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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디오게네스의 시대적 배경과 삶(1)

by 행복 리부트 2025. 10. 22.


단순함과 자유의 철학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철학자와 함께 지성의 궁전을 거닐었다. 

디오게네스

 

그들은 정교한 논리와 복잡한 체계를 통해 세계의 비밀과 행복의 길을 탐사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비웃으며 철학을 가장 원초적이고 도발적인 형태로 되돌려놓은 한 기인을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디오게네스(Diogenes, 413/403 BC ~ 324/321 BC). 그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대신, 길거리에서 자신의 삶 자체를 철학의 무대로 삼았다. 부와 명예, 권력은 물론이고 사소한 예의범절까지도 조롱하며, 마치 한 마리 개처럼 자유롭게 살았던 사람. 그의 삶은 불편하고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근본적인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되묻게 하는 날카로운 죽비와도 같다.  이제, 모든 허울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준 디오게네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위선에 침을 뱉다

디오게네스가 살았던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는 영광의 시대가 저물고 거대한 혼돈이 시작되던 곳이었다.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리스 세계 전체를 파멸로 이끌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상처는 깊고 쓰라렸다.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429)는 고대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장군이다. 그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문화와 예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델로스 동맹을 통해 아테네 제국을 형성했고, 파르테논 신전 건축을 주도했다. 그의 통치 시기는 ‘페리클레스의 황금기’로 불린다. 웅변과 리더십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아테네를 교육과 철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투키디데스는 그를 ‘아테네의 제1시민’이라 칭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은 고대 그리스의 두 강대국,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서 벌어진 장기적인 전쟁이다. 아테네는 해상 제국으로 성장했고, 스파르타는 육상 군사력을 바탕으로 견제에 나섰다. 두 도시는 각각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이끌며 충돌했다. 전쟁은 세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아르키다모스 전쟁으로,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침공했고 아테네는 해상 반격을 시도했다. 니키아스 평화로 잠시 휴전이 이루어졌다. 두 번째는 시칠리아 원정이다. 아테네는 시칠리아에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지만 실패했다. 세 번째는 데켈레이아 전쟁이다.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아 아테네를 압박했고, 결국 아테네는 항복했다. 이 전쟁의 결과로 아테네는 패권을 상실했고,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리스 전역은 경제적·사회적 혼란에 빠졌고, 고대 그리스의 황금기는 막을 내렸다. 이 전쟁은 고대 그리스의 정치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아테네 시민이라는 자부심, 폴리스(polis)라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과거에는 ‘나는 아테네인이다’라는 사실이 곧 개인의 정체성이자 삶의 의미였지만, 이제 그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국가가 자신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방황하는 개인들로 파편화되기 시작했다.이러한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북쪽에서 불어온 거대한 폭풍이었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와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끄는 강력한 군대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며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리스 도시국가를 점령하는 알렉산더 대왕


도시국가들의 자부심 높던 독립은 옛말이 되었고, 이제 모든 길은 마케도니아로 통했다. 세상의 중심이 내가 발 딛고 선 아고라 광장이 아니라, 저 멀리 가본 적도 없는 제국의 수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인은 거대한 힘 앞에 무력감을 느꼈고, 철학의 주제 역시 ‘어떻게 좋은 국가를 만들 것인가’에서 ‘어떻게 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 개인의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었다. 스토아학파나 에피쿠로스학파 같은 헬레니즘 철학이 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통용되는 화폐를 위조하라

