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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문학 속의 행복

안나카레니나에 담긴 행복

by 행복 리부트 2025. 10. 21.

1870년대 러시아는 변화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농노 해방(1861)은 끝났지만,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서구로부터 밀려온 자유주의, 낡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허무주의, 그리고 여성의 삶과 역할을 묻는 새로운 목소리는 차르의 절대 권력과 신의 이름 아래 유지되던 낡은 가치관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의 대작을 발표한 이후, 

정작 자신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그는 문학적 성공의 정점에서 오히려 삶의 의미와 죽음의 공포, 신과 구원의 문제 앞에서 고뇌하고 있었다. 마침내 세상에 나온 명작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 na), 1877>는 당대의 사회상을 해부하고, 인간의 삶에 대한 작가의 고뇌가 녹아든 또 하나의 명작이자 행복의 탐구서였다.
  
소설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마치 신의 계시와도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독자들을 두 개의 삶과 운명 앞으로 끌고 간다. 하나의 운명은 불꽃처럼 타오르다 끝내 파멸로 치닫는 안나의 삶이고, 다른 하나의 운명은 끝없는 방황과 고뇌 속에서 마침내 구원을 찾아가는 레빈의 삶이다.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의 꽃이다. 그녀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아름다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지성, 존경받는 정치가인 남편 알렉세이 카레닌(Alexei Karenin)과 천사 같은 아들 세료자(Seryozha)를 둔 모든 것을 가진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권위적이고 사랑이 없는 남편과의 삶이 고통스럽고 우울하였다. 

 

 

기차역에서 운명적으로 만나는 안나와 브론스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모스크바행 기차 안에서 운명적인 남자를 만난다. 그는 매력적이고 유능한 젊은 장교, 알렉세이 브론스키(Alexei Vronsky)이다. 안나의 얼어붙어 있던 심장은 그의 뜨거운 눈빛과 저돌적인 구애에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친다. 그녀는 처음으로 열정적이며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결국 안나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 친구들, 심지어 목숨보다 귀한 아들까지 버리고,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소설의 또 다른 축에는 콘스탄틴 레빈(Konst antin Levin)이 있다. 그는 도시의 위선을 경멸하고, 시골 영지에서 땀 흘려 일하며 삶의 본질을 찾으려 애쓰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청년이다. 그의 서투르지만 진실한 사랑은 젊고 아름다운 귀족 여성 키티(Kitty)를 향한다. 하지만 사교계에 갓 데뷔한 키티는 브론스키의 세련되고 화려한 매력에 마음을 빼앗겨 레빈의 투박한 청혼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첫사랑의 쓰라린 아픔을 겪고, 깊은 절망에 빠진 레빈은 농업 개혁에 몰두한다. 브론스키에게 버림받고 상심한 키티 역시, 요양을 떠나 긴 성찰의 시간을 보낸다. 시간은 흐르고, 두 사람은 운명처럼 다시 만난다.

 

 

키티와 재회하는 레빈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은 두 사람은 마침내 가정을 이룬다. 레빈은 아내와의 갈등, 형의 죽음, 신앙에 대한 회의, 농촌의 고된 현실 등 수많은 고뇌의 파도를 넘나들며, 평범한 가정생활과 농촌의 일상에서 끊임없이 행복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열정적이다. 사회의 냉대를 피해 떠난 이탈리아에서의 삶은 꿈결처럼 황홀하였다. 하지만 그 꿈은 오래갈 수 없었다. 러시아로 돌아온 그들을 맞이한 것은 차가운 현실이다. 안나는 더 이상 예전의 카레니나 부인이 아니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을 버린 불륜녀라는 주홍글씨를 단  채, 사교계에서 완전히 추방당한다. 오페라 극장에서 예전 친구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그녀는 자신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처절하게 깨 닳는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안나에게는 브론스키가 삶의 유일한 존재이다. 

브론스키를 생각하며 질투심에 불타는 안나

 

그녀는 브론스키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한다. 브론스키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주체할 수 없는 질투심이 일어난다. 그녀의

병적인 집착은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 브론스키는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의심과 집착에 숨이 막히고, 

사회적 고립이 주는 무게에 점차 지쳐간다. 당시 남성에게 관대한 사교계에서 그는 여전히 친구를 만나고 경마를 즐길 수 있었지만, 

안나는 그의 일상적인 외출조차 외도로 의심한다. 브론시키가 외출할 때마다 그녀의 심장은 감당할 수 없는 질투심으로 불타오른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나를 미워해줘!" 그녀의 절규는 사랑이 아닌 독이 되어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이 지독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주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맹목적인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그를 처음 만났던 기차역에서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 

 

브론스키는 그녀의 죽음 이후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는 치통으로 밤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안나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끝없는 죄책감에 몸부림친다. 그는 결국 스스로 죽음을 찾아 세르비아와 튀르크의 전쟁(1876)터로 떠난다. 그의 뒷모습은 이미 삶이 끝난 자의 마지막 발걸음과 다름없었다.

톨스토이는 이 두 쌍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행복의 본질을 파고든다. 안나는 열정적인 사랑을 좇아 안정된 가정을 버리지만, 정신적인 병과 사회적인 고립, 그리고 파멸에 이른다. 반대로 레빈은 끝이 보이지 않는 허무한 삶 속에서 방황하지만 평범한 일상과 가족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이 소설은 행복이 화려한 삶이나 극적인 사랑보다는 평범한 일상에서 의미를 찾고 긍정하는 태도에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를 다녀오는 행복한 레빈 가족

 

톨스토이는 행복이 하루의 고단함 속에서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밥을 짓고, 고단함을 서로 위로하며, 아이의 웃음을 지켜보고,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들의 삶 속에 있음을 강조한다. 행복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소설 <전쟁과 평화> 이후로 일관되게 이어진다.
안나의 비극은 욕망을 절대화할 때 행복이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레빈의 일상은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때 행복이 가까이 있음을 일깨운다. 

 

부와 지위, 그리고 자랑스러운 명예와 특별한 삶도 행복할 수 있겠지만, 톨스토이가 주장하는 행복과는 거리감이 있다. 행복은 사람이 살아가는 덤덤하고 평범함 속에서 자신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의미를 부여하는 삶에 있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메시지는 “행복은 너의 평범한 삶을 사랑하는 순간, 이미 너의 곁에 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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