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아테네의 쇠파리
내 이름은 소크라테스다. 못생긴 얼굴에 맨발로 아테네의 아고라 시장을 어슬렁거리던 바로 그 사람이다. 나는 책을 쓴 적이 없다. 높은 직책을 맡은 적도 없다. 내가 한 일은 전부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장군에게는 용기란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정치인에게는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나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화를 내며 자리를 떴다.

그들은 나를 아테네의 쇠파리라고 불렀다. 잠자는 말을 깨우는 성가신 벌레라는 뜻이었지. 결국 그들은 나에게 독배를 마시게 했다. 그런 내가 지금 너희의 시장 한가운데 서 있다. 여기는 시끄럽고, 빠르고, 번쩍인다. 사람들은 모두 손에 작은 판유리를 들고 그 안을 들여다보며 걷는다.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너희를 판단하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아는 것이 없다. 다만 나는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도 똑같이 할 생각이다. 내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저 몇 가지 질문을 던질 뿐이다.

2. 손안의 신탁(神託)
아테네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델포이 신전으로 가서 신탁을 구했다. 너희는 델포이 신전 대신에 손안의 검색창에 묻는구나. 참으로 편리한 신탁이다. 무엇이든 물으면 즉시 답을 알려주니 말이다. 너희는 검색한다. 행복해지는 법, 수백만 가지의 답이 쏟아져 나온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좋은 관계를 맺어라, 성공을 경험하라. 너희는 그 답들을 읽고 고개를 끄덕인다. 좋다. 나의 첫 번째 질문이다. 그래서, 너희는 행복해졌는가? 너희는 검색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수많은 시와 노래와 철학자들의 정의가 나타난다. 너희는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어딘가에 저장해 둔다. 나의 두 번째 질문이다.

그래서, 너희는 더 잘 사랑하게 되었는가? 너희의 신탁은 답을 주지만 지혜를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너희가 생각하는 과정을 생략하게 만든다. 지식은 너희의 머릿속에 쌓이지만 영혼에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나는 산파술(産婆術을 썼다. 나는 지식을 가르치지 않았다. 나는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진리를 낳도록 도왔을 뿐이다. 진정한 앎은 너희 내면에서, 고통스러운 사유의 과정을 거쳐 태어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낳은 아이를 구경만 해서는 너희는 부모가 될 수 없다. 답을 찾는 것을 멈춰라. 대신, 질문하는 법을 배워라. 너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해 질문을 던져라. 왜? 그것이 참인가?, 그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너희의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할 때 바로 그때 너희의 영혼이 첫 숨을 내쉰다.

3. 아는 체하는 자들
나는 자신이 용기의 전문가, 정의의 전문가, 아름다움의 전문가라고 떠드는 자들에게 다가가 아주 기본적인 것을 물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이 떠들던 것의 의미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너희 시장은 어떤가? 소셜 미디어라는 곳을 보니 그곳은 아테네 시장보다 더하다. 모두가 전문가다. 모두가 판사다. 모두가 스승이다. 몇 줄의 문장으로 세상 모든 일에 대해 확신에 찬 단죄를 내린다. 나는 평생 한 가지를 깨달았을 뿐이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패배 선언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의 출발점이다.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은 자만이 진리를 찾아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안다고 착각하는 자는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의 영혼은 가득 찬 잔과 같아서 새로운 물을 단 한 방울도 담을 수 없다.

너는 정의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가? 좋다. 그렇다면 대답해 보라. 정의란 무엇인가? 아마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이라고 답할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옳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수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답할 텐가? 그렇다면 이롭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만약 다수가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이롭다고 결정한다면, 그것도 정의인가? 보라. 너희는 너희가 매일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그 단어들을 무기처럼 휘두르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성급한 단죄를 멈춰라. 너희의 확신을 의심하라. 나는 정말로 이것을 아는가?라고 스스로 물어라. 너희 세상의 소음은 모두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으려 더 크게 소리치기 때문에 발생한다. 진정한 대화는 나는 잘 모릅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는 겸손에서 시작된다.

