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복 만들기/문학 속의 행복

시지프의 신화와 행복

by 행복 리부트 2025. 10. 21.

"열심히 살아도 달라지는 건 없다." 우리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문득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이걸 왜 하는 거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바로 이 질문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삶 자체가 부조리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부조리한 삶’이 아니었다. 그러한 현실에서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카뮈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의 모순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랐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가난한 마을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전쟁과 부조리, 억압과 불평등은 그에게 일상이었다. 

알베르 카뮈

 

▶ 태양의 아들 알베르 카뮈

카뮈는 가난한 식민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글을 읽지 못했다. 그는 지독한 폐결핵으로 평생 죽음의 그림자를 곁에 두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뜨거운 태양과 푸른 바다를 사랑했다. 축구팀의 골키퍼였고, 불의에 저항하는 저널리스트였다. 훗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알베르 카뮈다. 카뮈는 1913년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삶은 결핍으로 시작됐다. 아버지는 1차 대전에서 전사했다. 귀가 어둡고 문맹인 어머니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의 세상은 가난했지만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과 소금기 섞인 바람으로 가득했다. 그는 훗날 말했다. "가난이 내게는 불행이 아니었다. 빛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는 축구를 사랑했다. 골키퍼는 팀의 패배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최후의 보루다. 그는 이 자리에서 책임감과 연대를 배웠다. 그의 철학은 책상이 아닌 가난한 골목과 뜨거운 축구장에서 시작된 셈이다.

1. 부조리의 발견, 『이방인』

스무 살 무렵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 죽음은 늘 그의 곁을 맴돌았다. 그는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과 의미를 갈망한다. 하지만 세상은 냉혹한 우연과 죽음으로 가득하다. 이 둘 사이의 거대한 균열, 그는 이것을 '부조리(Absurd)'라 불렀다. 이러한 생각을 담아낸 소설이 바로 『이방인』(1942)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과 감정의 연기를 거부한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는 살인 재판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는다. 그는 세상의 이방인이었다. 카뮈는 뫼르소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진실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조리한 세상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같은 해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도 발표했다. 신에게 벌을 받아 영원히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 그의 노동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카뮈는 말한다. 시시포스는 자신의 운명을 직시하고, 그 무의미함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바위를 밀어 올린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신보다 우월해진다. "우리는 시시포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이것이 부조리에 대한 카뮈의 첫 번째 대답, '반항'의 시작이었다.

2. 저항과 연대, 『페스트』

2차 대전이 터지자 카뮈는 프랑스로 건너가 레지스탕스에 합류했다. 지하 신문 『콩바』를 만들며 나치의 야만에 맞서 싸웠다. 그는 이제 개인의 부조리를 넘어 시대의 거대한 악과 마주했다. 이 경험은 그의 두 번째 걸작 『페스트』(1947)를 낳았다. 알제리의 평화로운 도시 오랑에 흑사병이 퍼진다. 도시는 봉쇄되고 사람들은 죽어 나간다. 페스트는 전쟁이자 거대한 악의 상징이다. 의사 리유와 그의 동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묵묵히 환자를 돌본다. 그들은 영웅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할 일을 할 뿐이다.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이야기한다. 부조리한 재앙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저항하는 '연대'라고 말이다.

3. 반항, 그리고 고독

전쟁이 끝나고 카뮈는 당대 최고의 지성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모든 이념에 반대했다. 특히 공산주의를 맹렬히 비판한 에세이 『반항하는 인간』(1951)은 오랜 친구였던 사상가 장폴 사르트르와의 결별을 가져왔다. 그는 다시 고독한 이방인이 되었다. 알제리 독립 전쟁이 터졌을 때도 양쪽 모두로부터 비난받았다. 그는 아랍인의 편도, 프랑스인의 편도 아닌 '정의'의 편에 서려 했기 때문이다.

4. 갑작스러운 죽음, 남겨진 이야기

1957년, 그는 44세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 연설에서 "예술가는 역사를 만드는 자의 편이 아니라, 역사의 고통을 받는 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3년 뒤인 1960년, 그는 어이없는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부조리를 이야기했던 작가의 너무나 부조리한 죽음이었다.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가방 속에는 미완성 유고 『최초의 인간』 원고가 있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이야기하려 했던 가난과 사랑,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알베르 카뮈.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찾으려 했다. 태양을 사랑하고, 부당함에 반항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했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시지프(Sisyphe)’는 매일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린다. 하지만 바위는 다시 굴러 내린다. 그는 다시 밀어 올린다. 끝도 없는 반복이다. 신화 속 ‘시지프’는 의미 없는 노동, 힘든 반복, 포기할 수 없는 운명을 상징한다. 하지만 카뮈는 말한다. ‘시지프’는 패배자가 아니라고, 그는 영웅이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지프가 신들의 부조리한 조치에 저항하였으며, 자신의 운명적인 삶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삶의 의미를 깨달았으며, 그러한 삶 속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는 이유이다.

