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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핵심(2)

by 행복 리부트 2025. 10. 22.


현실을 직시하는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출발점은 스승 플라톤과의 결별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은 우리가 보는 이 현실 세계가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하며, 저 너머에 '이데아'라는 완벽하고 영원한 원형의 세계가 있다고 보았다. 의자의 이데아, 아름다움의 이데아, 선의 이데아가 그렇다. 진정한 앎이란 이 이데아의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보편적인 것은 개별적인 것 안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말(horse)'이라는 보편적 개념은 저 하늘 어딘가에 '말의 이데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말, 저 말, 각각의 개별적인 말들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리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이 현실 속에 있다는 그의 철학은 철저한 현실주의에 기반을 두었다.

 

목적론, 텔로스( Teleology )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목적론(teleology)'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존재하는 고유한 '목적(텔로스, telos)'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어떤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원인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동 조각상'을 예로 들어보자. 질료인,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예: 청동). 형상인, 그것의 형태나 디자인은 무엇인가? (예: 조각가의 머릿속에 있는 조각상의 청사진). 작용인, 그것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가?(예: 조각가의 망치질). 목적인, 그것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가?(예: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네 번째, '목적인(텔로스)'이다. 도토리의 텔로스는 거대한 참나무가 되는 것이고, 칼의 텔로스는 물질을 자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여기로 이어진다.  "인간의 텔로스는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고유한 기능을 탐구한다. 단순히 살아 숨 쉬고 성장하는 것은 식물도 하는 일이다. 감각을 느끼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동물도 하는 일이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인간을 다른 모든 존재와 구별시키는 고유한 기능은 바로 이성을 가지고 사유하고 활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인간의 텔로스를 "이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의 궁극 목적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다. 그리고 '잘' 산다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기능인 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하며 사는 삶이다.

 

탁월함의 이름, 덕(Arete)

여기서 '덕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아레테'는 흔히 '덕'으로 번역되지만, 원래의 의미는 '탁월함' 또는 '훌륭함'에 더 가깝다. 칼의 아레테는 '날카로움'이고, 말의 아레테는 '빠르게 잘 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아레테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기능인 '이성적 활동'을 가장 훌륭하게 수행하게 해주는 품성의 상태, 즉 '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지적인 덕(Intellectual Virtues)이다. 교육과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지혜로서 철학적 지혜(소피아, sophia)나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 phronesis)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도덕적 덕이다. 반복적인 실천과 습관을 통해 형성되는 품성의 덕으로 용기, 절제, 관용, 정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것은 책을 읽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에게 행복한 삶이란, 바로 이러한 덕들을 갖추고 그것을 활동으로 구현하며 사는 삶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철학

 


과녁의 중앙, 중용(Mesotes)

그렇다면 용기나 절제 같은 도덕적 덕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윤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인 '중용(메소테스, mesotes)'을 제시한다. 중용이란, 모든 감정과 행동에서 지나침과 모자람이라는 양극단을 피하고, 그 사이의 올바른 '중간'을 찾는 것이다.  덕은 바로 이 양극단의 악덕 사이에 있는 황금 같은 중간 지점이다. 용기는 '무모함'(지나침)과 '비겁함'(모자람) 사이의 중용이다. 절제는 '방종'(지나침)과 '무감각'(모자람) 사이의 중용이다. 관대함은 '낭비'(지나침)과 '인색함'(모자람) 사이의 중용이다. 긍지는 '허영'(지나침)과 '비굴함'(모자람) 사이의 중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용이 단순히 산술적인 중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그리고 '올바른 상황에' 맞는 적절한 상태다. 예를 들어, 군인이 전쟁터에서 발휘해야 할 용기의 양과 어린이가 놀이터에서 발휘해야 할 용기의 양은 다르다.  부자가 베풀어야 할 관대함의 양과 가난한 사람이 베풀어야 할 관대함의 양은 다르다.

 

실천적 지혜(Phronesis)

이처럼 각 상황에 맞는 올바른 중용을 찾아내고 판단하는 능력이 바로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 phronesis)'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

 

프로네시스는 도덕적 덕을 실천하기 위한 필수적인 '지적인 덕'이다. 그것은 마치 복잡한 인생의 길을 안내하는 '도덕적 GPS'와도 같다. 이 지혜는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다른 덕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배우며, 신중하게 숙고하는 과정을 통해 점차 길러지는 것이다. 덕 있는 사람은 바로 이 실천적 지혜를 사용하여, 매 순간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중용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율하는 사람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텔로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덕과 중용)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실천적 지혜) 라는 질문에 대해 매우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답을 제시한다. 그의 철학은 우리에게 초월적인 존재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훌륭한 인간으로서 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균형 잡힌 좋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실용적인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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