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멋진 친구의 아들 녀석이 장가를 갔습니다. 요즘 결혼식은 축제입니다. 주례는 사라지고 양가 부모님이 유머 넘치는 덕담을 하거나 신랑 신부가 춤을 추며 입장하기도 합니다. 특별한 형식은 없고 즐거움과 개성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그들이 주인공이고 인생의 중요한 날을 기리는 그들의 방식이니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에 남을 결혼식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죠.
하지만 오늘 제가 마주한 결혼 예식은 조금 달랐습니다. 식장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느껴지는 공기의 질이 살짝 달랐다고 할까요. 오늘 결혼 예식은 엄숙하지만 무겁지 않았고 진지하지만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양가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 작지 않는 교회의 담임 목사가 집례를 맡았습니다. 주례석에 선 분은 신용백 목사였습니다. 저도 주위의 친구들로 부터 들었던 적이 있는 낯익은 이름입니다. 교계에서는 꽤나 이름이 알려진 분이 틀림없습니다. 오랜 군목 출신 특유의 강직함과 아버지 같은 따뜻함을 동시에 가지고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목회자로 유명합니다. 오늘 식장에서 들은 예기도 있습니다. 생면부지의 만성 신부증 환자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꺼이 기증하였다는 내용입니다. 범상하지 않은 목회자 인 것은 분명합니다. 신도들로부터 진심으로 존경받는 목사이신 그가 단상에 서니 수백 명의 하객이 모인 식장이 일순간 고요해집니다. 고요는 존경하는 분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여러번 교회에 다닌 적은 있으나 지금 기독교 신자는 아닙니다. 당연히 그 분을 대면한적도 설교 말씀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품격있는 예식과 솔잎 선물
예식은 물 흐르듯 진행되었습니다. 목사님의 목소리에는 과시와 허세가 없었습니다. 상투적인 축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신랑 신부를 향한 애정과 진실함이 꾹꾹 담겨 있었습니다. 하객들은 목사님의 진행을 숨을 죽이며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결혼 성경(?)을 신랑 신부에게 선물하는 순서도 흥미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신랑과 신부에게 성경 위에 손을 얹게 하고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솔잎 두 개를 코팅한 종이였습니다. 목사님은 코팅한 종이를 높이 들어 하객들에게도 보여주며 말씀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솔잎이 보이십니까? 제가 어제 내린 눈을 털어내고 나무에서 직접 딴 푸른 생잎입니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 이것은 땅에 떨어져 뒹굴던 갈색 낙엽입니다." 하객들은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소나무 잎을 자세히 보신 적이 있습니까? 소나무 잎은 언제나 두 개가 한 쌍을 이룹니다. 이 둘을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송진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은 시각적이고 직관적이었습니다. 그는 생잎과 낙엽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씀을 이어갔죠.
"보세요. 싱싱한 초록색 생잎도 두 개가 송진으로 딱 붙어 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눈보라가 쳐도 이 둘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생명을 다해 땅에 떨어진 낙엽을 보십시오. 색은 바래고 말라 비틀어졌지만 여전히 두 개는 송진에 의해 하나로 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결혼식장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솔잎으로 이러한 표현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부부는 이 솔잎과 같아야 합니다. 젊고 아름다운 시절, 파릇파릇한 생잎일 때 서로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늙고 병들고 초라한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지는 순간에도 부부는 서로를 놓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 땅에 뒹굴 때조차도 함께여야 합니다. 그것이 부부입니다." 그는 코팅된 솔잎을 신랑 신부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송진이 호박(Amber)이 되도록
솔잎과 송진에 대한 말씀은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두 잎을 붙이고 있는 끈적끈적한 송진은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끈적거려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부부의 삶도 그렇습니다. 좋을 때만 있겠습니까? 고난도 있고 갈등도 있고 서로가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잠시 호흡을 고릅니다. 일순 하객석에서도 숨을 죽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송진이 오랜 세월 땅속에서 굳어지면 무엇이 되는지 아십니까? 바로 보석인 호박(Amber)이 됩니다. 송진이 두 잎을 끝까지 붙잡고 인내한 그 시간이 굳어져 영롱한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 두분의 사랑도 그 끈끈한 인내와 의리로 견뎌내어 훗날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호박 보석처럼 빛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가 된 마음, 축하의 자리
이날 결혼식이 유독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하객들의 태도입니다. 보통 결혼식장은 바쁘신 분들이 많다보니 예식이 끝나기도 전에 만찬장으로 가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축의금만 내고 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주최 측의 배려였는지 교회의 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식사는 모든 예식이 끝난 후에 제공되었습니다. 사전에 안내를 하였습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예식이 끝나기 전에 자리를 뜨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리가 부족해서 서서 있는 하객들조차 잡담을 멈추고 예식에 집중하였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이 오직 신랑 신부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고요하면서도 축복하는 에너지가 신랑 신부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하객이 많고 담임 목사가 예식을 집례해서 그런걸까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식은 엄숙함보다 따뜻하고 유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재치 있는 말씀에 간간이 웃음꽃이 터지는 정말이지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하객들의 진지한 눈빛들 사이로 흐르던 유쾌한 공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예식을 마치고 식장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꽉 찬 듯 뿌듯하였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두 젊은이의 벅찬 설렘이 하객석에 앉아 있던 제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는지 덩달아 행복하였습니다. 친구의 경사가 마치 제 일인 양 마음이 뿌듯하였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름답고 의미있는 결혼식을 보았습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12월의 차가운 겨울바람도 가슴에 담아온 훈훈한 온기만큼은 식히지 못하더군요. 오늘 제가 느낀 행복함이 전염되어, 그리고 솔잎 두 장이 전해준 뜨거운 사랑의 메시지까지 함께, 글을 읽는 여러분의 마음에도 따뜻한 온기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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