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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마음과 관계 속의 행복

칼 융의 무의식과 행복의 비밀

by 행복 리부트 2025. 11. 15.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에서, 어떤 사람은 사랑에서, 또 어떤 사람은 경제적 여유로움에서 행복을 찾기도 합니다. 그런데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행복을 조금 다르게 보았습니다. 그에게 행복은 마냥 기분 좋은 상태가 아니었고 있는 그대로의 나가 되는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융은 이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불렀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를 찾아가는 여정은 우리 마음 깊은 곳, 무의식의 탐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융은 우리 마음이 2층집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1층은 우리가 알고 지내는 의식의 공간입니다. 하지만 그 밑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거대한 지하 1층과 지하 2층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입니다. 오늘은 마음의 2층집을 탐험하며, 융이 말한 진짜 행복을 찾아보겠습니다.

인간의 마음 구조, 의식·개인 무의식·집단 무의식, 제미나아

 

지하 1층, 나만의 비밀 창고 개인 무의식

개인 무의식(Personal Unconscious)은 말 그대로 나 개인의 무의식입니다. 우리 마음의 지하 1층입니다. 이곳은 우리가 살면서 잊어버린 기억들이나 애써 외면하고 억누른 감정들이 숨어 있는 마치 나만의 비밀 창고와 같습니다. 그 안에는 어릴 적 상처받았던 기억, 남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부끄러운 생각, 그리고 내가 인정하기 싫은 어두운 면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바로 그림자(Shadow)들인 것이죠. 

 

만약 우리가 이 지하 1층을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요? 창고는 엉망이 됩니다. 곰팡이가 슬고, 잡동사니가 쌓여 문을 열기조차 힘들어집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지하 1층을 무시하면, 우리는 이유 없이 화가 치미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억눌린 분노가 표출되는 것입니다. 또한 특정한 사람을 견딜 수 없이 싫어하게 되는데, 이는 나의 그림자를 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결국 늘 가면을 쓴 듯 답답하고 진짜 나로 사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에 시달리게 됩니다. 융은 말합니다. 행복의 첫걸음은 이 지하 1층을 대청소하는 것입니다. 나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억눌렀던 감정들을 마주하는 용기입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는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편안함, 그것이 행복의 시작입니다. 잃어버렸던 나의 에너지를 되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하 2층, 인류 공통의 유산 집단 무의식

융의 위대한 발견은 지하 2층,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입니다. 이곳은 자신만의 창고가 아닙니다. 이곳은 모든 인류가 태어날 때부터 공유하는 거대한 심리적 유산입니다. 수백만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경험한 모든 지혜와 반응 방식이 유전자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이 바닥에는 공통의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마음 구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마음의 틀)이 있습니다. 융은 이것을 원형(Archetypes)이라고 불렀습니다.

 

원형은 쉽게 말해,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틀이나 본능적인 반응 패턴입니다. 예를 들어, 왜 우리는 뱀이나 거미, 어둠을 본능적으로 무서워할까요?  왜 우리는 어머니에게서 따뜻하고 포근함을 느낄까요? 그리고 왜 모든 문화권의 신화와 영화에는 어김없이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이 등장하는 것일까요? 융은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원형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보았습니다.

융은 다양한 원형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위해 쓰는 가면인 페르소나(Persona)가 있습니다. 이는 직장에서의 내 모습, 친구로서의 내 모습 등 사회적 역할에 맞게 쓰는 얼굴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인정하기 싫어하는 내 안의 어두운 면인 그림자(Shadow)도 있습니다. 또한 모든 인간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가지는데, 아니마(Anima)는 남성 속의 무의식적인 여성성을, 아니무스(Animus)는 여성 속의 무의식적인 남성성을 의미합니다. 이야기 속에서도 원형은 쉽게 발견됩니다. 영웅(Hero) 원형은 고난을 극복하고 성장하려는 우리의 모습이며, 현명한 노인(Wise Old Man) 원형은 위기 때마다 지혜를 주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모든 것을 품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인 대모(Great Mother) 원형 역시 자연이나 우리 안의 자애로움으로 존재합니다.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 대표적 원형들, 제미나이

 

우리가 지하 1층(개인 무의식)을 정리하는 것이 불행을 줄이는 과정이라면, 지하 2층(집단 무의식)과 연결되는 것은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영웅 이야기에 감동하는 이유는 우리 안의 영웅 원형이 함께 울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대한 자연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 역시 우리 안의 대모 원형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융은 이처럼 진정한 행복은 내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이 처럼 인류의 보편적인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내가 겪는 고난은 단지 나만의 불행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웅이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성장을 위한 보편적인 이야기의 일부가 됩니다. 내 삶이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융의 무의식 이론, 프로이트와 어떻게 다를까요?