인간은 삶의 무의미함을 깨달았을 때, 두 가지 선택을 마주한다. 포기하거나, 계속하거나. 카뮈는 명확하게 말한다. “포기는 부조리한 세계에 굴복하는 일이다. 진짜 인간은, 부조리를 껴안고 살아가는 존재다. 부조리를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유의 시작이다.” 삶은 본래 의미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삶의 의미는 누구의 강요도, 신의 명령도 아니다. 내가 내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것. 그것이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다.
카뮈에게 있어 행복은, 세상이 완벽할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세상이 불완전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완전한 질서나 영원한 진리를 가진 세상을 기대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은 때로는 어둡고, 부조리하고, 잔혹하다. 모든 인간은 바로 그 사실을 마주 보면서 살아간다. "세상은 나를 실망하게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산다." 이것이 카뮈가 말하는 인간의 위대함이다. "이 세상이 내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나는 세상을 거부해야 할까?" 카뮈는 ”아니다,“ 라고 답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름다움과 추함을 함께, 기쁨과 고통을 함께. 이것이 바로 부조리한 세계에 살아가는 인간의 대답이다. 많은 사람은 ‘행복을 성취’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이루면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카뮈의 생각은 다르다. 행복은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카뮈의 생각은 긍정심리학자들의 행복론과 다르지 않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시지프’는 정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매 순간, 바위를 밀어 올리면서 자기 자신과 화해한다. 그 과정, 그 수고, 그 노력 속에 행복이 깃들어 있다. 행복할 틈이 없었다면, 평생토록 신의 부조리한 조치에 저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바위를 밀어 올리는 순간, 그는 신들을 이긴다. ‘시지프’는 더 이상 벌을 받는 죄인이 아니다. 그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카뮈는 말한다. "상상해야 한다. ‘시지프’(자신)는 행복하다고."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삶은 부조리로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받아드림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저항이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


‘시지프의 신화’는 고대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같은 지하철, 같은 사무실, 같은 컴퓨터 앞에 앉는다.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도, 또 다른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현대의 직장인들은, ‘시지프’보다 더 무거운 바위를 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과, 상사의 기대, 사회적 비교, 산꼭대기에 도달할 것 같지만 이내 다시 굴러떨어지는 현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일어나 변함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왜일까? 바위를 밀어 올리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동료를 위로하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삶은 늘 마음 같지 않지만, 그 안에는 소소한 행복이 있다. 카뮈가 말한 ‘시지프’의 미소는 바로 이런 순간들에 깃들어 있다.
부모는 끝없는 사랑을 반복한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걱정은 끝이 없다. 부모의 삶은 일종의 부조리한 여정이다. 헌신과 노력은 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부모들은 다시 아이를 안아주고, 다시 밥을 차리고, 행복할 미래를 꿈꾼다. 요즘 청년들은 참 힘들다. 스펙을 쌓아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희망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청년들은 공부를 계속하고, 창업을 시도하고, 웃음을 나누며 숨을 쉰다.


카뮈는 말한다. "삶은 부조리하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자." 우리는 언제나 미완성의 삶을 산다. 그 미완성 속에 진짜 행복이 있다. 바위를 밀어 올릴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한다. 힘들게 밀어 올린 바위는 떨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는 모두 현대의 ‘시지프’이다. ‘시지프’의 삶에도 ‘아보하’는 늘 우리 곁에 있다. 아주 보통의 하루는 오늘도 계속 된다. 우리의 일상은 힘들다, 하지만 숨 쉴 여유는 있다. 작은 꿈과 사랑, 믿음과 위로가 그렇다. 그것이면 충분하진 않겠지만, 살아갈 이유는 된다.

'행복 만들기 > 문학 속의 행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과 평화가 알리는 행복  (0) 2025.10.21
코사크 사람들에 담긴 행복  (0) 2025.10.21
톨스토이 문학 입문과 행복  (0) 2025.10.21
페스트에 담긴 행복  (0) 2025.10.21
이방인의 행복  (0) 2025.10.21

TOP

Designed by 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