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으로서의 행복
플라톤의 거대한 철학 체계, 즉 이데아론과 동굴의 비유, 국가론은 모두 단 하나의 궁극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 삶에 이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플라톤에게 '좋은 삶'은 곧 '행복한 삶'과 같은 말이었다. 스승 소크라테스처럼, 그 역시 행복을 부나 명예, 혹은 감각적인 쾌락의 총합으로 보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외부의 조건일 뿐, 영혼의 진정한 만족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생각한 행복, 즉 ‘에우다이모니아’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목표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건강한 나무가 튼튼한 뿌리와 곧은 줄기, 무성한 잎을 가졌을 때 아름다운 열매가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과 같았다. 그에게 행복은, 우리의 영혼이 올바르고 정의로운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저절로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이자, 풍성한 열매였다. 따라서 플라톤의 행복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생각한 ‘올바른 영혼의 모습’과 그 영혼이 바라보아야 할 ‘궁극적인 진실’이 무엇인지를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
선(善)을 향한 상승
영혼이 조화를 이루어 행복한 상태에 이르렀다면, 그 영혼의 마부인 ‘이성’은 무엇을 하며 가장 큰 기쁨을 느낄까? 플라톤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도 순수한 형태의 행복이, 바로 철학적 관조에 있다고 보았다. 이는 동굴의 비유에서, 마침내 동굴 밖으로 탈출한 죄수가 눈부신 태양, 즉 ‘선의 이데아’를 직접 바라보는 순간의 경이로운 희열과 같다.( 철학적 관조란 감각의 세계(그림자)에서 눈을 돌려, 영혼의 눈(이성)으로 진리의 세계(이데아)를 직접 바라보는 가장 높은 차원의 지적 활동으로 철학자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자 가장 큰 행복의 상태)

플라톤은 진리를 향한 이성의 열망을 ‘에로스(Eros)’, 즉 ‘사랑’이라는 뜨거운 단어로 표현했다.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현실 세계의 아름다운 것들(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예술)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하여, 점차 더 높은 차원의 아름다움(아름다운 영혼, 아름다운 지식)을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인 ‘아름다움 그 자체(미의 이데아)’를 향한 불타는 사랑에 휩싸이게 된다. 이처럼 자신의 영혼을 우주적인 진리, 즉 영원불변하는 이데아의 질서와 일치시키는 과정에서 철학자는 가장 궁극적인 행복을 경험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왜 존재하는지, 무엇이 진정으로 좋고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될 때, 그는 더 이상 사소한 세상사에 흔들리지 않는 깊은 만족감과 목적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의 영혼이 마침내 혼란스러운 감각의 세계를 벗어나, 자신의 진짜 고향인 이데아의 세계와 조율되었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행복은 그의 영혼이 우주의 근원적인 질서와 하나가 되어 함께 노래하는 상태인 것이다.
신을 닮아가는 행복
플라톤은 때때로 육체를 ‘영혼의 감옥’이라고 부르며, 육체적 욕망이 영혼의 비상을 방해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육체와 현실 세계를 완전히 무시하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행복한 영혼은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통해 그것을 ‘절제’하고 다스린다.

좋은 음식을 적당히 즐기고, 건강한 신체를 가꾸며,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모두 행복한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 특히 현실 세계의 ‘아름다움’은, 우리 영혼이 자신의 고향인 이데아 세계를 기억하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한다. 결국 플라톤의 모든 철학은 행복을 향한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가능한 한 신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가 생각한 신적인 존재(혹은 선의 이데아)는 완벽하게 이성적이고, 질서 있으며, 조화로운 상태이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해진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불완전한 영혼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 마치 조각가가 대리석을 깎아 완벽한 형상을 만들어내듯, 우리 영혼을 신적인 질서와 조화의 모습으로 빚어가는 과정과 같다. 플라톤에게 행복은 결코 운이나 외부 조건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이성으로 욕망을 다스리며, 진리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 ‘철학적 삶’을 통해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평생의 과업이었다. 행복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모든 발걸음 속에, 즉 자신의 영혼 속에 아름다운 우주를 건설해나가는 그 창조적인 활동 자체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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