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리부팅'을 방문해주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행복 리부트입니다. 오늘은 중세의 가장 위대한 유대인 사상가이자, 시대를 초월한 이성의 등대(Beacon of Reason)로 불리는 인물을 만나보고자 합니다. 그의 이름은 모세 마이모니데스 (Moses Maimonides, 1138~1204)입니다. 그의 삶은 한 편의 대서사시와 같습니다. 박해받는 유랑자에서 왕의 주치의가 되기까지, 그리고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에서 이단으로 몰려 비난받기까지, 그의 삶은 거대한 폭풍 속에서 이성이라는 배를 타고 항해한 여정이었습니다.

박해 속에서 피어난 천재
마이모니데스는 1138년, 당시 이슬람 지배하에 있던 스페인 코르도바(Cordoba)의 유서 깊은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평화로운 유년 시절은 광신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왕조인 알모하드(Almohad)의 침략으로 산산조각 났습니다. 알모하드 왕조는 '이슬람으로의 개종이냐, 죽음이냐'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마이모니데스의 가족은 모든 것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10여 년간 스페인 남부와 모로코 등지를 떠돌았는데, 이때의 경험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동시에 깊은 사유를 안겨주었습니다. 기나긴 유랑 끝에 그의 가족은 십자군 전쟁의 광풍이 휩쓸고 간 팔레스타인을 거쳐, 당시 비교적 관용적이던 이집트의 카이로(Cairo)에 정착했습니다.
강제 개종의 아픔. 훗날 마이모니데스가 쓴 글에 따르면, 그와 그의 가족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잠시 이슬람으로 거짓 개종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뼈아픈 경험은 훗날 그가 『강제 개종에 관한 서한』을 쓰는 계기가 됩니다. 그는 이 글에서 "신앙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입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죽음의 위협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신앙을 부정한 유대인들을 위로하고 변호했습니다. 이는 당시 율법학자들 사이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합리적 해석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왕의 주치의이자 가장 바쁜 남자
마이모니데스의 삶은 주경야독이라는 말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는 낮에는 당대 최고의 의사였고, 밤에는 유대 율법과 철학을 집대성한 학자였습니다. 그의 의술은 이집트 전역에 명성을 떨쳤고, 위대한 군주 살라딘의 궁정에서 재상 알 파딜의 주치의로 발탁되었습니다. 그는 왕족과 고관대작뿐만 아니라, 가난한 유대인과 무슬림 환자들을 밤낮없이 돌보았습니다. 그의 일상이 어떠했는지는 그가 남긴 한 편지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 편지는 그의 성실함과 헌신,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보여줍니다. 그는 단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남긴 편지의 일부. "나는 매일 아침 궁전에 가서 왕족들을 진료합니다. 그들이 모두 나을 때까지, 혹은 한 명이라도 아플 경우, 나는 궁전에 머물러야 합니다. (...) 궁전에서 돌아오면, 집 앞은 이미 나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유대인, 무슬림, 귀족, 평민, 친구, 적 할 것 없이 모두가 저의 의술을 원합니다. 나는 말에서 내려 발을 씻고 그들에게 식사를 권하지만, 그들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진료가 끝나면 밤이 깊어지고, 저는 너무 지쳐서 눕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누워서 율법과 철학을 공부하다가 새벽에 잠이 듭니다."
라이벌 왕의 스카우트 제의. 십자군 전쟁 당시 살라딘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였습니다. 놀랍게도 리처드 왕은 적국의 주치의였던 마이모니데스의 명성을 듣고, 그를 자신의 주치의로 삼기 위해 정중하게 초청했습니다. 하지만 마이모니데스는 이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자신을 받아준 이집트에 남아 환자들을 돌보는 길을 택했습니다.
당시와 후대의 평가
그가 살던 시대는 기독교 세계가 교회의 절대 권위 아래 교리 논쟁과 이단 심판으로 들끓던 시기였습니다. 반면 이슬람 세계는 그리스 철학을 받아들여 철학, 과학,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마이모니데스는 이 이슬람 세계의 지성,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비센나의 철학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대한 질문에 부딪혔습니다. "성경(토라)의 말씀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이 충돌할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미혹된 이들을 위해 그가 평생에 걸쳐 집필한 책이 바로 불후의 명저, 『미혹된 자를 위한 안내서』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신앙과 이성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신의 손, 얼굴 같은 표현들은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쓴 비유일 뿐이며, 신은 이성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완전한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책이 출간되자 유대인 사회는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성과 과학을 공부하던 지식인들은 열광했습니다. 그들은 마이모니데스 덕분에 더 이상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고뇌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반면, 율법을 문자 그대로 믿었던 보수적인 랍비들은 격분했습니다. 그들은 마이모니데스가 그리스 철학이라는 이교도 사상으로 신성한 율법을 오염시켰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대 율법 전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방대한 법전 『미슈네 토라』를 완성했습니다. 이 책은 오늘날까지도 유대 율법의 가장 권위 있는 해석서로 인정받습니다.
금서와 책의 화형식. 논쟁은 매우 격렬해서, 프랑스의 일부 유대인 공동체는 마이모니데스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공개적으로 불태워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그를 이단으로 고발하여 기독교의 종교 재판소에 넘기려는 시도까지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그는 고요한 이성과 내면의 확신 속에서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모든 논쟁이 잦아든 후, 유대인들은 그의 위대함을 인정하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격언을 남겼습니다. "모세(구약의 모세)로부터 모세(마이모니데스)에 이르기까지, 모세와 같은 인물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율법을 전해준 첫 번째 모세에 버금가는 '두 번째 모세'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유대 사상뿐만 아니라, 이슬람 철학과 기독교 스콜라 철학의 거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훗날 근대 계몽주의 사상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마이모니데스는 이성과 신앙이라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두 기둥을 조화시키려 했던 위대한 통합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행복 만들기 > 철학자와 행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마이모니데스의 행복론(3) (0) | 2025.11.07 |
|---|---|
| 마이모니데스 철학의 핵심(2) (0) | 2025.11.03 |
| 알파라비와 아비센나가 전하는 행복 메시지(4) (1) | 2025.11.01 |
| 알파라비와 아비센나 철학에 담긴 행복(3) (1) | 2025.11.01 |
| 알파라비와 아비센나 철학의 핵심(2) (0) | 2025.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