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감은 긍정 정서 또는 긍정적인 기분일 때 느낀다. 하루의 행복은 긍정 정서(기분)을 자주느끼고, 반면에 부정 정서(기분)을 덜 느낄 때를 말한다.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는 83%의 긍정 정서와 17%의 부정 정서가 조화를 이룰 때, 가장 바람직한 행복의 상태라고 하였다.
정서(emotion)는 생활 중에 자동적이나 급격하게 발생하는 쾌감, 불쾌감, 편안함, 무서움, 부끄러움 등으로 일시적인 감정(feeling, affect)을 말한다. 반면에 기분(mood)은 대상이나 환경에 따라 길게 지속되는 심리상태로 우울한, 불안한, 활기찬, 분노한 등의 감정을 의미한다. 시간으로 보면 기분은 정서보다 오래가는 심리상태이다.
긍정 정서(기분)은 쾌감, 기쁨, 감격, 희열, 즐거움, 만족감, 성취감, 여유로움, 편안함, 안락함등이다. 부정 정서(기분)은 불쾌, 짜증, 슬픔,고통, 미움, 비난, 혐오, 우울, 불안, 분노, 두려움, 무서움, 불편감, 죄책감, 수치심, 질투감, 열등감, 지루함, 답답함 등의 감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요, 인간 존재의 목표”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행복으로 보았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사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으로 삶을 바라본다.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 란 질문에 행복이라고 답하는 이유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에우다이모니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행복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즐거움이나 만족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행복을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불렀으며, 이는 '좋은 삶' 또는 '인간으로서의 번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고유의 기능과 목적을 가진다. 칼의 목적은 잘 자르는 것이고, 눈의 목적은 잘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유한 기능은 무엇인가. 그는 그것이 바로 '이성'을 사용하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에게 행복이란 이성적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하며 살아가는 삶의 활동 그 자체이다. 이러한 탁월성을 그는 '덕(Arete)'이라고 불렀다. 즉, 행복한 삶은 덕이 있는 삶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으로 나누었다. 도덕적 덕은 용기, 절제, 관용처럼 감정과 행동에 관련된 것이다. 그는 이러한 덕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상태, 즉 '중용'을 통해 실현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용기는 무모함과 비겁함 사이의 중용이다.이처럼 덕을 갖추고 이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핵심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적인 조건 또한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건강, 우정, 최소한의 부와 같은 외적인 조건들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덕이 가장 중요하지만, 외부의 조건도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입장이었다.
결론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은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었고, 그것은 평생에 걸쳐 이성을 갈고닦으며 덕을 실천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실현해나가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제시한 행복의 길이었다.
긍정심리학의 실증적인 연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을 바꾸어 놓았다. 주장이다. 서은국 교수는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말한다. 모든 동물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단지 생존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서은국 교수의 설명은 계속된다. 바다에서 서핑(surfing)하는 개가 있다. 개가 서핑하는이유는 서핑이 주는 만족감이 아니라 훈련 때

마다 먹는 간식의 행복감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 개의 간식에 해당하는 것은 행복이다. 인간의 뇌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도록 진화되었다. 따라서 행복은삶의 목표가 아닌 삶의 도구이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다 생존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인간은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다.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행복감은 오랜 기간 지속되지 않는다. 집과 자동차를 처음 장만할 때의 만족감도, 명문대 합격의 성취감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복권 당첨자들의 행복감 지속시간을 연구하였다. 이 나라의 복권 당첨금은 상상을 뛰어넘는 큰 금액이다. 하지만 연구결과, 행복의 시효기간은 일 년을 넘지 않았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부자 중에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소득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수많은 연구는 소득 수준이 빈곤상태를 벗어날 때까지는 행복도에 영향을 주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그 영향력이 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참고, 소득과 행복의 관계
흔히 사람들은 돈이 많을수록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수많은 연구는 소득과 행복의 관계가 일직선이 아님(상관성이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 소득은 삶의 만족도에 분명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가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그 역할은 절대적이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에게 소득 증가는 곧 불행의 감소를 의미한다. 안정된 주거, 충분한 음식,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러한 기본 욕구가 충족될 때 사람의 행복감은 크게 상승한다. 즉, 일정 수준까지 돈은 행복을 사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러한 관계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연구는 1974년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이 발표한 논문 "경제 성장은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가?
