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는 수학자였고 과학자였으며 냉철한 논리학자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감정 따위는 배제하고 오직 이성만 중요시했던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반만 아는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그토록 치열하게 의심하고, 수학을 풀고, 우주의 법칙을 탐구했던 이유는 인간의 올바른 삶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행복을 위한 지식의 탐구인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인생을 거대한 숲에 비유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시로 길을 잃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나침반입니다. 데카르트에게 이성은 숲을 헤쳐 나갈 나침반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외친 것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내가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단단한 바닥을 찾고 싶었던 절박함의 표현이었습니다.

불안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불안은 무지에서 옵니다. 미래의 무지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확실한 진리를 찾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은 미래를 전혀 점 칠 수 없는 혼란의 상태였죠. 30년 전쟁(1618~1648)은 나라도, 인간의 삶도 황폐화 시켰습니다. 신이 있다면 이런 상황은 두고 보지 않았을 것인 데 말이죠. 사람들은 신을 원망하였습니다. 데카르트의 연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탈출구와도 같습니다. 진리를 알면 불안이 줄어들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철학은 행복을 위한 기반이었습니다.
30년 전쟁은 유럽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쟁이다. 전쟁은 구교와 신교의 갈등에서 시작되었다. 보헤미아의 신교 귀족들이 가톨릭 중심 통치에 반발하면서 전쟁이 촉발되었다. 종교 문제로 시작된 갈등은 곧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히며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 스페인 등 강대국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다. 전쟁은 30년 동안 이어지며 유럽 전역에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독일 지역은 인구가 크게 줄어들 정도로 황폐해졌다. 전쟁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조약은 각 국가의 종교 선택권과 주권을 인정하며 현대 국제 질서의 기초가 되었다.

쾌락과 행복의 차이
데카르트는 쾌락과 행복을 구분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운에 달린 즐거움입니다. 이것은 외부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 사라질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이런 것에 목매지 않았습니다. 그가 추구한 행복은 베아티튀드(Béatitude)입니다. 우리말로는 지복(至福) 혹은 마음의 평화 쯤 되지 않을까요? 이것은 외부 상황과 상관이 없습니다.
마음의 평화는 감옥에 있어도, 가난해도, 몸이 아파도 유지할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입이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의 주인은 나다. 세상은 내 맘대로 안 되지만 내 생각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신에 대한 통제감이 데카르트 행복론의 핵심입니다. 그는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신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자신의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인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감정은 기계의 신호다
오랫동안 서양 철학이나 종교는 감정을 억누를 대상으로 봤습니다. 슬픔, 분노, 욕망은 영혼을 더럽히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달랐습니다. 그는 의사처럼 분석했습니다. 그는 몸을 기계로 봤습니다. 그리고 감정(정념)은 영혼이 나빠서 생기는 게 아니고 몸이라는 기계가 외부 자극에 반응해서 보내는 신호로 단정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숲에서 곰을 만났습니다. 심장이 뛰고 피가 다리로 쏠립니다. 당장 도망치고 싶습니다. 이것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입니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감정적 반응을 생존을 위한 기계적 반응이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이 있어야 도망치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정 자체는 나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살게 하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문제는 감정이 주인을 흉내 낼 때 입니다. 곰이 없는데도 두려워하거나, 먹으면 안 되는 음식 앞에서 식욕이 폭발할 때가 문제입니다. 기계가 오작동하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정념(감정)에 완전히 지배당하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감정을 없애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을 길들이라고 했습니다. 감정을 길 들일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한 기수와 같습니다. 말(감정)은 힘이 셉니다. 말이 없으면 우리는 멀리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삐를 놓치면 말은 날뛰고 기수는 떨어집니다. 이성은 고삐를 쥐는 힘입니다. 슬픔이 몰려올 때 아, 내 몸의 기계가 지금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신호를 보내는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감정을 길 들이는 시작입니다.

감정의 거리두기
데카르트는 현대 심리학의 인지 치료를 예견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는 슬픈 일이 생겼을 때 그 슬픔에 함몰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대신 그 슬픔을 관찰하라고 합니다. 나는 지금 슬프다와 나는 슬픔을 느끼고 있는 나를 보고 있다는 천지 차이입니다. 전자는 감정의 노예고 후자는 감정의 관찰자입니다. 데카르트는 우리가 감정의 관찰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무대 위의 연극을 예로 들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비극이 벌어져도 관객은 안전합니다. 눈물을 흘리지만, 그것이 현실의 나를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래야 합니다. 감정이라는 연극을 즐기되 무대 위로 뛰어들지는 말아야 합니다. 거리두기가 행복의 중요한 기반입니다.

