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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카뮈 철학에 담긴 행복 : 페스트의 지옥 속에서 현재를 사랑하라

by 행복 리부트 2026. 4. 11.

카뮈(Albert Camus, 1913~ 1960)  철학은 홀로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의 반항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카뮈는 나치의 군대가 유럽을 짓밟던 절망의 시대, 그리고 스스로 피를 토하며 죽음과 싸워야 했던 끔찍한 질병 속에서  마침내 나만의 부조리를 넘어 우리의 부조리와 맞서 싸우는 숭고한 연대의 철학을 탄생시켰습니다.

그의 분신과도 같은 명작 소설 페스트(La Peste,1947)를 중심으로 카뮈의 시대적 아픔이 어떻게 행복과 연대의 철학으로 이어졌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소설 페스트가 품고 있는 진짜 얼굴

카뮈가 발표한 소설 <페스트>는 어느 날 갑자기 끔찍한 전염병인 흑사병이 덮친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Oran)이 배경입니다. 쥐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 나가고, 도시는 철저하게 봉쇄되며, 사람들은 매일 수천 명씩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토록 처절한 작품은 카뮈가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당시의 참혹한 시대적, 개인적 부조리에 대한 은유아래와 같이 담고 있습니다. 첫째, 시대적 상황입니다. 당시 유럽은 히틀러의 광기에 짓밟혔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 이른바 갈색 페스트(Brown Plague)라 불렸던 파시즘의 폭력이 그의 조국 프랑스를 덮쳤습니다.

카뮈는 책상에 앉아 펜만 굴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나치에 맞서 목숨을 걸고 레지스탕스 비밀 신문인 콩바(Combat, 1941~1974)의 편집장으로 활약하며 끔찍한 나찌의 만행에 맨몸으로 싸웠습니다.

둘째, 카뮈 자신의 질병과 고독입니다. 카뮈는 청년 시절부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중증 결핵을 앓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요양을 위해 프랑스 남부에 머물던 중 교통이 끊겨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고향 알제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몇 년 동안 철저하게 고립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생이별을 한 채 언제 피를 토하고 죽을지 모르는 고독한 요양원 생활, 이처럼 단절과 죽음의 공포가 소설 속 봉쇄된 도시 오랑에 갇힌 시민들의 모습에 그대로 투영된 것입니다.

부조리한 재앙 앞의 세 가지 군상 : 당신은 누구입니까?

평화롭던 도시에 갑자기 페스트라는 맹목적이고 이유 없는 죽음(부조리)이 덮쳤을 때, 오랑시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재앙에 대처합니다. 카뮈는 이들을 통해 삶의 고통과 상처를 마주할 때 취하는 인간의 태도를 예리하게 보여줍니다.

파늘루 신부의 철학적 자살입니다.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죠.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로 인해 끔찍하게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설교합니다. "여러분, 이 전염병은 신을 멀리하고 타락한 우리를 벌하시기 위한 신의 위대한 징벌입니다. 우리는 무릎 꿇고 기도하며 신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는 재앙의 원인을 신의 섭리로 돌리며 현실의 고통을 덮어버리려 합니다. 카뮈가 경멸했던 철학적 자살의 전형입니다. 현실의 부조리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이성의 눈을 감아버린 것입니다.

다음은 코타르의 모습입니다. 재앙과 비겁한 공모를 하는 기회주의 행태입니다. 페스트가 퍼지기 전, 코타르는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에 쫓겨 자살을 시도하던 절망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전염병으로 봉쇄되자 경찰도 마비되고 세상이 아수라장이 됩니다.

 

코타르는 이러한 혼란을 이용하여 물자를 밀수하며 큰돈을 벌고 기뻐합니다. 타인의 불행과 사회의 비극을 틈타 자신의 배를 불리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이죠. 그는 재앙이라는 폭력과 비겁하게 공모한 타락한 인간입니다.

다음은 리외와 타루입니다. 그들은 묵묵히 성실하게 직분에 충실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의사 베르나르 리외와 그의 친구 장 타루는 다릅니다. 이들은 페스트가 신의 징벌인지 우연인지 따위의 거창한 철학적 의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리외는 묵묵히 밤을 새워가며 피고름이 흐르는 환자들의 종양을 찢고 치료합니다. 타루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보건대를 조직하여 목숨을 걸고 환자들을 이송하고 돌봅니다.

 

누군가 의사 리외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무슨 희망이 있다고 목숨을 걸고 이 짓을 하십니까?" 리외는 이렇게 대답하죠.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성실하게 환자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저 직분에 충실할 뿐입니다."

