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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마음과 관계 속의 행복

명분과 행복

by 행복 리부트 2025. 12. 15.

조선시대 선비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말이 있습니다. 선비는 목숨을 버려서라도 의(義)를 지킨다. 지조와 의리를 중시하는 선비 정신이 보이는 말입니다. 그들은 권력이나 이익보다 지조(志操)와 의리(義理)를 중시하며 때로는 목숨을 걸고라도 바른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명분(名分)이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구실을 의미합니다. 사회적으로는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규범과도 같습니다. 공자는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서가 없고, 말이 순서가 없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즉, 사회 질서와 도덕적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명분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선비의 모습, 제미나이

명분을 선택한 부정적 결과

명분을 지키다 보면 문제도 발생합니다. 조선 선비들이 명분에 집착해 외교적으로 나라에 해를 끼친 대표적 사례는 명청 교체기에 일어 났습니다. 특히 광해군과 인조 시기의 대외정책이 대표적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명나라의 원조를 받았지만 후금(청나라의 전신)이 급부상하면서 양쪽 사이에 끼인 처지가 되었습니다.

 

광해군은 현실적으로 후금과 명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쳤습니다. 국가 생존을 위한 실리적 선택이었지만 선비들은 이를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것이라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명나라에 대한 불충으로 규정하고, 결국 인조반정을 일으켜 명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내세웠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후금과의 관계를 악화시켜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불러왔습니다. 인조는 명에 대한 명분을 지키려다 청과의 전쟁을 피하지 못했고 결국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습니다.선비들은 명에 대한 의리를 국가 생존보다 우선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명분은 지켰으나 국토와 백성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인조의 삼전도 굴욕(출처:JTBC 드라마 궁중잔혹사)

 

명분은 행복위한 양날의 칼

조선시대 선비들은 비가 와도 뛰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며칠을 굶어도 냉수 한 사발 마시고 이를 쑤셨다고 합니다. 선비 정신은 고귀하였습니다. 사람은 굶어도 명분은 챙겼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명분은 삶의 이유였고 때로는 굶주림과 고난을 감수하면서도 지조를 지키는 것이 곧 행복이자 자존심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옳다고 믿는 도리를 지키며 살아갈 때 내적 만족과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행복의 기반입니다. 하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형식적 도리만을 고집하다 보면 인간적인 즐거움이나 삶의 여유를 잃습니다. 결국 스스로를 옥죄는 굴레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순간에 실속과 행복 대신 명분인 체면과 도리를 선택합니다. 오늘 말씀드리는 주제는 행복의 굴레가 되는 명분에 관해서입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와 명분

우리는 결정을 내릴 때 항상 그럴듯한 이유를 찾습니다. 그냥 하고 싶어서 혹은 하기 싫어서라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친척이 돈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빌려 주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절할 때도 명분을 찾습니다. 돈이 묶여 있어서, 아내가 돈 관리를 해서 라며 핑계를 댑니다. 그냥 빌려주기 싫어라고 말하면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찍힐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부인은 이혼하고 싶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참고 산다고 말합니다. 퇴사하고 싶지만 조직의 의리 때문에 참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명분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냈을 때 받을 비난이 두려워 도덕적인 방패 뒤로 숨는 것입니다.

착한사람 컴플렉스가 있는 40대 남성, 제미나이

해야 하는 나 vs 원하는 나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Tory Higgins)는 자기를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는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당위적 자기(Ought Self)입니다. 명분을 중시하는 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이상적 자기(Ideal Self)입니다. 욕망을 중시하는 나입니다. 불행은 이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 때 발생합니다.

 

속마음은 명절에 시댁이나 처가에 가지 않고 쉬고 싶은 데 그래도 며느리,  또는 사위 도리는 해야한다는 생각도 만만치 않습니다. 명분을 선택하면 모두의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하지만 명분에 짓눌린 삶은 안으로 골병이 들고 화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유독 화병이 많은 이유도 명분 문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돈을 좋아하면 속물 같고, 쉬고 싶다고 하면 게을러 보일까 봐 걱정합니다. 그래서 자꾸 명분이라는 포장지로 욕망을 감춥니다. 하지만 행복해지려면 실리도 챙겨야 합니다. 여기서 실리란 돈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나의 감정적 이익도 포함됩니다.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명분은 남이 주는 훈장이지만 행복은 내가 챙기는 선물과도 같습니다.

합리적 명분과 비합리적 명분, 제미나이

합리적, 비합리적 명분

명분은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적 기둥이 될 수도 있지만 현실과 균형을 잃으면 사람의 행복을 갉아먹는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아름다운 사회는 명분과 현실이 함께 할때 만들어집니다. 합리적인 명분은 사회를 정의롭고 아름답게 합니다. 비합리적인 명분은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합리적 명분은 공익에 부합하는 명분입니다.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지키는 명분을 말합니다.  현실에 부합하는 명분입니다.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켜 실제로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명분을 말합니다. 도덕적 설득력이 있는 명분입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도리와 가치에 기반한 명분을 말합니다.

 

비합리적 명분은 형식에 집착하는 명분입니다. 현실 문제를 외면하고 체면이나 전통만을 고집하는 명분을 말합니다.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하는 명분입니다. 집단의 권력 유지나 개인의 체면을 위한 명분을 말합니다. 실질적인 해악을 끼치는 명분입니다. 실제로는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도 옳다는 말만 내세우는 명분을 말합니다.

 

명분 싸움은 피곤합니다.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따지다 보면 관계만 상합니다. 때로는 솔직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게 나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도리상 어쩔 수 없잖아라고 말하는 것보다 사실 내가 힘들어서 못 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비합리적인 명분 뒤에 숨지 말고 초라하더라도 나의 욕망을 솔직하게 밝혀 보세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랬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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