데카르트는 말년에 특별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보헤미아의 공주 엘리자베스(1618~1680)였습니다. 그녀는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손녀이자 보헤미아 왕 프리드리히 5세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보헤미아 왕위 계승권을 가졌으나 30년 전쟁의 패배로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정치적 망명 생활을 하던 중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 데카르트와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불행했습니다. 나라는 망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망명 생활은 고달팠습니다. 우울증과 두통에도 시달렸습니다.
그녀는 당대 최고 지성인 데카르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선생님, 인생이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나요? 그녀의 질문에 대한 데카르트의 답장은 놀라울 만큼 따뜻하고 실용적이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추상적인 헛소리를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는 공주의 심리적 상담사가 되었습니다. 이때 작성한 데카르트의 편지들은 행복론의 정수와도 같습니다.
행복을 위한 세 가지 규칙
데카르트는 공주에게 행복을 위한 세 가지 행동 수칙을 처방했습니다. 첫째, 이성을 사용하세요. 무엇이 최선인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세요. 감정에 휘둘려 결정하지 말고, 무엇이 진짜 이익인지 따져보고 결정하세요. 둘째, 결심했으면 실행하세요. 가장 큰 불행은 망설임입니다.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고민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설령 그 결정이 틀렸더라도, 확신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태도가 후회를 줄입니다.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한 방향으로 꾸준히 걷는 것이 제자리걸음보다 낫습니다. 셋째, 운명을 받아들이세요.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나라의 멸망, 가족의 죽음, 날씨, 타인의 마음)은 깨끗이 포기하세요. 그것을 갈망하지 마세요. 대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나의 생각, 나의 태도)에 집중하세요.

인생을 긍정하는 힘
데카르트는 공주에게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비록 지금 처한 상황이 비극적일지라도, 그 안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정신승리가 아닌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슬퍼한다고 해서 망한 나라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울해한다고 해서 건강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슬픔과 우울은 비합리적인 감정인 것이죠. 이성은 우리에게 비합리적인 것을 버리고 유익한 것을 택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는 공주에게 자주 산책하고 맑은 물을 마시고, 시를 읽으라고 권했습니다. 몸의 컨디션이 마음의 행복에 직결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는 뼛속까지 현실적인 행복주의자였습니다.

최고의 덕목, 관대함
데카르트 철학의 결론은 관대함입니다. 여기서 관대함은 고결한 마음 혹은 기백에 가깝습니다. 오늘날의 말로 바꾸면 건강한 자존감 같은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올까요? 데카르트는 나에게 자유 의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유 의지를 잘 사용하는 것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뺏겨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할지 결정할 자유는 아무도 뺏을 수 없습니다. 악마도 신도 내 자유 의지는 건들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비굴하지 않습니다. 남을 부러워하지도 않습니다. 오만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당당합니다. 이것이 데카르트가 말한 관대함입니다.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관대합니다. 왜냐하면 저 사람도 나와 똑같이 자유 의지를 가진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타인이 실수를 해도 그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유 의지를 잘못 사용했을 뿐이라고 이해합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합니다. 데카르트의 행복은 고결한 인격을 가지고 타인과 어울리며 사는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행복의 절정은 내적 만족에 있습니다. 내적 만족은 결과에 대한 만족이 아니고 과정에 대한 만족을 의미합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생각했습니다. 나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판단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이 있었다면 결과가 실패로 돌아가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떳떳합니다.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이처럼 깨끗한 마음 상태, 스스로를 칭찬해 줄 수 있는 상태, 이것이야말로 데카르트가 평생을 바쳐 찾아낸 행복의 정체입니다.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너에게는 생각할 힘이 있고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마음의 이성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생각하세요. 주체적으로 선택하세요. 그리고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여러분 자신의 고결함을 믿어 보세요. 행복은 생각하는 자의 특권입니다.
다음 편은 데카르트가 오늘날 우리에게 보내는 행복 메시지입니다. 데카르트가 직접 작성한 형식의 글입니다. 다음편을 읽으시면 데카르트를 이해하는 데 더욱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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