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40대의 등장
전에는 보지못한 40대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40대라 부르지 않습니다. 스스로도 40대이길 거부하는 듯 보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영포티(Young Forty)라고 부릅니다. 과거의 40대는 어땠습니까. 아버지, 어머니라는 이름이 가장 익숙했습니다. 조직의 허리였고 가정의 기둥이었습니다. 나보다는 우리가 중요했습니다. 편안한 옷과 점잖은 태도가 미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40대는 다릅니다. 그들은 청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습니다. 퇴근 후에는 골프나 테니스를 배웁니다. 유행하는 레스토랑에서 줄을 섭니다. 아이돌 음악을 듣고 웹툰을 즐겨 봅니다.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적극적으로 공유합니다.
영포티는 누구입니까? 그들은 1990년대 X세대라 불렸던 이들입니다. 개성과 자유를 처음으로 맛본 세대입니다. 문화적 풍요와 아날로그 감성을 동시에 경험했습니다. 경제 성장기에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왜 젊음에 집착할까요. 그들의 심리는 복잡합니다. 첫째, 그들은 꼰대가 되는 것이 죽기보다 싫습니다. 나이 듦이 곧 고리타분함이 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수평적인 소통을 원하고 권위주의를 배척합니다. 둘째, 그들은 100세 시대를 실감하는 첫 세대입니다. 40대는 인생의 반환점이 아니라 이제 전반전이 끝난 시점입니다. 앞으로 남은 50년을 위해 젊은 감각은 필수입니다. 셋째, 그들에게 있어서 여전히 자신은 중요합니다. 가정과 사회의 역할에 매몰되기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나다움을 잃는 순간 행복도 멀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들의 지갑은 기꺼이 열립니다. 자신을 가꾸는 데 돈을 씁니다. 피부과 시술을 받고 값비싼 운동기구를 삽니다. 경험을 사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들은 시장의 큰손이며 트렌드의 중심입니다. 영포티는 조직에서도 다릅니다. 수직적인 문화에 저항합니다. 후배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않습니다. 함께 토론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려 합니다. 회식보다는 점심 맛집 탐방을 선호합니다. 워라밸은 그들에게도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들은 대한민국 40대의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자신들만의 새로운 40대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영포티를 바라보는 시선들
세상은 이 낯선 40대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세대마다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20대는 영포티를 흥미롭게 봅니다. 그들은 멋진 선배 혹은 쿨한 어른입니다. 함께 유행을 공유하고 소통이 가능하다고 느낍니다. 20대는 영포티처럼 나이 들고 싶다고 말합니다. "저 선배처럼 돈도 잘 벌고, 옷도 잘 입고 싶다." 그들은 그들의 경제력과 세련된 매너를 동경합니다. 물론 불편한 시선도 존재합니다. 20대는 때로 영포티가 애쓴다고 느낍니다. 젊은 세대의 유행어를 억지로 따라 하는 모습은 어색합니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 당하는 기분도 듭니다. 적당히 하셨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옵니다. 영포티가 자기들의 경쟁 상대인지 동료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30대는 영포티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봅니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관찰자입니다. 30대에게 영포티는 롤모델입니다. 가정과 경력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끄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나도 10년 뒤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희망과 동시에 불안을 느낍니다. 영포티의 화려함은 30대에게 압박이 됩니다. 그들처럼 치열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입니다. 결혼, 출산, 육아에 지친 30대에게 영포티의 삶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저들은 돈이 많으니까 가능한 일이다"라고 일종의 박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50대는 영포티를 복잡한 심경으로 봅니다. 그들은 이해와 질투 사이를 오갑니다. 50대는 희생의 세대였습니다. 오직 가족과 회사를 위해 자신을 갈아 넣었습니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영포티의 모습이 부럽습니다. "우리 때는 저렇게 못 살았는데" 라는 자조섞인 말들도 합니다. 지나간 청춘에 대한 아쉬움을 느낍니다. 동시에 50대는 영포티가 개인주의적이라고 비판합니다.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저렇게 자기만 알고 살면, 나중에 어떡하려고." 그들의 자유분방함이 위태롭게 보입니다. 자신들이 지켜온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 같아 혼란스럽습니다.
60대 이상은 영포티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영포티는 철없는 40대입니다. 나잇값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마흔이면 어른다워야지, 아직도 애들 같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복장과 말투가 가벼워 보입니다. 60대는 영포티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저렇게 돈을 쓰다가 노후 준비는 할 수 있을지 염려됩니다. "젊음은 한때다. 정신 차려야 한다" 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눈에 영포티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입니다. 세대의 시선은 이처럼 다양합니다. 영포티는 그 모든 시선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행복할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영포티는 과연 행복할까요. 그들이 추구하는 젊음이 곧 행복과 같을까요. 표면적으로 그들은 행복해 보입니다. 좋은 차를 타고 멋진 취미를 즐깁니다. SNS 속 그들의 미소는 밝고 건강합니다. 경제적 여유와 문화적 감각을 모두 갖췄습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포티의 심리 기저에는 불안이 깔려 있습니다. 그들은 늙음을 병적으로 두려워합니다. 아저씨, 아줌마로 불리는 순간, 자신의 가치가 하락한다고 느낍니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이는 강박에 가깝습니다. 하루라도 운동을 쉬면 불안합니다. 새로운 트렌드를 놓칠까 봐 두렵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뒤처지는 것은 패배를 의미합니다. 그들의 빛나는 일상은 사실 치열한 전투의 결과물입니다.
영포티는 낀 세대의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있습니다. 위로는 부모님을 부양해야 합니다. 아래로는 자녀를 뒷바라지해야 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노후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신에게 투자하는 돈은 어쩌면 유일한 탈출구일지 모릅니다. 책임감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입니다. 스니커즈를 사는 행위는 "나는 아직 괜찮다"는 자기 위안이자, "아직 죽지 않았다"는 자기 증명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행복은 허구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영포티의 행복은 선택적 행복입니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행복의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행복을 찾아가고 행복을 쟁취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낍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나의 만족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이 X세대로서 그들이 배운 방식입니다.
영포티는 대한민국 사회에 질문도 합니다. "나이 듦이란 무엇인가?" "40대의 행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들은 늙음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초라하게 늙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이 듦을 스스로 디자인하려는 첫 세대입니다. 그들의 도전은 용기있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삶의 불안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영포티로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흥미로운 세대의 여정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답이 곧 우리 사회의 미래일 수 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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