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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마음과 관계 속의 행복

멜라니 클라인과 행복

by 행복 리부트 2025. 11. 15.

우리는 심리학의 거인들을 차례로 만났습니다. 프로이트와 함께 과거를 돌아왔고, 융과 함께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봤습니다. 그리고 아들러를 통해 미래를 향한 용기를 배웠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흐름과 마주합니다. 바로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입니다. 대상관계 이론은 우리의 인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질문에 프로이트는 본능으로, 융은 원형으로, 아들러는 열등감 극복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상관계 이론가들의 답은 다릅니다. 우리의 인격은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 더 정확히는 태어나서 처음 맺는 대상, 즉 어머니와의 관계가 우리 마음의 틀을 만든다고 보았습니다. 오늘은 대상관계 이론의 문을 연, 논쟁적이고도 천재적인 심리학자,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 1882 ~1960)의 이론을 살펴봅니다. 그녀가 밝혀낸  유아의 마음 세계가 성인이 된 우리의 행복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구해 보겠습니다.

멜라니 클라인, 제미나이

 

대상관계 이론이란

이름부터 어렵습니다. 대상(Object)이란 무엇일까요? 심리학에서 말하는 대상은 사물이 아닌, 자신의 심리적 에너지가 향하는 상대방을 의미합니다. 프로이트는 대상을 본능을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아기에게 어머니의 젖가슴은 배고픔(본능)을 해결해주는 대상입니다. 하지만 대상관계 이론가들은 이 관점을 뒤집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본능 해소를 위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관계 그 자체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라고 주장했습니다. 아기는 배가 고파서 엄마를 찾을 수도 있지만, 엄마를 찾는 본질적인 이유는 엄마와의 연결 그 자체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첫 번째 관계 경험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혼란스러웠는지에 따라 한 사람의 인격의 틀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첫 번째 관계의 틀을 가지고 모든 인간관계를 반복합니다. 이것이 대상관계 이론의 핵심입니다.

 

클라인, 아기의 마음을 분석

멜라니 클라인은 프로이트의 영향을 깊이 받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프로이트주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프로이트가 미처 탐구하지 못한 태어난 직후 아기의 마음 세계로 파고들었습니다. 당시 심리학계는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나 유아는 분석이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클라인은 이 통념을 깼습니다. 그녀는 언어 대신 놀이를 분석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놀이로 드러난 마음] 한 아이가 놀이치료 시간에 인형의 집을 가지고 놉니다. 아이는 엄마 인형을 계속해서 아기 인형에게 소리 지르게 하거나 방구석에 던져 버립니다. 클라인은 이것을 장난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실제로 느끼는 무의식적인 공격성이나 엄마가 나를 버릴 것 같다는 내면의 불안이 놀이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 해석했습니다.

 

클라인은 아기의 마음이 천사 같을 것이라는 환상을 깼습니다. 그녀는 아기의 마음속에도 사랑(삶의 본능)과 함께, 증오와 파괴 욕구(죽음의 본능)가 격렬하게 공존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클라인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급진적으로 넓혀 갑니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3~5세가 아니라, 생후 1년 이내에 훨씬 원초적인 형태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클라인의 핵심 이론, 두 개의 자리

클라인은 아기가 성장하며 두 개의 심리적 자리(Position)를 통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두 자리를 오갈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자리는 편집-분열 자리와 우울 자리를 말합니다. 먼저 편집-분열 자리부터 알아 봅니다.

 

㉮편집-분열 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 0~6개월)

이름이 무섭습니다.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우선 분열 (Schizoid)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세상을 통합해서 보지 못합니다. 특히 엄마를 한 명의 온전한 인격체로 보지 못합니다. 아기는 엄마를 두 개의 부분 대상으로 분열시킵니다. 한 개가 좋은 젖가슴입니다. 내가 원할 때 젖을 주고,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완벽하게 좋은 대상의 엄마입니다. 다른 한 개는 나쁜 젖가슴입니다. 내가 배고플 때 나타나지 않고, 나를 좌절시키는, 완벽하게 나쁜 대상의 엄마입니다. 아기는 이 둘이 같은 엄마라는 것을 모릅니다. 아기에게 세상은 천사 아니면 악마뿐입니다. 아기는 자신이 미워하는 나쁜 젖가슴이 자신을 보복하고 공격할 것이라는 편집(Paranoid)적 불안에 시달립니다. 사실 이 공격성은 아기 자신의 파괴적 환상이 투사된 것입니다.

[성인의 분열] 이 분열은 성인에게도 흔하게 발생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해주면 저 사람은 천사라고 이상화합니다. 그러다 그 사람이 작은 실수나 비판을 하면, 저런 악마인 줄 몰랐어라며 극도로 비난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을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가진 하나의 인격으로 보지 못하고, 편집-분열 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젖가슴인 엄마, 제미나이

 

㉯우울 자리(Depressive Position, 6개월 이후)

아기는 발달하면서 엄청난 심리적 도약을 이룹니다. 내가 사랑하던 좋은 엄마와 내가 죽도록 미워했던 나쁜 엄마가... 사실은 같은 한 사람이었구나! 라고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대단단한 깨달음은 아기에게 새로운 감정을 가져옵니다. 바로 죄책감(Guilt)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를, 내 환상 속에서 그토록 미워하고 공격했었다니... 아기는 이 죄책감을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이 죄책감은 매우 중요한 행동을 이끌어냅니다. 바로 복구(Reparation)입니다. 아기는 자신이 상처 입혔다고 생각하는 엄마를 회복시키고 싶어 합니다. 엄마를 웃게 만들려 하거나 선물을 주려 하고(그림 등) 애정을 표현합니다. 클라인은 이것이 진정한 사랑과 창의성의 시작이라고 보았습니다.

