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담긴 행복(3)

by 행복 리부트 2025. 10. 22.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로 표현된다. 이 단어는 흔히 '행복'으로 번역하지만, 그 의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행복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의 행복이 주로 즐거운 기분이나 만족스러운 감정 같은 일시적인 심리 상태를 의미한다면, 에우다이모니아는 훨씬 더 깊고 복합적인 개념이다. '에우다이모니아'는 좋은(eu)과 영혼 또는 정신(daimon)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는 좋은 영혼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번성, 즉 충실한 삶, 최고로 좋은 삶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에우다이모니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에우다이모니아는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그것은 로또에 당첨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다. 평생에 걸쳐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살아가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그는 에우다이모니아를 이렇게 최종적으로 정의한다. "덕(arete)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 완전한 일생동안 이루어지는 것." 여기서 완전한 일생이라는 조건이 붙는다는 것은, 행복이 단 한 순간의 성공으로 판단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이 아니듯, 며칠의 행복으로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천적 레시피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마치 '에우다이모니아를 위한 요리책'과도 같다. 그는 행복이라는 최고의 요리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재료와 조리법을 단계별로 제시한다. 2-1. 당신의 본성을 이해하라(재료 확인).  모든 요리는 재료의 특성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인간이라는 재료의 가장 핵심적인 특성은 '이성'이다. 당신의 삶의 목표는 이 이성이라는 기능을 탁월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2-2. 덕을 '습관'으로 만들어라(재료 손질 및 숙성). 도덕적인 덕은 이론 공부로 얻어지지 않는다. 오직 반복적인 실천을 통한 습관으로만 얻어진다. 그의 이 통찰은 오늘날 습관의 힘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들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정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며, 용감한 행동을 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된다."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를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악보를 보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의식하며 힘들게 친다. 하지만 수천 번 반복 연습하면, 나중에는 생각하지 않아도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며 음악을 연주한다. 
덕을 기르는 것도 이와 같다. 처음에는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 의식적으로 판단하고 억지로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그 행동을 꾸준히 반복하면, 그것이 나의 두 번째 천성이 되어 자연스럽게 덕 있는 행동을 하게 된다. 행복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습관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2-3. 언제나 '중용'의 과녁을 조준하라(불 조절). 덕이라는 습관을 기를 때, 항상 양극단을 피하고 중간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분노가 치밀 때, 폭발하는 극단과 꾹 참기만 하는 극단 사이에서 상황에 맞게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돈을 쓸 때, 낭비와 인색함 사이에서 '적절한' 씀씀이를 찾아야 한다. 이 중용의 감각은 마치 훌륭한 요리사가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것과 같은 섬세한 기술이다.

 

현실주의자의 시선

스토아학파와 달리, 현실주의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을 위해 어느 정도의 외적인 좋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덕이 행복의 핵심 재료인 것은 맞지만, 훌륭한 요리를 위해 신선한 재료뿐만 아니라 좋은 주방 기구와 적절한 양념이 필요한 것과 같다. 그가 보기에, 극심한 가난이나 질병, 끔찍한 불운 속에서 덕 있는 활동을 펼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행복을 위한 도구로서 필요하다고 보았다. 어느 정도의 부와 건강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건강해야 덕을 실천할 여유가 생긴다. 친구(philia)가 필요하다. 그는 친구를 "행복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큰 외적인 좋음"이라고 말했다. 좋은 가문은 자녀들 덕 있는 삶의 기반이 된다. 좋은 공동체(polis)도 필요하다. 정의로운 법과 제도를 갖춘 안정된 국가 안에서 행복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 약간의 행운도 필요하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닥치는 불운이 너무 크면 행복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덕 있는 활동을 위한 도구임을 분명히 한다. 이 모든 것을 다 가졌더라도 덕이 없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반면에 덕 있는 사람은 불운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인내하며 자신의 덕을  빛낼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우정(Philia)의 기술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 있어서 우정이 차지하는 역할을 극도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10권 중 무려 2권을 우정에 할애했다. 그에게 우정은 단순한 사교 활동이 아니라, 덕을 함께 실천하고 서로의 좋은 삶을 돕는 행복의 완성과도 같았다. 그는 우정을 세 가지 종류로 나누었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깊은 통찰을 준다.

친구들과 교류하는 아리스토텔레스

 

먼저 유용성에 기반한 우정이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맺어지는 관계다. 직장 동료나 사업 파트너 관계가 대표적이다. 유용성이 사라지면 관계도 쉽게 끝난다. 둘째, 쾌락에 기반한 우정이다. 함께 있으면 즐거우니까 맺어지는 관계다.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나 술친구가 여기에 속한다. 관심사나 즐거움의 원천이 바뀌면 관계도 시들해지기 쉽다. 셋째, 덕(德)에 기반한 진정한 우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최고의 우정이다. 이 관계는 상대방의 유용성이나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이 가진 훌륭한 인격,  즉 '덕'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맺어진다. 친구의 좋은 삶을 나의 삶처럼 기뻐하며, 그가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돕는다. 이러한 우정은 드물고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형성되며,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진정한 친구는 또 다른 나 자신이며, 그의 존재를 통해 나는 나의 덕을 확인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최고의 행복, 관조하는 삶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부분 사람에게 행복한 삶이란, 좋은 공동체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도덕적인 덕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활동적인 삶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 궁극적인 행복은 관조하는 삶이다. 관조란 인간이 순수한 이성을 사용하여 영원하고 필연적인 진리를 탐구하고 바라보는 활동이다. 철학자나 과학자가 진리를 탐구하는 삶이 바로 이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조하는 삶

 

 


왜 이 삶이 최고의 행복인가? 첫째, 이성은 인간의 가장 고귀하고 신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둘째, 관조 활동은 가장 지속적이고 자기 충족적이다. 다른 활동과 달리 특별한 도구나 다른 사람이 필요 없다. 셋째, 이 활동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며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관조의 삶이 인간을 넘어 신(神)의 활동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소수의 사람만이 이 경지에 이를 수 있지만, 그는 관조하는 삶을 모든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행복의 모델로 봤다. 그것은 우리 안의 신적인 불꽃, 즉 이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사는 삶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은 우리에게 매우 현실적이고도 높은 이상을 제시한다. 그가 주장하는 행복은 좋은 습관을 통해 내면의 덕을 기르고, 좋은 친구와 함께 공동체에 기여하며, 궁극적으로는 이성적인 사유를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삶이다. 이러한 삶이 이천사백년 전의 현자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인간으로서 가장 잘 사는 법이다.


TOP

Designed by 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