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러시아 귀족 사회는 타락하고 위선적이었다. 스물네 살의 청년 귀족 톨스토이는 대학을 중퇴하고, 방탕한 사교계와 도박에 빠져 막대한 빚을 진 채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귀족 사회의 위선과 가식적인 삶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었다. 그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그 절박한 탈출구가 바로 코카서스(Caucasus)였다. 1851년, 그는 형을 따라 군에 입대하고, 야만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그 땅으로 향한다. 소설 <코사크 사람들(The Cossacks), 1861>은 이 시기, 한 청년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그곳에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자전적 기록이다.

소설의 주인공 올레닌(Olenin)은 모스크바의 환멸에 찌든 삶을 뒤로하고, 코카서스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과거의 자신과 작별을 고한다. 그는 이제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다. 테레크 강 유역의 코사크 마을에 도착한 올레닌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와 마주한다. 이곳의 사람들은 문명사회의 복잡한 규범이나 도덕률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살면서 사냥하고, 낚시하고, 포도주를 마시고, 사랑하고, 싸우기도 한다. 그들의 삶은 단순하고 강렬하며 활동적이다.
어느 맑은 날 아침, 올레닌은 처음으로 코카서스의 장엄한 산맥과 마주한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순백의 눈을 이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신들의 세계와도 같은 풍경이었다. 그는 거대하고 순결한 아름다움 앞에서 숨이 멈추어지며 압도당한다. 그는 모스크바의 화려한 무도회도, 아름다운 여인에게도, 느끼지 못한 황홀감에 빠져든다. 저 순결한 산맥처럼 영원하고 진실한 세계가 있는데, 자신은 지금까지 얼마나 하찮고 거짓된 것들에 빠져서 살아왔던가. 이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문명의 때가 한 겹 벗겨져 나가는 듯한 해방감이 밀려온다.

그는 어느 날 홀로 숲속으로 들어간다. 사슴이 잠들었던 둥지에 누워, 자기의 팔에 앉아 피를 빠는 모기를 바라본다. 그는 모기를 죽이는 대신, 그 작은 생명체와 자신이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모기는 살기 위해 피를 빨고 자신 역시 살기 위해 갈망한다. 그때 갑자기 든 생각이 있다. 행복은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모기처럼, 사슴처럼,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신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깨달음은 그에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다.
이곳에는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두 명의 인물이 있다. 그들은 올레닌이 갈망하는 야생의 삶을 온몸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한 명은 늙은 사냥꾼 예로슈카(Yeroshka)이다. 그는 평생을 숲에서 살아온 자연 그 자체와도 같은 인물이다. 그는 올레닌에게 말한다. “신은 모든 것을 인간의 기쁨을 위해 만드셨지. 죄라는 건 없어. 꿩을 쏘고, 암염소를 유혹하고, 예쁜 처녀와 사랑을 나누는 것, 그게 다 기쁨이야.” 그에게 삶은 복잡한 도덕률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 즐기는 축제다. 또 다른 한 명은 아름답고 야성적인 코사크 처녀 마리얀카(Maryanka)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모스크바의 귀부인들이 가진 인공적인 아름다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녀는 마치 잘 익은 과일처럼 건강하고 야생마처럼 당당하다. 올레닌은 그녀에게 매료된다.

맑은 가을날, 올레닌은 마리얀카와 함께 포도를 딴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탐스럽게 익은 포도송이를 따는 그녀의 건강한 손길, 소박한 농담에 터져 나오는 그녀의 청량한 웃음소리에 올레닌은 충만한 행복감을 느낀다. 모스크바의 살롱에서 나누던 지적인 대화나 계산된 밀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기쁨이 그의 온몸을 감싼다. 그는 이대로 그녀와 함께 늙어갈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이 야생의 세계에 완전히 녹아들 수 있다는 달콤한 환상에 빠져든다.
올레닌은 코사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코사크의 옷을 입고, 그들처럼 사냥을 하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려 애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마리얀카에게 청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모두 바치고, 그녀를 화려한 귀부인으로 만들며, 그녀의 남편이 되어, 이 마을에서 평생을 살겠다고 고백할 참이었다. 자기희생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고귀한 형태라고 믿었던 문명인 올레닌에게 그것은 최고의 구애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산산조각이 난다. 마을의 젊은 코사크 영웅 루카슈카(Lukashka)가 체첸인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다. 온 마을이 그의 영웅적인 행동을 칭송한다. 마리얀카의 마음도 루카슈카를 향해 있음을 올레닌은 직감한다. 그는 마리얀카에게 다가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려 하지만, 그녀의 무관심한 표정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녀에게 올레닌은 그저 잠시 머물다 떠날, 자신들의 세계에 녹아들 수 없는 이방인일 뿐이다. 그의 재산도, 그의 희생적인 사랑도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순간 올레닌은 자신과 그들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투명한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그들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결코 그들이 될 수는 없다. 그는 결국 문명인이라는 굴레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쓸쓸히 마을을 떠난다. 올레닌은 비록 코사크가 될 수는 없었으나 그들의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중요한 배움을 얻는다. 톨스토이가 '코사크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는 행복의 메시지는 놀랍도록 단순하고 원초적이다. 행복은 부나 명예, 혹은 복잡한 이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이나 고귀한 도덕률을 실천하는 데 있지도 않다. 행복은 늙은 사냥꾼 예로슈카의 말처럼,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삶에 있다. 여기서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이란 타인을 해(害)하는 이기심이 아니라, 사회가 강요하는 인위적인 역할과 관념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존재와 생명력을 온전히 긍정하는 가장 솔직하고 근본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톨스토이는 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고, 사슴이 숲을 달리는 것처럼, 인간 역시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하다고 본 것이다.
'코사크 사람들'은 청년 톨스토이가 문명 세계에 던지는 통렬한 비판이다. 톨스토이는 코카서스의 광활한 대자연을 통해, 행복이란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된 가장 기본적인 생명력을 회복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문명의 위선과 욕망을 걷어내고, 순수한 자기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있을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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