4.생각할 시간이 없는가?
나는 아테네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성찰이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 감정,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것이 과연 올바른지 선한지를 묻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그런데 너희는 어떤가? 너희는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구나. 귀에는 항상 무언가를 꽂고 있고, 눈은 항상 무언가를 보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고요함을 두려워한다. 너희는 끝없는 일과 오락거리로 너희의 시간을 빈틈없이 채운다. 마치 너희 자신과 마주 앉는 것이 끔찍한 형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묻겠다. 너희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가? 혹시 너희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닌가?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있는 걸까?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일까? 이런 불편한 질문들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더 시끄러운 곳으로 도망치는 것은 아닌가?

너희는 바쁘다고 말한다. 돈을 벌어야 해서 바쁘고, 사람을 만나야 해서 바쁘고, 즐겨야 해서 바쁘다고 주장할 테지. 훌륭하다. 그런데 그렇게 바쁘게 살아서 너희는 정확히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그 최종 목적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삶은 경주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 하나의 경험을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너희의 가장 중요한 대화 상대는 바로 너희 자신이다. 그런데 너희는 그와의 약속을 계속 미루고 있다. 모든 소음을 끄고 너희 자신과 대화할 시간을 가져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평생을 살고도 단 한 번도 진짜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5. 내버려 두는 영혼
나는 못생겼다. 배는 튀어나왔고 코는 들창코였다. 하지만 나는 나의 외모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내 영혼을 돌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영혼을 더 지혜롭게, 더 용기 있게, 더 정의롭게 만드는 것에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어떤가? 너희는 외모와 이미지에 거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처럼 보인다. 몸을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먹는다. 훌륭하다. 얼굴을 위해 무언가를 바르고 옷을 위해 유행을 좇는다. 그것도 좋다. 소셜 미디어 속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몇 시간씩 고민한다.

자, 이제 나의 마지막 질문이다. 너희는 너희의 영혼을 위해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너희는 몸을 위해 음식을 먹인다. 그렇다면 영혼을 위해서는 무엇을 먹이는가? 너희는 몸을 위해 운동을 한다. 그렇다면 영혼의 근육을 위해 어떤 훈련을 하는가? 너희는 다른 사람에게 보일 이미지를 위해 시간을 쓴다. 그렇다면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너희 영혼의 진짜 모습은 어떠한가?
덕은 지식이다. 나는 선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는 자는 결코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악행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정의가 무엇인지, 용기가 무엇인지, 절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비겁하고 부당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영혼을 돌보는 것은 바로 이 앎을 추구하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뜻이 아니다. 너의 삶 속에서 선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너희 영혼을 위한 음식이고 운동이고 가장 아름다운 치장이다.

잘 닦인 조각상은 시간이 지나면 부서지지만 잘 닦인 영혼은 죽음조차 파괴할 수 없다. 이제 마무리를 하자. 나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남기고 떠난다. 나는 너희에게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다. 나는 너희에게 무엇을 생각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하는 법을 이야기할 뿐이다. 나는 이제 떠나야겠다. 내가 처음 왔을 때처럼 조용히 너희의 시장 속으로 사라지겠다.

나는 너희에게 단 하나의 선물, 바로 질문을 남긴다. 이 질문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라. 너희의 지식은 진짜 지식인가, 아니면 안다고 착각하는 그림자인가? 너희의 삶은 성찰하는 삶인가? 아니면 도망치는 삶인가? 너희가 돌보는 것은 껍데기인가, 아니면 영혼인가?
이제 스스로 물을 차례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그것이 바로 너희 각자의 삶이 될 것이다. 자, 이제 대답해 보라. 너는 너의 삶을 통해 무엇을 알고자 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알기 위해 오늘 무엇을 질문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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