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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스크라테스 철학에 담긴 행복(3)

by 행복 리부트 2025. 10. 21.


1. 행복, 에우다이모니아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아테네는 부와 명예, 그리고 감각적 쾌락을 행복의 척도로 삼던 도시였다. 사람들은 더 많은 부를 쌓고, 더 높은 정치적 지위에 오르며, 더 화려한 연회와 아름다운 육체를 즐기는 것이 곧 행복한 삶이라고 믿었다. 당시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통념의 한가운데에 서서, 전혀 다른 행복을 이야기했다. 그는사람이 필사적으로 추구하는 부와 명예, 권력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무기(無記)와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무기는 "선도 악도 아닌 상태", 어떤 것에 대한 선악의 판단이나 규정이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우리를 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 같기 때문이다.

당시 귀족들의 모습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소크라테스는 그것이 외부의 조건이나 소유물이 아닌, 오직 우리 내면의 상태, 즉 우리 영혼의 건강함에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행복을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일시적인 기쁨이나 즐거움(hedone)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에우다이모니아는 ‘좋은(eu)’과 ‘영혼(daimon)’의 합성어로, ‘훌륭한 영혼의 상태’ 혹은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번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는 찰나의 희열이 아니라, 어떤 외부의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깊고 고요한 평화이자, 이성적 존재로서 자신의 잠재력을 최고로 발현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 그 자체였다. 소크라테스에게 행복은 느끼는 것(feeling)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being)이었다.

 

2. 잘 정돈된 영혼

어떻게 하면 이 ‘에우다이모니아’의 상태에 이를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그 길이 바로 ‘영혼을 돌보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삶이 나오듯, 건강한 영혼에서 행복한 삶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영혼이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바로 ‘이성(logos)’에 의해 잘 정돈된 영혼, 즉 지혜가 변덕스러운 욕망과 감정을 다스리는 조화로운 상태의 영혼이다. 그는 우리의 영혼을 하나의 도시국가에 비유하곤 했다. 만약 한 도시가 현명하고 정의로운 왕(이성)에 의해 통치된다면, 그 도시는 질서 있고 평화로우며 번영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도시가 어리석고 변덕스러운 군중(욕망)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 도시는 순식간에 혼란과 다툼에 휩싸여 파멸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영혼도 이와 마찬가지다. 무엇이 참으로 좋고 나쁜지를 아는 지혜(이성)가 영혼의 주인이 될 때, 우리의 삶은 안정되고 평온한 행복을 누린다. 하지만 눈앞의 쾌락이나 이익을 향한 맹목적인 욕망이 영혼의 주인이 되면, 우리의 삶은 끝없는 갈증과 불안, 그리고 자기 파괴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은 모든 욕망을 만족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을 통해 욕망을 잘 다스리고, 무엇이 우리 영혼에 진정으로 이로운지를 아는 지혜를 갖추는 데 있다. 

 

이러한 지혜와 조화의 상태는 우리 내면에 그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견고한 성채를 쌓는 것과 같다. 외부 세계에서 닥쳐오는 불행, 예를 들어 가난, 질병, 타인의 비난 등은 이 성채의 외벽을 잠시 긁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 안에 있는 왕, 즉 고요하고 질서 잡힌 우리의 영혼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사형 선고를 받고 독배를 마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자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평온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영혼이 이처럼 굳건한 내면의 요새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3. 행복은 덕만으로 충분

소크라테스의 행복론에서 가장 급진적이고도 위대한 지점은 바로 “덕(Arete)만으로 행복은 충분하다”는 선언에 있다. 여기서 덕은  지식(참된 앎)을 의미한다. 즉,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지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 덕을 갖춘 사람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게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는 덕이 행복의 여러 조건 중 하나가 아니라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임을 의미한다. 이것은 놀라운 주장이다. 덕 있는 사람은 설령 가난에 시달리고, 병에 걸리고, 세상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반대로,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왕이라 할지라도 그의 영혼이 무지하고 부도덕하다면 그는 결코 행복할 수 없으며,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주장이 가능할까? 소크라테스는 한 인간에게 진정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의 ‘영혼이 나빠지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나의 재산을 앗아갈 뿐이고, 질병은 나의 육체를 상하게 할 뿐이며, 타인의 비난은 나의 평판에 흠집을 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영혼’, 즉 진짜 나 자신을 직접적으로 해치지는 못한다. 나를 진정으로 해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의 무지와 비겁함, 불의와 같은 ‘악덕’뿐이다. 그것은 내 영혼을 병들게 하고 파괴하는 가장 끔찍한 질병이다.

외부의 유혹에도 초연한 소크라테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이 불의를 당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불행하다. 불의를 당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재산이나 육체에 해를 입지만,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영혼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테네 시민들이, 정작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보다 훨씬 더 불행하고 비참한 영혼의 소유자들이었던 것이다. “훌륭한 사람은 살아있을 때나 죽어서나 해코지를 당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에게 궁극의 자족을 선물한다. 나의 행복이 더 이상 변덕스러운 운이나 타인의 손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은 오직 단 하나, 내 영혼의 상태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철학적 탐구를 통해 나 자신이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이로써 소크라테스는 행복을 외부 세계의 우연성이라는 사슬에서 풀어내어, 우리 각자의 내면이라는 영원한 왕국으로 되돌려 놓았다.

 

4. 탐구 자체에 내재한 행복

소크라테스의 행복은 단지 내면의 평온한 상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색 중인 소크라테스

 

그의 행복은 역동적인 ‘활동’ 그 자체에 있었다. 바로 철학하는 행위, 즉 자신의 삶을 검토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그 과정 자체가 그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자 기쁨이었다. 평생을 진리라고 믿어왔던 생각이  대화를 통해 무너져 내리는 아찔한 순간의 지적 희열을 상상해보라.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문제의 본질이 끈질긴 질문 끝에 마침내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는 ‘아하!’의 순간을 상상해 보라. 친구와 함께 진지한 주제를 놓고 밤새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영혼이 한 뼘  더 성장하고 깊어짐을 느끼는 그 충만한 유대감을 말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은  다른 영혼들과의 만남 속에서 함께 진리를 낳는 지극히 공동체적이고도 살아있는 활동이었다. 이러한 지적인 기쁨은 감각적 쾌락과는 차원이 다르다. 맛있는 음식의 즐거움은 식사가 끝나면 사라지지만, 철학적 탐구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우리의 영혼을 영구적으로 더 나은 상태로 변화시킨다. 그것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도 지속적인 형태의 기쁨이다.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그의 유명한 선언은, 단지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 행복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기도 하다. 검토되지 않은 삶, 즉 철학하지 않는 삶은 무지의 어둠 속에서 욕망에 이끌려 다니는 비참하고 불행한 삶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삶을 끊임없이 검토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그 활동 자체가 곧 인간에게 가장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의 내용이 된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행복에 이르는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것은 외부의 부와 명예를 향한 끝없는 질주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무지를 자각하고, 대화를 통해 영혼을 돌보며, 덕과 앎을 향해 나아가는 철학적 삶의 길이다. 그는 행복이라는 뜬구름을, 우리 각자의 의지와 노력으로 붙잡을 수 있는 내면의 의미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내면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자체가 이미  행복임을 삶과 죽음으로 증명해 보인 가장 위대한 행복의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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