가꾸어라.
함께 소박한 식사를 하고, 함께 산책하고, 함께 인생과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제안하는 삶의 모습이다. 이 안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 지속적인 쾌락이 있다.

 

소박하고 평온한 삶

나의 이야기는 이제 끝났다. 나의 철학은 복잡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너무나 단순해서 너희가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고통의 원인인 헛된 욕망과 근거 없는 두려움을 제거하라. 일상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쾌락을 마음껏 즐겨라. 시끄러운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너만의 정원에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평온하게 살아라. 이것이 내가 오늘날 당신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모든 것이다. 이것이 영혼의 건강을 되찾고 흔들리지 않는 평온 속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 길은 금욕의 길이 아니다. 가장 지혜롭게 쾌락을 추구하는 길이다. 이 길은 패배자의 길이 아니다. 세상의 거짓된 가치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의 길이다. 나는 너희를 요란한 축제에 초대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나의 조용한 정원으로 초대한다. 불안이라는 이름의 잔을 내려놓고, 나와 함께 평안이라는 이름의 잔을 들자. 너희의 소박하고, 건강하며, 행복한 삶을 위하여. 축배를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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