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언제나 약자가 대상이다. 일반 폭력, 가정 폭력, 학교 폭력, 아동 및 노인 학대, 그리고 성폭력 등 이 모든 행위가 그렇다. 인간 사회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고귀한 이념을 가르친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양상은 그 이념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대부분 배우자나 노부모, 자녀다. 학교폭력의 가해자는 자신보다 신체적, 정서적으로 약한 대상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노인 폭력과 아동 폭력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이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잔인하며 사회가 용인하지 못할 표현이지만, 폭력의 가해자들은 그들을 사냥하는 것이다. 싸움은 상호 간의 갈등 해결 방식 중 하나일 수 있지만, 사냥은 일방적인 지배와 파괴의 행위다. 그들은 반격할 힘이 없는, 가장 안전한 대상을 골라 자신의 공격성을 배설한다.
충동의 질주와 이성의 부재
인간의 뇌는 정교한 이중 구조를 가진다. 뇌 깊숙한 곳, 변연계(Limbic System)에는 공포와 공격성을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가 있다. 이는 생존을 위한 원시적인 경보 장치다. 위협을 감지하면 즉각 싸우거나 도망치라(Fight or Flight)는 신호를 보낸다. 이것이 바로 짐승의 심리가 발현되는 영역이다. 충동적이고, 빠르며, 강력하다. 반면, 뇌의 가장 앞부분인 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은 인간의 뇌라 불린다. 이곳은 충동을 억제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타인의 입장을 공감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 이성의 힘이다.
폭력이 발생하는 순간은 이 전두엽 피질이 편도체의 폭주를 제어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이다. 가해자의 뇌 속에서 이성의 힘이 폭력의 힘을 관리하지 못한 탓이다. 특히 주취폭력은 이 메커니즘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알코올은 뇌의 고위 기능, 즉 전두엽 피질의 기능을 가장 먼저 마비시킨다. 이성의 브레이크가 풀리자, 숨어 있던 편도체의 공격성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뛴다.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변명은, 사실상 나의 이성적 통제를 제거하니 짐승의 본능만 남았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조절할 의지가 약한 상태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는 만성적인 폭력 가해자들에게서 전두엽 기능 저하가 공통적으로 관찰됨을 보고한다. 이는 성향의 문제가 아닌, 뇌 기능의 결함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진화론적 함정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이 현상은 더욱 냉혹하게 해석된다. "동물하고 꼭 같은 놈들이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
대부분의 사회적 동물 무리(영장류, 늑대 등)에서는 엄격한 지배 위계(Dominance Hierarchy)가 존재한다. 이 위계는 힘의 투쟁을 통해 결정된다. 개체들은 자신의 서열을 확인하고 그에 맞게 행동한다. 여기서 중요한 법칙이 발견된다. 첫째, 자신보다 강한 알파 개체에게는 절대 복종하고 꼬리를 내린다. 불필요한 싸움은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개체를 공격한다.
폭력 가해자들의 행동 패턴은 이 동물적 위계 서열의 논리를 정확히 따른다. 그들은 결코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자신보다 힘센 사람이 나타나면 즉시 꼬리를 내리고 비굴해진다. 이는 그들의 폭력이 정의감이나 분노같은 고차원적 감정의 발로가 아님을 증명한다. 그들의 폭력은 철저히 계산된 위험 관리의 산물이다. 그들은 가장 안전하게, 가장 확실하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지배욕을 충족시킬 수 있는 대상을 찾는다. 그 대상이 바로 약자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비겁한 자라고 불리는이유이다. 그들은 용감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비겁해서 폭력을 휘두른다. 안전한 사냥감을 고를 뿐이다. 학교 폭력 가해자가 자신보다 덩치 큰 유도부 학생을 건드리지 않고, 가정 폭력 남편이 직장 상사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은 이 진화론적 함정의 완벽한 예시다. 그들에게 약자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좌절감과 열등감을 투사해도 되는 쓰레기통에 불과하다.
공감 불능자들, ASPD의 그림자
모든 가해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습적이고 잔혹한 폭력의 이면에는 반사회성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ASPD)가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공감 능력이 극도로 결여되어 있다. 정상적인 사람은 타인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뇌(특히 전두엽과 섬엽)에서도 유사한 고통의 신호가 활성화된다. 이것이 공감이며, 이 공감 능력이 타인에 대한 공격을 멈추게 하는 강력한 심리적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하지만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의 뇌는 다르다. 타인의 고통을 봐도 이 공감 회로가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쾌락을 느끼는 보상 회로가 활성화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타인은 감정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사물에 가깝다. 약자는 이들에게 가장 만만한 사물이다. 저항하지 못하고, 쉽게 부서지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즉각적인 반격이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약자를 짓밟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쾌락을 느낀다. 최근 뉴스를 장식하는 끔찍한 아동 학대 사건이나 묻지마 폭행의 가해자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공감 불능의 특성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어떤 지옥을 안겨주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인지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인간이라는 무거운 책임
폭력이 약자를 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뇌의 원시적 충동이 이성적 통제를 압도하고, 동물의 위계 본능이 인간의 공감 능력을 대체할 때 발생하는 필연적 귀결이다. 가해자들은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잔인하다. 이는 생존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가장 비겁한 행위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 들끓는 폭력성을 통제할 힘도, 의지도 없는 실패한 인간의 전형이다. 사회가 이들을 짐승이라 부르며 비난하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욕설만이 아니다. 그것은 편도체의 충동에 복종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오직 힘의 논리에만 따르는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정확한 진단이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뇌 속에 도사린 이 원시적 짐승을 이성과 공감이라는 쇠사슬로 평생 제어하며 살아간다는 무거운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든 폭력 가해자는 그 책임을 방기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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