(Does Economic Growth Improve the Human Lot?)"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을 주장했다. 이후 201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은 "고소득은 삶의 평가를 향상시키지만 정서적 안녕감은 향상시키지 않는다 (High income improves evaluation of life but not emotional well-being)."
연구를 통해 미국인을 기준으로 연 소득 7만 5천 달러를 기점으로 소득이 더 늘어나도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부에 금방 익숙해지고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단계부터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돈이 아닌 다른 것들로 옮겨간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깊은 관계, 일에서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 건강,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가치는 돈으로 쉽게 얻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돈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돈은 고통을 줄여주지만 행복을 무한정 늘려주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된 이후의 행복은 돈이 아닌 삶의 의미와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는 행복이 인생의 목표 또는 목적이될 수 없음을 설명한다. 긍정심리학자들은 <행복은 목적이 아닌 삶의 과정>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행동경제학자이자 긍정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교수는 행복은 과정임을 현실감 있게 설명한다. “행복은 매일 아침 마시는 커피 한잔, 함께하는 저녁 식사, 친구와 나누는 대화 등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기쁨과 즐거움에서 온다.

탈 벤 샤하르(Tal Ben Shahar) 교수는 하버드대학과 전 세계에 행복학 열풍을 일으킨 긍정심리학자이다. 샤하르는 “행복은 성공의 결과가아니라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한 연료이다. 행복은 지속적인 감정이 아니라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이라고 강조했다.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서은국 교수의<행복의 기원> 저서를 통해서, mbc 김민식PD의 <세바시> 강연에서 보듯이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 살아가면서 작은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참고, 인생! 미루지 마세요
매일 아침,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운가? 언젠가 올 '나중'을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참고 있는가? MBC 김민식 PD는 그런 우리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인생, 미루지 마세요."

그는 많은 사람이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은퇴하면 세계 일주를 하고, 아이들이 다 크면 취미를 즐기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 '나중'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큰 병을 앓고 난 뒤에야 이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당장 하기로 말이다.그의 비결은 '노는 것'에 있다. 그는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은 그에게 가장 신나는 놀이다. 영어 공부는 미국 드라마를 보며 즐기는 취미이다. 책을 번역하는 것 역시 어려운 과제가 아닌, 재미있는 지적 유희다. 만약 당신의 일이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설레게 하는 놀이를 찾으라고 그는 말한다. 그 놀이가 당신의 새로운 길이 될 수도 있다.어떻게 그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었을까?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이다. 그는 유학파가 아니다. 매일 미국 드라마를 보며 영어를 익혔을 뿐이다. 거창한 계획 대신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을 꾸준히 쌓아나갔다. 그것이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을 가능하게 만든 힘이었다.인생은 오늘을 사는 것이다. '나중에'라는 신기루를 좇지 말고, 지금 당장 당신을 설레게 하는 '놀이'를 시작하라. 일이든 취미든 상관없다.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이 살아야 할 이유이며 행복하기 위한 지름길이다.
