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다이어트를 선언한 첫날 밤, 우리는 왜 자신도 모르게 치킨을 주문하고 있을까요? 이성적으로는 분명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왜 버럭 화를 내고 뒤늦게 후회할까요?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이 질문은 우리 안에 나와 다른, 낯선 존재가 살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심리학의 문을 연 프로이트는 이 낯선 존재에 이드(Id)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라틴어로 그것(It)이라는 뜻입니다. 내(I)가 아닌 그것이라고 부른 이유는, 이 존재가 우리의 이성적인 통제 밖에 있는 원초적이며 강력한 힘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드라는 존재의 정체를 알아 보고 싶습니다. 프로이트의 고전적 이론부터, 그의 동료들과 후대 학자들의 반론, 그리고 현대 뇌과학의 해석까지 동원해 볼 참입니다. 이드는 과연 우리가 없애야 할 야수일까요, 아니면 우리 삶을 이끄는 신성한 에너지일까요?
이드의 발견
프로이트 이전의 심리학이 의식만 탐구했다면,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는 어둡고 거대한 지하실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실 가장 깊은 곳에서 날뛰고 있는 이드를 발견했습니다. 이드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정신 구조입니다. 이드는 오직 하나의 원칙, 즉 쾌락 원칙에 의해서만 움직입니다. 고통은 피하고 쾌락은 즉시 추구합니다. 갓난아기를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배고프면 울고, 기저귀가 젖으면 웁니다. 이드는 기다림, 현실, 도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프로이트는 이 거대한 이드의 에너지를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는 리비도(Libido)입니다. 삶의 에너지이며 에로스(Eros)입니다. 흔히 성적 욕망으로 오해되지만, 프로이트의 리비도는 훨씬 더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이는 삶의 본능이자 에로스입니다. 리비도는 성적인 쾌락만을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식욕,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 예술을 창조하거나 감상하며 느끼는 기쁨, 심지어 학문적 성취욕까지, 삶을 긍정하고, 창조하고, 연결하고, 성장하려는 모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말합니다. 이드가 없다면 우리는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타나토스(Thanatos)입니다. 죽음과 공격성의 본능입니다. 프로이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하며 인간의 파괴적인 본성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본능이자 타나토스라는 두 번째 힘을 학계에 발표합니다. 이것은 모든 생명체가 결국 무기물(안정된 상태)로 돌아가려는 본능입니다. 이 타나토스가 밖으로 향할 때, 그것은 공격성으로 나타납니다. 타인을 비난하고, 파괴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힘입니다. 반대로 이 공격성이 자기 안으로 향하면 자해나 우울, 자기 비난으로 나타납니다. 프로이트에게 인간의 삶이란, 이 리비도(삶)와 타나토스(죽음, 공격성)라는 두 거대한 힘이 영원히 싸우는 비극적인 투쟁의 장입니다.

다른 심리학자들은
프로이트의 이드 개념은 너무나 혁명적이어서 그의 동료들과 후대 학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은 이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거나 다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카를 융은 이드를 그림자(Shadow)로 명명합니다.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카를 융은 이드와 유사하지만 다른 개념인 그림자를 제안합니다. 이드가 인류 보편의 원초적 본능에 가깝다면, 그림자는 개인적인 무의식에 더 가깝습니다. 그림자는 나의 밝은 페르소나(가면) 뒤에 숨겨진,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어두운 면입니다. 나의 이기심, 질투, 비겁함, 공격성 등입니다. 융은 이드를 억압할수록 그림자가 더 강해져 우리를 집어삼킨다고 보았습니다. 융에게 성숙이란, 그림자를 인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입니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드를 권력 의지로 보았습니다. 또 다른 제자였던 아들러는 프로이트와 정반대의 길을 갑니다. 그는 인간의 근본 동력이 리비도(성)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들러가 본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성을 추구하려는 존재였습니다. 아들러의 권력 의지는 롤스로이스를 타거나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이기 이전에, 유약한 아기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생존 의지에 가깝습니다. 이 욕망은 이드의 충동처럼 맹목적일 수 있으며, 잘못된 방향(예: 타인을 지배)으로 흐르면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이드는 '악'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로저스 & 매슬로우). 프로이트가 인간을 이드라는 야수에게 휘둘리는 비관적인 존재로 본 반면, 칼 로저스나 아브라함 매슬로우 같은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정반대의 견해를 제시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가장 깊은 본성(이드와 유사한)이 선하다고 믿었습니다. 로저스는 이를 유기체적 가치화 과정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자신을 성장시키고 잠재력을 실현하려는(자아실현) 긍정적인 동력입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역시 가장 밑바닥의 생리적 욕구(이드)에서 시작해 결국 자아실현이라는 최상의 선을 향해 나아갑니다. 인본주의자들에게 이드는 악이 아니라, 사회와 부모의 잘못된 조건(조건적 사랑) 때문에 뒤틀려버린, 원래는 선한 내면의 아이인 것입니다.
현대 과학의 눈으로 본 이드
그렇다면 현대 과학은 100년 전 이드의 개념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놀랍게도, 현대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은 이드의 존재를 강력하게 지지합니다. 진화심리학에서 이드는 고대 생존 프로그램으로 이해합니다.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이드는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해 온 선조들의 생존 매뉴얼입니다. 이들에게 리비도(식욕,성욕)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왜 우리는 지방과 설탕(고칼로리)을 미친 듯이 원할까요? 음식이 부족했던 시절, 그것들을 탐하는 유전자를 가진 조상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타나토스(공격성)를 어떻게 볼까요. 왜 우리는 낯선 집단을 경계하고 내 영역을 침범하면 분노할까요? 한정된 자원을 두고 싸워야 했던 조상들에게 공격성은 생존 필수품이었습니다(현대인의 전쟁/차별). 즉, 당신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이유는 의지박약이 아니라, 당신의 이드(고대 뇌)가 굶어 죽기 전에 당장 먹어 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뇌 과학에서는 이드를 변연계, 자아는 전두엽으로 봅니다. 이 비유는 이드와 자아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변연계는 우리 뇌의 안쪽 부분에 있습니다. 오래된 뇌입니다. 편도체(감정)와 시상하부(욕망) 등이 여기 속합니다. 이곳은 빠르고, 자동적이며, 강력한 감정과 충동을 만들어냅니다. 전두엽은 뇌의 가장 바깥쪽인 인간의 이마 부분에 있습니다. 가장 늦게 발달한 인간의 뇌입니다. 동물들은 대뇌라고 불리우는 이 뇌가 없습니다. 당연히 전두엽이 있을 수 없죠. 오직 인간만이 가진 대뇌의 일부가 전두엽입니다. 이성, 판단, 계획, 그리고 충동 억제를 담당합니다. 우리가 이성의 끈을 놓았다고 말하는 순간은, 이드(변연계)의 강력한 신호가 자아(전두엽)의 통제 회로를 마비시키고 이성의 힘을 억제한 상태입니다.
이드는 삶의 뜨거운 에너지
이드는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동시에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게 하고, 사랑에 빠지게 하며,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창조하게 만드는 삶의 근본적인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프로이트가 열어젖힌 이드라는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온갖 파괴적인 본능과 함께, 삶을 가장 뜨겁게 만드는 리비도의 불꽃이 들어있습니다.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내 안의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힘을 존중하며, 강력한 에너지를 현실에 맞도록 멋지게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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