리외의 무덤덤한 대답 속에 카뮈 철학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의미 없이 나를 덮친 마음의 상처, 질병, 타인의 폭력 앞에서 나는 신과 세상을 원망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내가 해야 할 환자를 돌보고, 내가 써야 할 글을 쓰고, 할일을 하는 것입니다. 평범하며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 가는 것이야말로 부조리한 세상을 이겨내는 카뮈의 반항입니다.

나 홀로 굴리는 돌에서 타인과 함께 굴리는 연대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홀로 돌을 굴리는 고독한 반항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치와의 목숨 건 투쟁과 동료들의 죽음을 겪으며, 그의 철학은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진화합니다.

카뮈는 선언합니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I rebel—therefore we exist)." 카뮈의 선언은 사르트르와의 결정적인 차이를 보여줍니다.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하며 끝없는 긴장 관계를 논했다면, 카뮈에게 타인은 부조리라는 폭풍우를 함께 극복해야 할 형제입니다.

 

소설 속에서 의사 리외 혼자서는 결코 페스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타루가 이끄는 시민 보건대, 공무원 그랑, 기자 랑베르 등 평범한 이웃들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함께 환자들을 돌보았기에 도시는 절망 속에서도 살아 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지독한 상처와 폭력적인 잣대에 짓눌려 고통받고 있을 때, 나 혼자 이겨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같은 상처를 앓고 있는 타인의 손을 굳게 맞잡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며 부조리에 함께 맞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카뮈는 이것을 자비 없는 세상에 맞서는 인간들의 위대한 연대(Solidarity)라고 불렀습니다.

밤바다의 수영 : 지옥 속에서도 눈부신 현재를 사랑하라

<페스트>에는 세계 문학사에서 아름답지만 눈물겨운 명장면이 하나 등장합니다. 매일 수백 명의 시체를 치우며 피로와 죽음의 공포에 찌들어 있던 어느 날 밤, 리외와 타루는 모든 방역 작업을 잠시 멈추고 몰래 방파제로 나갑니다.

그리고 페스트가 창궐하는 지옥 같은 도시를 뒤로한 채, 옷을 벗어 던지고 시원한 지중해의 밤바다로 뛰어들어 수영을 합니다. 차갑고 부드러운 파도,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찬란한 별빛, 두 사람은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잠시나마 자유와 우정의 벅찬 행복을 만끽합니다.

 

카뮈가 이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비록 내일 페스트에 걸려 피를 토하며 죽는다 할지라도, 오늘 밤 바닷물의 감촉과 밤하늘의 별빛, 그리고 곁에 있는 친구와의 우정을 온몸으로 사랑하라!"

우리는 종종 과거의 상처를 후회하거나 언제 닥칠지 모르는 미래의 불안에 떨며, 정작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카뮈는 이렇게 말하죠. 내일의 희망이나 천국 따위는 필요 없다고요. 우리의 행복은 오직 눈부시게 찬란한 현재(Present)에 있다고 말입니다.

가난의 냄새가 진동하는 알제리 빈민가에서도 지중해의 태양을 보며 웃음 지었던 어린 카뮈처럼, 고통과 억울함 속에서도 오늘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의 향기, 길가에 핀 작은 꽃 한 송이, 사랑하는 강아지들의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는 소박하고 찰나적인 기쁨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부조리가 아무리 우리를 짓밟고 행복을 방해 해도,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의 행복한 감정이 바로 부조리를 극복하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행복감이 세상의 부조리에 승리하는 길입니다.

우리 안의 페스트는 결코 죽지 않지만

소설의 마지막에, 수많은 사람의 숭고한 연대와 희생 덕분에 마침내 페스트는 물러가고 오랑시는 해방의 기쁨에 축포를 쏘아 올립니다. 하지만 의사 리외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혼잣말을 합니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가구와 옷가지 속에 잠복해 있다가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또다시 쥐들을 흔들어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로 몰아넣을 날이 올 것이다."

세상의 부조리, 마음의 상처, 타인을 향한 위선과 폭력이라는 우리 안의 페스트는 결코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든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을 다시 덮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카뮈는 우울해하지 않고 오히려 미소 지으며 생각합니다. 재앙이 다시 찾아온다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의미한 바위를 묵묵히 밀어 올릴 성실함이 있고, 지옥 속에서도 밤바다를 함께 헤엄쳐 줄 친구와의 연대가 있으며, 쏟아지는 태양 빛을 온몸으로 껴안을 눈부신 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카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의 흉터와 내일의 불안을 핑계로 오늘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두 발을 굳게 딛고, 당신 곁의 상처받은 이들과 뜨겁게 연대하며, 오늘 하루 당신에게 허락된 삶의 모두를 성실하게 사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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