서은국 교수는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은 목표가 아닌 과정이고, 강도가 아닌 빈도임을 이렇게 설명한다.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이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설득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행복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살면서 깨닫게 된다. becoming(~이 되는 것)과 being(~로 사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가 며느리가 되는 것(becoming)과 그 집안 며느리가되어 하루하루를 사는 것(being)은 아주 다른 의미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닌 과정이라는 점,
행복은기쁨의 강도가 아닌 빈도라는 점이다. 요약하면 행복은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나 기분을 자주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의 시지프스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취도 의미도 가치도 없이, 단조롭게 반복되는 고통의 노동임에도 묵묵히 감내하는 시지프스를 까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오직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형벌을

내린 제우스의 부조리에 대항하여,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를 까뮈는 부조리의 벽을 극복하는 삶을 살아가고있는 인생살이의 승리자로 보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직장인의 모습에 시지프스가 겹쳐 보인다. 직장인의 일과 학생의 공부, 운동선수의 연습, 군인의 훈련에서 행복감을 느끼기는실로 어렵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하지만 관점과 의미에 따라 행복의 수준은 확연히 달라진다. 많은 사람은 힘들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도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꽤 있다. 때로는이들이 별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때때로 ‘아! 행복하다!’라고속삭인다. 반복적인 일상이지만, 잠시 쉬며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로움은 행복감을 준다. 일과가 힘들수록 일과 후에 동료들과 함께 즐기는 소주와 삼겹살은 하루의 고통을 잊게 하는기쁨이다. 퇴근 후에 보내는 편안함도 행복이긴하다. 주중의 일상을 적극적인 노동(육체적, 정신적)으로 보내고 맞이하는 주말의 휴식은 달콤하다.
우리는 일상에서 긍정적인 기분과 부정적인 기분을 함께 느낀다. 부정적인 기분은 바로 감지한다. 부정적인 기분은 하는 일을 방해한다. 부정적인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부정적인 기분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긍정적인 기분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인 기분일 때는 하는 일이 잘되고 능률도 더 오른다. 피곤도 덜하다. 우리는 긍정적인 정서(기분)이 느껴지면 이를감지하고 지금이 행복한 상태임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 전문가들은 말한다. 행복하기를 원하면 행복의 방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행복하기를 원하면 행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며,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사람이 행복한 경우가 없음’을 강조한다.

▶행복은 투자의 대상
많은 사람이 행복을 막연히 기다린다. 좋은 일이 생기면, 언젠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행복은 노력의 대상이자 투자의 대상”이라고 강조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과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다. 왜 행복에 투자가 필요할까? 우리는 건강을 위해 시간을 내어 운동하고, 미래를 위해 돈을 저축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행복이라는 자산이 저절로 쌓이지 않는다. 오히려 무관심 속에 방치하면 쉽게 사라진다. 행복을 위한 투자는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관심을 어디에 사용하는가의 문제다.
가장 중요한 투자 대상은 바로 '경험'이다. 값비싼 물건을 사는 것은 잠깐의 기쁨을 주지만, 그 기쁨은 금세 사라진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여행,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 취미에 몰두하는 시간은 다르다. 이러한 경험은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 두고두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행복의 '경험 자산'이다. 또 다른 중요한 투자는 '관계'에 대한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깊은 유대감을 쌓는 것은 최고의 행복 투자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안정감, 함께 웃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행복의 원천이 된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사회적 자본'이다.
결국, 행복은 우연히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마음을 쏟을지 결정하는 꾸준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행복한 방법인지 하는 행복의 솔루션을 배우고 습득해야 한다. 좋은 경험과 관계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도 행복하기 위한 경험을 쌓는 길이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라는의미는 ‘일상의 소소함에서 행복감을 자주 느껴보라’는 뜻이기도 하고, 반복적인 일이라도 의미를 부여하면 보람을 느끼게 된다는 뜻이기도하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장인 최인철 교수는 행복을 ‘멘탈 컨디션’으로 정의한다. 최 교수는마음의 컨디션이 좋은 사람은 “집중이 잘되고, 사람들의 말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고, 이해심과 관용이 커지며,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회사에서 인정받고 일도 잘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마음 컨디션이 안 좋으면 냉소적이고 고객과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최 교수는 “행복은 노력의 대상이자 투자의 대상”이라고 강조한다. 즉, 행복하기 위해서는 노력도 하고 투자도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행복은 삶의 과정 중에서 소소한 긍정적인 정서(기분)을 자주 느끼면 된다. 서은국 교수도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사라진다. 커다란 기쁨 한번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라고 주장한다. 서 교수의 주장은 유한한 인생사에서 출세와 부자가 되기 위해 인생을 각종 스트레스와 고통으로 보내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성취한 출세와 부유함도 결국에는 잔치 후에 찾아오는 허전함, 허무함만 남는다는 의미이다.
