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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스피노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행복 메시지(4)

by 행복 리부트 2026. 3. 13.

내 이름은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나를 이단아, 무신론자라 부르며 내가 태어난 유대 공동체에서 가혹하게 쫓아 냈다. 나는 평생 좁고 고독한 방에서 유리 렌즈를 깎으며 가난하게 살았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내 삶을 원망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내 마음은 늘 고요하고 평안했다. 내가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그토록 깊은 행복을 누릴 수 있었는지, 오늘 그대들에게 이야기하려 한다.

신은 하늘에 있지 않다, 자연 그 자체다

사람들은 하늘 위 옥좌에 앉아 벌을 내리고 소원을 들어주는 왕 같은 신을 믿었다. 그들은 늘 신을 두려워하며 무언가를 간청했다. 나는 그런 미신을 거부했다. 내가 깨달은 신은 저 멀리 세상 밖에 있는 목수가 아니다. 바로 우주, 자연(Natura) 그 자체가 신이다. 세상 모든 것을 움직이는 영원하고 완벽한 법칙이 바로 신이다. 나는 이것을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이라고 불렀다.

길가의 작은 풀잎 하나, 밤하늘의 별, 그리고 그대 자신까지 모두 이처럼 거대한 하나의 실체(스스로 존재하는 근원)가 모습을 바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출렁이는 수많은 파도와 같다. 파도가 바다를 떠나 존재할 수 없듯, 세상 어떤 것도 우주의 거대한 질서를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정신과 육체는 동전의 양면이다

나의 선배 철학자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가 완전히 분리된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보았다. 정신과 육체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그대의 마음속에 팔을 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과 실제로 근육이 움직여 팔이 올라가는 것은 서로 다른 사건이 아니다. 하나의 동일한 사건이 생각의 언어와 몸의 언어로 동시에 나타난 것뿐이다. 그러니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고, 육체를 돌보는 것이 곧 영혼을 돌보는 일이다. 그대들은 몸과 마음을 억지로 나누어 스스로를 분열의 고통에 빠뜨리지 마라.

모든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어서 일어난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라는 자연의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허공에 던져진 돌멩이를 상상해 보자. 만약 돌멩이에게 생각이 있다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날아가고 있다고 착각할 것이다. 하지만 돌멩이의 궤적은 던진 힘과 공기의 저항, 중력에 의해 완벽하게 결정되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대들은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과거의 경험, 타고난 기질, 주변 환경이라는 수많은 선행 원인들에 의해 결정된 행동을 할 뿐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필연성을 깨달을 때 영혼에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다.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조심할걸 하고 후회할 필요가 없다. 그 일은 수 많은 원인이 겹쳐 그 순간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다. 누군가 나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은 그의 좁은 식견과 그가 처한 환경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비가 내린다고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것이 자연의 필연적인 법칙임을 알면, 타인을 향한 분노도, 과거를 향한 뼈아픈 자책도 눈 녹듯 사라진다.

감정의 노예에서 벗어나기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힘을 키우려는 근본적인 노력, 즉 코나투스(Conatus)를 가지고 있다. 우리 안의 힘이 커질 때 우리는 기쁨을 느끼고, 힘이 줄어들 때 슬픔을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불행한가? 외부 환경과 타인에게 내 감정의 주도권을 맡겨버리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칭찬 한마디에 기분이 날아갈 듯 기쁘고, 비난 한마디에 지옥으로 떨어진다. 이것은 그대가 감정의 주인이 아니라 외부 자극에 춤을 추는 꼭두각시, 즉 정념, 수동적인 감정의 노예라는 증거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수동적인 감정을 능동적인 기쁨으로 바꾸는 데 있다. 그 유일한 무기가 바로 이성(Ratio)이다. 나를 화나게 한 사람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대신에 가만히 따져보라.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했을까? 하고 말이다. 이성을 통해 상대방의 행동 원인을 투명하게 이해하는 순간, 맹목적인 분노는 힘을 잃는다. 끓어오르던 정념이 사라진 자리에 세상을 이해했다는 조용한 기쁨이 차오른다. 이것이 이성이 주는 진짜 행복이다.

렌즈를 닦아라,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나는 평생 렌즈를 닦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대들의 마음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다. 두려움이라는 기름때, 욕망이라는 흠집, 미신이라는 먼지가 잔뜩 낀 렌즈로는 실재를 똑바로 볼 수 없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불공평해 보이고, 온통 지옥 같은가? 문제는 세상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대의 렌즈가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철학은 대단하고 어려운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다. 이성이라는 부드러운 천을 들어 내 마음의 렌즈를 닦아내는 매일매일의 구도 작업이다. 렌즈가 맑아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세상은 변함없이 그대로 돌아가지만, 그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추하고 혼란스러워 보였던 일상 속에서 우주의 완벽한 조화와 거대한 질서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에서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깊고 고요한 평화가 솟아난다. 나는 이것을 지복(至福, 최고의 행복)이라 불렀다.

나를 불행에서 구원해 줄 사람은 저 하늘의 신도, 뛰어난 성직자도 아니다. 오직 그대 자신의 맑은 이성뿐이다. 이제 변명을 멈추고 이성을 집어 들어라. 그리고 그대 자신의 렌즈를 닦기 시작하라. 그럼으로 오는 기쁨은 온전히 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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