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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마음과 관계 속의 행복

[심리학 여행 제1편]분트 심리학에 담긴 행복론 : 행복을 조립하는 의지의 힘

by 행복 리부트 2026. 5. 21.

심리학에 담긴 행복을 말씀드리기 전에 제가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겠습니다. 19세기 후반의 독일은 산업혁명과 제국 통일(1871)로 엄청난 부가 쏟아지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시민들이 생각하던 행복의 기준은 꽤 세속적이었죠.

번듯한 직업을 갖고, 크고 화려한 저택에 살며, 주말이면 사교 파티에 참석해 인맥을 과시하는 것이 신흥 부르주아(Bourgeoisie) 계급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명예가 곧 행복의 척도였습니다.

 

개인의 평안이나 불안정한 자아상 같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들은 행복을 밖에서 쟁취하여 집 안으로 들여놓는 물건 같은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지독한 일벌레는 과연 행복했을까?

그렇다면 그런 시대에 살면서 저의 삶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의 삶은 당시에 사람들이 우러러보던 행복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습니다. 청년 시절엔 의학을 공부하면서도 늘 낙제생의 꼬리표와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습니다.

1872년, 사랑하는 아내 소피 마우(Sophie Mau)와 결혼하여 세 아이를 얻었지만, 저는 결코 다정다감하고 살가운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지독한 일벌레였습니다.

 

매일 초시계처럼 정확한 시간에 산책을 하고, 하루에 두 장씩 강박적으로 논문을 썼습니다. 시끌벅적한 사교계의 웃음소리보다는 놋쇠 기계들이 굴러가는 연구실의 퀴퀴한 냄새가 훨씬 더 좋았습니다.

시력을 잃은 늙은 학자의 자기 관찰

말년에 이르러 치명적인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책을 너무 많이 본 탓에 시력을 거의 잃게 된 것입니다. 학자에게 눈이 멀어간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짙은 절망과 우울이 저를 덮쳤습니다.

 

그런 고통 앞에서는 심리학의 개척자인 저 역시 한없이 무기력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이론인 내성법(Introspection)을 저를 대상으로 실험했습니다. 저는 눈이 멀어가는 고통을 가장 작은 조각으로 쪼개어 객관적으로 관찰했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감각인가?, 이러한 두려움 속에는 어떤 긴장과 불쾌함이 섞여 있는가? 고통을 잘게 쪼개어 해부하는 순간에 두렵던 괴물은 그저 일시적인 생리적 반응과 흩어진 감정의 조각들이 되었습니다. 관찰이 고통의 감정을 빼앗아 버린 것이죠.

행복은 우연이 아닌 조립이다

과학적인 실험실의 심리학이 우리의 행복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행복을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으로 여깁니다. 행복은 외부 환경이 만들어주는 수동적인 상태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저의 연구로 보면 다릅니다.

 

주의주의와 통각의 관점에서 행복은 능동적인 건축 과정입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마음의 원소들을 엮어내는 창조적 작업입니다. 마음을 원소로 쪼갰다면 이제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는 통각(Apperception)의 능력을 발휘할 차례입니다.

인간은 수많은 자극 중 원하는 것에 주의(Attention)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잃어버린 시력, 타인의 비판 같은 뾰족한 부정적 조각에만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결론짓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조립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절망 대신에 내 곁에서 타자기를 두드리는 딸 엘레오노레(Eleonore)의 따뜻한 온기에 주의를 집중했습니다. 매일 머릿속에 새롭게 떠오르는 학문적 영감에 집중했습니다. 저는 제 의지로 긍정의 조각들을 긁어모아 기어이 새로운 창조적 종합을 이뤄냈습니다.

고통을 분해하면 힘을 잃는다

불행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내성법으로 들여다 봅시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았거나 큰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슬픔이나 통제할 수 없는 분노에 짓눌려 있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덩어리 앞에서는 누구나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십시오. 이처럼 참담한 고통을 가장 작은 조각으로 쪼개면 무엇이 남는가? 불쾌함, 어깨의 굳어짐(긴장), 심장 박동(흥분)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통을 잘게 쪼개는 순간, 두려운 괴물은 일시적인 생리적 반응으로 격하됩니다. 이것이 관찰이 주는 치유의 힘입니다.

마음을 원소로 쪼갰다면 지금부터는 통각이 필요한 것이죠. 인간은 주의를 기울일 대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타인의 비난이나 자신의 실수에만 주의를 기울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으로 종합하고 판단해 버립니다. 하지만 행복을 아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들은 부정적인 조각을 흘려보냅니다. 그들은 따뜻한 차 한 잔, 아침의 햇살, 다정한 동료와 자신이 이뤄낸 작은 성취에 주의를 집중합니다.

내성법으로 자아상 회복하기

현대인들은 가끔식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깎아내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짓누르는 열등감도 쪼개 봐야 합니다. 쪼개 보면 타인의 시선이라는 불쾌한 자극과 스스로 만든 긴장감이 결합된 결과물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한 걸음 물러나 이런 조각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자신은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흔들리던 자아상을 단단하게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이런 기초 공사가 바로 내성법입니다.

행복은 스스로의 의지로 마음의 원소들을 엮어내는 치열하고 능동적인 건축 과정입니다. 비록 제 삶은 부자들의 화려한 파티와는 거리가 멀었고 늙어서는 시력마저 잃었지만, 저는 제 마음의 지휘관으로서 매 순간을 충만하게 조립하며 살았습니다. 진정한 행복의 주도권은 시대의 잣대가 아닌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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