심리학자들은 ‘지금, 현재, 이곳에서’의 행복감을 우선시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함의(implication)가 있다. 행복은 일상에서 자주 느끼 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방의 행복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축구경기를 예로 들어 보자. 실수 없는 빌드업(Build up)을 잘하는 것도 행복감을 주지만 골인했을 때의 기쁨을 따라갈 수는 없다. 골인의기쁨은 행복의 절정감이다.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의 욕구이론으로 보면, 골을 넣은 선수의 행복감은 존중의 욕구와 자아실현(성장 욕구)의 욕구를 모두충족시킨다. 존중의 욕구는 타인으로부터 존중받는 낮은 수준의 존중감과 자기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높은 수준의 존중감을 모두 포함한다. 높은 수준의 존중감이 곧 자아존중감(이하 자존감)이다. 자존감의 수준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
프로 등반가의 목표는 타인이 등반하지 못한 고봉을 등정하는 것이다. 준비과정도 힘들고, 등반도 힘들다. 정상 정복 후에 느끼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대단할 것이다. 그 기쁨도 잠시, 되돌아가는 하산의 위험은 절정이던 행복감을 앗아 간다. 긍정 정서(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마음에 충만한 자존감은 평생토록 은은하게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명문대 합격도, 굴지의 대기업 입사와 힘든 공무원시험 합격도 다르지 않다.
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저서 <굿 라이프>에서 행복은 ‘순간의 기분’이기도 하지만, ‘삶의 행복’임을 강조한다. 삶의 행복은 의미 있는 삶과 목표의 성취를 포함한다. 여기에서 최 교수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을 불러온다. 카너먼은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경험하는 자기’와 ‘기억하는 자기’를 제기한다. ‘경험하는 자기는 지금의 경험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개념이고, ‘기억하 는 자기’는 삶 전체의 의미와 가치의 행복을 추구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억 자아’가 간직하고 있는 기억은 절정과 종결에서 강력한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기억들이다. 축구 경기서, 우리 팀이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었지만, 경기 종반에 한 골을 잃고 진다면 당신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패한 불쾌감으로, 오래도록 당신의 행복감을 앗아 갈것이다.
순간의 쾌감은 곧 사라지지만 절정의 기억은 장기간 남는다. 따라서 고봉의 최초 등정, 명문대 합격, 선망하는 직장 합격과 같은
당시의 행복감은 자존감과 함께 기억 자아가 되어 자신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잔잔한 행복감으로 자리한다. 샤하르 교수는 말한다.
행복은 아무런 조건도 이유도 없이 우리 곁에서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 작지만 분명한 행복이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행복은 단순하다. 무탈한 하루를 감사하자. 사소한 행복이 진짜 행복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만의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내용을 요약해보자. 행복은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이다. 우리는 실로 어렵게 찾아오는 큰 기쁨보다, 일상에서 자주느끼는 소소한 기쁨을 진정한 행복으로 알고 먼저, 통상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성취감과 만족감은 큰 강도의 행복이다. 실현이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자. 목표 달성 위한 과정 중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작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대단한 행복감임을 부인할 수 없다.
현재가 너무 힘들고 행복하지 않다면 세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바꾸어 보자. 첫째는 환경을 바꾸어 보고,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를 바꾸어 보고, 셋째는 상황을 전환해 보자. 그래도 행복하지 않다면 다음을 점검해 보자. 나는 지금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내 삶도 나의 의지도 부차적인 것은 아닌가. 나는 스스로 작은 것에도 일상적인 행복감을 찾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가. 나의 성격 탓은 아닌가. 나는 환경과 현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나는 지금 생존의 문제에 파묻혀 행복을 논하는것 자체가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 글은 샤하르 교수의 주장으로 맺는다. “행복은 인생의 가치를 가늠하는 유일한 잣대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남에게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거나 그것을 무기 삼아 휘두르지 않는다. 행복하다는 것 자체가 비할 데 없이 소중한 재산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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