져녁 6시입니다. 사무실 모니터 구석에 알람이 뜹니다. 심장이 쿵하고 반응합니다. 오늘도 팀장님은 자리에 계십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제 할 일을 다 했습니다(아마도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창을 닫습니다. Ctrl+S. Alt+F4. 가방을 챙기는 손길이 분주합 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무실 문을 닫는 그 순간, 오늘 하루 중 가장 가벼워지는 순간입니다.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습니다.
퇴근길 지하철은 여전히 지옥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 합니다. 하지만 아침의 지옥철과는 다릅니다. 일단 방향이 집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견딜 수 있습니다. 주섬주섬 에어팟을 낍니다. 시끄러운 환승역 소음이 차단됩니다.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틉니다. 오늘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입니다. 가끔은 밀린 웹툰을 봅니다.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폰을 보고 있지만 사실은 로맨스 웹툰에 과몰입 중입니다.

삑. 삑. 삑. 삑. 도어록 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현관문을 열자마자, '우다다다다!' 작은 댕댕이가 저에게 돌진합니다. 꼬리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프로펠러처럼 돌고 있습니다. "아이구, 우리 애기! 보고 싶었쪄" 가방은 현관에 아무렇게나 던져 둡니다. 일단 녀석을 꽉 안아줍니다. 온 얼굴을 핥아댑니다. 조금 짠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나만 기다렸을 작은 생명체, 녀석이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욕실로 향합니다. 뜨거운 물을 틉니다. 욕실 가득 차오르는 스팀, 뜨거운 물줄기가 어깨에 닿는 순간, "아-!"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늘 들었던 잔소리, 짜증 났던 이메일, 무거웠던 책임감, 전부 씻어내는 기분입니다.
좋아하는 바디워시 향기, 뽀득뽀득... 세상에서 제일 편한 수면 잠옷으로 갈아입습니다. 보송보송합니다. 이제서야 퇴근이 실감납니다. 완전한 나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배가 고픕니다. 하지만 요리는 귀찮습니다. 20대 직장인에게 요리는 사치입니다. 배달 앱을 켭니다. 오늘은 왠지 매콤한 게 당깁니다. 떡볶이를 시킬까. 아니면 어제 먹다 남은 닭볶음탕을 데울까. 간단하게 밥을 차립니다. 소파 앞 작은 테이블이 전용 식탁입니다.
밥 먹을 땐 무조건 TV. 이건 국룰입니다. "나는 솔로"를 보며 과몰입합니다. "저기서 왜 저래!" 혼잣말을 하며 밥을 먹습니다. 강아지가 발밑에서 간식 달라고 쳐다봅니다. 너 하나, 나 하나.

배부르고 등 따십니다. 이 시간이 바로 골든 타임입니다. 스마트폰을 집어 듭니다. 밀린 인스타그램 피드를 확인합니다. 친구들은 다들 좋은 데 놀러 갔습니다. '좋아요'를 눌로 줍니다(진심 10% + 부러움 90%). 유튜브 알고리즘에 나를 맡깁니다. 귀여운 강아지 영상을 봅니다. 우리 애기가 더 귀엽습니다. 쓸데없는 쇼핑 하울을 봅니다. 나도 모르게 구매하기를 누를 뻔합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봅니다. 주인공이 답답하게 굴면 가슴을 치며 욕을 합니다. 하지만 다음 주 예고편은 꼭 챙겨봅니다. 이 시간만큼은 그 누구도 나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나, 그리고 내 스마트폰, 그리고 내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댕댕이가 주인공입니다.
눈이 스르르 감깁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습니다. 퇴근 후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른 걸까요. 양치하러 가는 길이 천 리 길 같습니다. 내일 할까... 잠깐 고민하지만, 치과 비용을 생각하며 일어섭니다. 드디어 침대에 눕습니다. 아, 내 침대, 뽀송뽀송한 내 이불, 세상에서 제일 푹신하고 안락합니다. 천국이 있다면 여기일 겁니다. 불을 끕니다. 강아지가 꼼지락거리며 이불 속으로 파고듭니다. 내 팔을 베고 눕습니다. 댕댕이의 따뜻한 체온, 보들보들한 털의 감촉, 규칙적인 작은 숨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습니다. 오늘도 고생했다, 내일도 힘들겠지, 하지만 괜찮아. 내일도 퇴근하면 이 녀석이 반겨줄 거고, 뜨거운 물로 샤워할 거고, 맛있는 걸 먹을 테니까. 그렇게 저의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저의 퇴근 후 행복 이야기, 어떠셨나요? 그냥, 매일처럼 변함이 없는 하루입니다. 특별한 이벤트도 없습니다. 그저 퇴근 후 집에 와서 강아지와 뒹굴고, 맛있게 먹고, 좋아하는 TV를 보는 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힘든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하는 진짜 힘이 됩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이 땅의 모든 20대 직장인 여러분. 우리의 소중하고 아보하한 하루를 응원합니다. 오늘도 푹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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