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스피노자 철학에 담긴 행복(3)

by 행복 리부트 2026. 3. 12.

안녕하세요. 인문학으로 행복을 리부팅하는 이규진입니다. 우리는 늘 행복을 간구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17세기의 고독한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는 행복에 대해 답을 남겼습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은 기쁨, 자율성, 하나됨이라는 세 가지 기둥으로 세워진, 존재의 가장 완벽한 상태를 뜻합니다. 오늘은 스피노자의 철학을 통해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감정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

많은 철학자가 욕망과 감정을 이성으로 찍어 눌러야 한다고 말할 때 스피노자는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그는 감정의 억제가 아니라, 이해를 통한 감정의 변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슬픔, 두려움, 분노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들은 대부분 외부 원인에 의해 휘둘리는 수동적 정서입니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이런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그러한 감정이 생겼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실직이라는 사건이 닥쳤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연히 분노와 슬픔이 밀려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분노에 휩쓸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따져보는 것이죠. 실직의 원인은 무엇인가?, 내 감정 반응은 정당한가?, 이 사건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렇게 감정의 원인을 깊이 이해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순간, 고통스러운 감정은 더 이상 우리를 휘두르지 못합니다. 이성은 감정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이성은 감정을 바로 보고 치유하는 이해의 도구입니다.

거미 싸움을 즐긴 외로운 철학자

스피노자는 평생 가난과 고독, 그리고 종교계의 박해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늘 고요하고 평안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소박하고도 기묘한 취미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생계를 위해 유리 렌즈를 깎는 힘든 일을 했습니다. 하루 종일 먼지를 마시며 일하다 지치면, 그는 가끔 거미 몇 마리를 잡아 싸움을 붙이곤 했습니다. 거미들이 서로 엉겨 붙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스피노자는 어린아이처럼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

언뜻 보면 기괴한 취미 같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그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거미들의 싸움조차 자연의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아주 작은 미물의 행동에서도 우주의 질서를 발견하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을 인과관계로 이해하려 했던 그의 지독한 탐구심과 그 안에서 찾아낸 소박한 기쁨을 잘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진정한 자유란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율성과 자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에게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본성을 이해하고, 이성에 따라 감정을 조화롭게 다스릴 수 있는 능동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주의 질서, 곧 신의 본성인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 이로써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온과 지속적인 기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통합의 기쁨을 스피노자는 영원 속에서 사유하는 기쁨 혹은 축복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원 속에서 사유하는 기쁨은 나의 존재와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영원하고 필연적인 자연법칙(신)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깊고 고요한 기쁨입니다.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

스피노자를 상징하는 유명한 명언이 있습니다. 내일 세계가 종말을 맞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 문장은 스피노자의 어떤 저서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그의 철학적 태도를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 붙인 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 안에 담긴 정신은 스피노자의 철학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인간은 세상의 끝이 다가오는 필연적 질서 앞에서도 절망에 빠지는 수동적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그 질서를 이해하고, 오늘 이 순간에도 사과나무를 심는 의미 있는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능동적 존재입니다.

삶으로 증명한 철학, 가난 속에서 피어난 평안

스피노자의 철학과 그의 실제 삶은 마치 거울처럼 닮아 있습니다. 그는 스물네 살의 젊은 나이에 유대 공동체로부터 가혹한 파문을 당했고, 평생 좁은 방에서 렌즈를 깎으며 가난과 폐병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세상을 원망하거나 불행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해답은 바로 자신이 세운 철학을 삶에서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는 자신에게 닥친 가난과 고립, 질병을 누군가의 저주나 억울한 불운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모든 시련조차 우주의 필연적 질서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깊이 이해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외부 환경과 타인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대신, 상황을 이성적으로 꿰뚫어 보며 자신의 감정을 고요하게 조율한 것입니다.

그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화려한 명예를 얻거나 엄청난 부를 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육체는 렌즈 가루가 날리는 비좁은 다락방에 갇혀 있을지라도, 마음만은 거대한 우주의 질서와 하나 되어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스피노자가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평안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진짜 이유입니다.

결국 스피노자의 삶은 그의 철학이 단순한 책상머리의 이론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그의 철학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시련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내는 실천적인 행복의 기반입니다. 다음 글은 스피노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다룹니다. 과연 그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전할까요?

 

바로가기:스피노자의 삶과 시대상

 

 


TOP

Designed by 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