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세상이 왜 이런지 묻고 싶다. 사람들은 세상이 정의롭고 공정하길 원한다. 악은 처벌받고 미덕이 보상받는 세상을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 다르다. 악행이 처벌받지 않는 경우도, 선행이 보상받지 못한 경우도 종종 있다.
나쁜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나고, 좋은 사람들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난다. 이런 사회현상은 인간의 행복에도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이런 세상과 삶을 ‘부조리(不條理, absurdism)’라고 불렀다. 삶의 부조리는 개인의 욕구와 사회현실의 불일치에서 온다. 이성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이 바로 부조리한 세상이다. <이방인>의 주인공은 ‘뫼르소(Meursault)’이다. 그는 프랑스인으로, 알제리에서 사는 평범한 회사원. 그의 생각과 행동은 주변 사람들과 다른 것이 많았다. 여러 면에서 독특했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의 시점으로 알아본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돌아가신 정확한 날짜는 나도 모른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하품만 했다.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눈물은 나오지도 않았다. 그게 이상하다고 다들 수군거렸다.

며칠 뒤, 나는 친구 ‘마송’과 해변으로 갔다. 마송은 아랍인과 싸웠고, 아랍인은 칼을 빼 들었다. 햇빛은 눈이 부시게 쨍쨍했다. 나는 땀이 줄줄 흐르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태양 빛이 뜨겁고 눈부신 순간, 나는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나도 모르게, 아랍인을 향해 다섯 발을 발사했다. 그것은 정말로 햇빛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태양 때문에 살인했다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정말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사람을 죽였다.

나는 체포됐다. “왜 죽였느냐”는 경찰의 물음에, “햇빛이 너무 강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수감 된 감옥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다. 사람들은 감옥에 자유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감옥에서 오히려 생각이 자유로워졌다. 재판이 시작됐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검사와 판사 모두 나를 정죄(定罪, condemnaion)했다. “너는 장례식 때 울지 않았잖아.” “엄마가 죽은 날 커피 마셨지?” “담배도 피웠고.” 사람을 살해한 이유보다, 어머니 장례식날, 울지 않은 게 더 큰 죄였다. 나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사회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의 기준은 이상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죽음을 앞두고 나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소중해졌다. 창밖의 하늘, 감옥 벽에 금이 간 자국, 교도관의 발소리. 이제 서야 진짜로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겁낼 것도, 후회할 것도 없었다. 죽음은 결국 공평한 결말이다. 누구든 다 도착하는 역. 먼저 내리든 늦게 내리든 종착역은 같다.
신부가 감옥으로 와서 내게 말했다. “신은 자비롭습니다. 회개하세요.” 나는 미소 지었다. “저는 지금 제 인생이 자비롭다고 생각해요.” 신부는 이해 못한 눈빛으로 떠났다. 나는 구원보다 지금의 순간이 더 중요했다. 사형 집행이 다가올수록, 나는 삶을 더 소중하게 느꼈다.

사람들은 나를 괴물이라 했다. 감정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는 이유이다. 나는 단지 정직했을 뿐이다. 억지로 슬픈 척, 억지로 반성하는 척은 하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세상은 분노할 땐 분노하고, 슬플 땐 울어야 한다고 한다. 근데 난 진짜로 그런 감정이 없었다. 그게 죄인가? 나는 삶이 부조리하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가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상하게도, 죽음을 앞두고 나는 살아 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감사했다. 세상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이러한 세상을 이해한다.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이 순간, 햇빛 아래서 진실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나는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솔직한 사람일 뿐이라고.” 그냥, 내가 느낀 것만 말했을 뿐이다. 감정을 억지로 꾸미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방인이라 불렀다. 진짜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감정을 연기하는 세상이 아닐까.
<이방인>의 마지막 문장은 충격적이다. 사형을 앞둔 뫼르소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행복하다”고 말한다. 뫼르소가 말한 ‘행복’은 모든 희망이 부질없음을 깨달은 이후의 명징한 자각에서 오는 감정일 것이다. 죽음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세상의 무의미함을 수용하며, 정직하게 살아온 한 인간의 마지막 깨달음. 그것이 바로 뫼르소의 행복이라고 카뮈는 주장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어떤 삶이 진실한 삶인가?” 카뮈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세상은 너를 이해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너 자신을 속이지 말라. 정직함은 유일한 진실이며, 인간다움의 마지막 지점이다.“ 우리는 뫼르소처럼 모든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고 살 수는 없다. 정직함은 삶에서 소중한 덕목임은 틀림없다. 더군다나 진실이 무엇인지, 누가 자신을 속이지 않고 정직한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혼탁한 지금의 현실에서는 더욱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카뮈 외에는 진정한 행복이 정직함에서 온다고 주장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짓된 정의나 감정을 연기하면서 얻는 성취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행복은 주관적 감정이다. 누구도 뫼르소가 죽음을 앞에 두고 느낀 행복감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행복한 감정은 오로지 자신만이 느끼고 음미할 수 있는 감정이다. 부정직한 사람만은 알 것이다. 나는 지금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은 부조리하게도 정직하지 않은 사람을 정죄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카뮈는 말한다. “반항하라, 그러나 거짓으로부터 가장 먼저 반항하라. 그래야 당신은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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