융은 원래 프로이트의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이론은 무의식이 인간 행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 점에서 시작이 같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정적인 부분에서 생각이 달랐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무의식의 범위입니다. 프로이트에게 무의식은 개인적인 영역이었습니다. 태어나서 겪은 경험, 특히 억압된 성적 욕망이나 충격적인 기억이 쌓인 곳입니다. 반면 융은 이러한 개인 무의식을 인정하면서도,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집단 무의식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개인이 경험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는 보편적인 마음의 원형입니다.

 

두 번째 차이는 무의식을 보는 관점입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특히 이드(Id)를 통제해야 할 원초적 본능의 공간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융에게 무의식은 억압된 것뿐만 아니라, 지혜의 원천이자 잠재력의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힘이 그 안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치료의 목표가 다릅니다. 프로이트의 목표가 자아(Ego)를 강화해 무의식의 본능을 통제하고 현실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었다면, 융의 목표는 개성화였습니다. 즉, 무의식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여 더 온전하고 균형 잡힌 자기(Self)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아버지로, 심리학의 기본 토대를 세운 위대한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이론은 매우 정교하며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융은 프로이트에서 나아가 심리학의 범위를 철학, 신화, 종교, 예술까지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융의 이론은 과학적 검증이 어렵다는 비판도 받지만, 인간의 의미와 성장을 다룬다는 점에서 현대 심리치료와 인문학, 그리고 일상의 자기 성찰(MBTI도 융의 이론에 기반합니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행복의 완성,  개성화와 자기

이제 융이 말한 행복의 그림을 완성해 볼까요? 개성화(Individuation)란, 우리 마음의 1층(의식)이 지하 1층(개인 무의식)을 탐색하고, 나아가 지하 2층(집단 무의식)의 인류 공통의 경험과 지혜에 연결되는 삶의 여정입니다. 이 여정의 목적지에서 자기(Self) 원형을 만나는 것입니다. 자기는 융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자아(Ego)가 단지 1층(의식)의 주인 행세를 한다면, 자기(Self)는 마음의 2층집 전체(의식+무의식)를 아우르는 진짜 주인입니다. 자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가장 나다운 온전한 모습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의식과 무의식이 균형을 이룬 상태입니다. 개성화는 자기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가 씌워준 가면(페르소나)을 인식하여 벗고, 자신의 어둠(그림자)을 기꺼이 끌어안습니다. 또한 내 안의 잠재력(아니마/아니무스)을 발견하고, 마침내 나라는 개인을 넘어 인류 보편의 지혜와 연결됩니다.

개성화가 이루어 지는 행복한 한국인의 모습, 제미나이

 

나다움을 향한 여정이 곧 행복

융의 관점에서 행복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행복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온전한 나(있는 그대로의 나)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빛나는 모습과 어두운 그림자를 모두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둘째,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개성화라는 여정 자체가 행복이며, 고통과 시련조차 이 여정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셋째, 행복은 의미입니다. 내 삶이 더 큰 이야기(집단 무의식)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행복은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어둠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행복은 외부 상황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내면이 단단하고 알찬 행복이 됩니다. 가장 나다운 나로 살아가는 것이 융이 말한 행복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융에게 행복은 온전한 자신이 되는 과정인 개성화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 개성화가 바로 자아(Ego)가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을 만나고 통합하는 전 과정입니다. 자아(ego)는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의식의 중심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결정한다라고 말하는 주체입니다. 하지만 융은 이것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 마음의 2층집 중에서 1층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자아가 원하는 것(성공, 인정 등)을 얻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융은 그것만으로는 불완전하다고 본 것입니다. 융은 의식이 개인 무의식을 품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나의 그림자(Shadow)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품어야 할까요? 내가 외면했던 나의 어두운 면(이기심, 질투, 분노 등)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남에게 투사하여 끊임없이 타인을 비난하게 됩니다. 또한, 그림자 속에는 우리가 억눌렀던 긍정적인 잠재력(창의성, 대담함 등)도 갇혀 있습니다. 이것이 행복과 무슨 관계일까요 ? 그림자를 품는다는 것은, 더 이상 완벽한 나를 연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내면의 분열이 사라지고 진정한 평화와 자유로움, 즉 행복의 토대가 마련됩니다.

 

집단 무의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 삶을 더 큰 차원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인류 보편의 원형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왜 이해해야 할까요? 자아만의 시각으로 보면, 내가 겪는 고난은 그저 나만의 불행일 뿐입니다. 하지만 집단 무의식의 영웅 원형을 이해하면, 나의 고난은 성장을 위한 보편적인 여정이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모든 영웅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영웅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내 삶이 나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거대한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합니다. 융은 이 의미의 발견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융의 행복은 자아(1층)가 홀로 애쓰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아가 겸손하게 개인 무의식(지하 1층)의 그림자를 끌어안고, 집단 무의식(지하 2층)의 보편적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합하여, 의식과 무의식을 아우르는 더 큰 중심인 자기(Self), 즉 가장 나다운, 온전한 나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융이 말한 행복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지금도 행복감을 느끼시는 분이 많으시죠? 그 분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과정, 즉 개성화가 이루어 지신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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