바로 이 격동의 시대, 흑해 연안의 부유한 식민 도시 시노페에서 디오게네스는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환전상이자 화폐를 주조하는 일을 했는데, 디오게네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운명적인 사건이 바로 이 ‘화폐’에서 비롯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통용되는 화폐를 위조하라(Paracharatein to nomisma)”는 델포이 신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신탁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 그는 아버지와 함께 실제로 화폐를 위조하거나 손상시키는 일을 저질렀고, 결국 발각되어 모든 것을 잃고 고향에서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훗날 철학자가 된 디오게네스는 이 신탁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 그가 위조해야 했던 ‘화폐(nomisma)’는 단지 쇠붙이 동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모든 관습과 가치(nomos)’ 그 자체였다. 부, 명예, 권력, 좋은 평판, 심지어는 종교적 의례와 예의범절까지 해당한다.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진실이라고 믿고 따르는 이 모든 사회적 합의들이야말로 인간을 부자유하게 만드는 가짜 화폐라고 그는 생각했다.  따라서 그의 사명은 이 모든 헛된 가치들의 민낯을 드러내고, 그것들을 조롱하며 무가치하게 만드는 ‘철학적 위조’ 행위였던 것이다. 그의 추방은 세상의 모든 ‘노모스(nomos, 관습)’로부터 벗어나 오직 ‘피시스(physis, 자연)’에 따라 살아가라는 신의 계시이자, 그의 철학적 여정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아테네의 개(犬)

모든 것을 잃고 아테네로 흘러 들어온 디오게네스는 철학의 도시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충격적인 존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금욕적인 삶을 강조했던 안티스테네스를 스승으로 삼으려 했지만, 기이한 행색의 디오게네스를 안티스테네스는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가 몽둥이로 때리며 쫓아내려 하자, 디오게네스는 머리를 들이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더 세게 때리시오. 당신의 가르침을 들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단단한 몽둥이를 가져와도 내 머리는 부서지지 않을 것이오.”그의 집요함에 굴복한 안티스테네스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디오게네스의 전설적인 ‘철학적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그는 집 대신 시장 한구석의 커다란 술통(pithos, 포도주나 곡물을 담는 큰 항아리)을 거처로 삼았다. 재산이라고는 누더기 망토 한 장과 음식을 담는 그릇, 그리고 지팡이가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이 손으로 물을 떠 마시는 것을 보고는 “저 아이가 나보다 더 단순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구나”라며 그릇마저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의 기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대낮에 불을 켠 등불을 들고 아테네 시내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뭐 하는 짓이냐고 묻자, 그는 태연하게 “나는 지금 (진정한) 인간을 찾고 있다”고 대답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아테네의 광장에, 그가 보기에는 허울 좋은 관습에 얽매인 가짜 인간들만 있을 뿐, 자연 그대로의 본성을 따라 사는 진짜 인간은 없다는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는 또한 플라톤이 “인간은 깃털 없는 두 발 동물이다”라고 정의하자, 닭의 털을 모두 뽑아 플라톤의 아카데미에 던져 넣으며 “보시오! 내가 플라톤의 인간을 데려왔소!”라고 외쳤다. 이는 뜬구름 잡는 현학적인 정의를 조롱하고, 철학은 구체적인 현실에 발 딛고 서야 함을 보여주는 행위 예술이었다. 이 모든 기행을 통해 그는 ‘아테네의 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이 별명을 모욕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개처럼 원하는 곳에서 잠자고, 배고플 때 먹고, 부끄러움 없이 본능에 따라 행동하며, 자신을 해치지 않는 사람에게는 꼬리를 흔들고 위선자에게는 짖어대는 삶. 그것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삶의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와 단촐한 살림살이

 

그의 명성은 그리스 전역에 퍼져나갔고, 마침내 세상을 정복한 젊은 영웅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알렉산드로스는 몸소 디오게네스를 찾아와, 햇볕을 쬐고 있는 그의 앞에 서서 말했다. “나는 위대한 왕 알렉산드로스다. 그대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보라.” 온 세상을 손에 쥔 권력자의 호의 앞에서 디오게네스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 햇볕을 가리지 말고 옆으로 좀 비켜주시오.” 이 일화는 디오게네스의 삶과 철학이 무엇을 향해 있었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세상의 모든 부와 권력을 가진 자 앞에서도 그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한 줌의 햇볕’을 가리지 말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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