 

클라인의 이론과 행복

그렇다면 클라인의 대상관계 이론이 우리의 행복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클라인의 관점에서 행복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아기가 우울 자리를 성공적으로 통과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클라인의 관점에서 행복한 대상관계는 아기와 엄마 간에 갈등이 없는 관계가 아니고, 죄책감을 견디고 복구를 시도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불행한 사람(편집-분열 자리에 머무는 사람)은관계를 이상화하거나 아니면 평가절하합니다. 갈등이 생기면 모든 잘못을 상대방에게 돌립니다(투사).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며 따라서 진정한 사과(복구)도 불가능합니다. 이런 관계는 파괴적이거나 피상적으로만 유지됩니다. 행복한 사람(우울 자리를 견뎌내는 사람)은 상대방을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가진 하나의 온전한 사람으로 봅니다. 갈등이 생기면 나의 잘못이나 나의 공격성도 인정합니다(죄책감).  죄책감을 바탕으로 관계를 복구하려 노력합니다(사과, 화해, 이해). 이것이 성숙한 사랑입니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와 타인을 부분이 아닌 전체로 보는 능력입니다. 당신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태도입니다.

 

애착 이론과의 비교

클라인의 대상관계 이론은 이후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 이론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둘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유사점입니다. 둘 다 생애 초기 어머니와의 관계가 전 생애의 인간관계 패턴을 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첫 관계가 내면의 작동 모델이 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두 이론의 차이점(매우 중요)을 환상과 실제, 원인, 본능 측면에서 비교해 보겠습니다.

㉮환상 vs. 실제면에서 보면요.  클라인은 아기의 내면적 환상을 중시했습니다. 아기가 가진 죽음의 본능(공격성)이 불안의 주된 원인이라 보았습니다. 애착이론의 볼비는 어머니의 실제적인 양육 행동을 중시했습니다. 아기의 불안은 환상이 아니라 엄마가 실제로 나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실제적 분리, 위협). ㉯원인면에서 보면요. 클라인은  아기의 타고난 공격성이 나쁜 엄마의 환상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합니다. 볼비는 엄마의 실제적이고 민감한 반응이 아기의 안정감을 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본능면에서 보면요.  클라인은  프로이트의 사랑과 죽음의 본능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러나 볼비는 애착  자체를 음식이나 성욕과는 다른 생존을 위한 독립적인 본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요약하자면, 클라인은 심리 내부에, 볼비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클라인 이론의 영향과 평가

클라인의 이론은 그녀가 활동하던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매우 논쟁적입니다. 학계의 비판적 평가입니다. 우선 학자들은 말도 못 하는 아기가 편집적 불안을 느끼고 환상을 가진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그녀의 이론은 관찰이나 실험으로 검증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둘째, 아기의 놀이 행동을 너무 과도하게, 특히 공격성과 성(性)으로 해석한다고 비판을 받습니다. 셋째, 아기의 마음을 사랑보다 죽음의 본능(파괴 욕구)이 지배하는 것처럼 묘사해 너무 비관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학계의 긍정적인 평가는 첫째, 프로이트가 다루지 못한 생후 1년의 심리 세계, 즉 언어 이전의 영역을 탐구한 위대한 개척자로 인정받습니다. 둘째, 그녀는 중증 심리치료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녀의 이론, 특히 분열, 투사, 편집적 불안 등은 성인의 심각한 정신 질환(조현병, 경계선 성격장애 등)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구를 제공했습니다. 셋째, 그녀는 대상관계 이론이라는 거대한 학파를 사실상 창시했습니다. 존 볼비(애착 이론)뿐만 아니라, 도널드 위니캇(Winnicott), 비온(Bion) 등 수많은 거장들이 클라인의 영향을 받거나 그녀를 비판하며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온전한 사랑을 위한 용기

멜라니 클라인이 그린 유아의 마음 세계는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어둡습니다. 아들러의 용기나 융의 개성화처럼 즉각적인 희망을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클라인은 우리에게 행복과 성숙한 사랑에 대한 매우 현실적이고 깊은 통찰을 줍니다. 진정한 행복은 좋은 것만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분열의 상태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공격성, 나의 미움, 그리고 상대방의 결점까지도 모두 끌어안고 하나의 전체로 받아들이는 우울 자리의 용기입니다. 타인과 관계를 맺다 보면 때로는 실망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클라인은 그때가 편집-분열 자리로 도망칠 때가 아니라, 죄책감을 느끼고 복구를 시도할 기회라고 말합니다. 온전한 대상을 사랑하는 이 성숙한 과정이야말로, 클라인이 말한 행복의 핵심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클라인의 제자였지만 그녀와는 전혀 다른, 훨씬 따뜻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엄마와 아기의 관계를 조명한 도널드 위니캇의 이론을 만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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