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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알파라비와 아비센나가 전하는 행복 메시지(4)

by 행복 리부트 2025. 11. 1.

알파라비와 아비센나의 진단

만약 1,000년 전 이슬람 황금기의 위대한 두 철학자, 알파라비와 아비센나가 21세기의 우리를 찾아온다면 어떨까요? 그들은 아마 우리의 놀라운 기술과 지식의 바다에 감탄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풍요 속에서 길을 잃고 목적을 잃어버린 영혼들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철학자의 역할을 의사와 같다고 믿었습니다. 의사가 몸의 병을 진단하고 치유하듯, 철학자는 영혼과 도시(국가)의 병을 진단하고 치유합니다. 아마도 두 철학자는 우리 시대를 이렇게 진단할 것입니다. "당신들의 시대가 앓는 병의 이름은 바로 분열'입니다." 진리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버렸습니다.

 

과학의 진리, 종교의 진리, 예술의 진리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이성은 감성을 조롱하고, 신앙은 과학을 불신합니다.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건강이 마치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두 철학자는 이것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건강한 몸이란, 심장, 두뇌, 팔, 다리가 조화롭게 하나의 생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건강한 영혼과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진리의 조각들이 하나의 통일된 목적 아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분열의 병을 치유할 그들의 처방전은 무엇일까요?

 

두 철학자 분열로 얼룩진 현대 모습 진단, 제미나이

 

제1처방, 생각의 문법을 바로기

병의 진단이 끝났으니, 첫 번째 처방을 내릴 시간입니다. 그 처방의 이름은 바로 논리학입니다. 우리는 논리학을 딱딱하고 재미없는 학문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두 철학자에게 논리학은 생각의 문법이었습니다. 언어에 문법이 있듯이, 생각에도 문법이 있습니다. 올바른 개념을 질서 있게 연결해야 참된 지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논리학은 참과 거짓을 걸러내는 체와 같습니다. 우리 시대를 보십시오. 수많은 주장과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옵니다.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된 선동일까요? 논리학이라는 기준이 없다면, 우리는 그 홍수 속에서 혼란에 빠질 뿐입니다. 이것이 분열의 병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올바른 사유는 영적인 수행이기도 합니다. 혼란스러운 생각으로는 진리의 빛을 담을 수 없습니다. 논리학은 우리 영혼의 거울을 맑게 닦아, 진리가 왜곡 없이 비치게 하는 첫 번째 과정입니다.

 

제2처방, 의심할 수 없는 나를 발견

생각의 도구(논리학)를 손에 쥐었습니다. 이제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요? 아비센나는 아주 흥미로운 사고 실험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른바 공중 인간 실험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은 어느 순간, 허공에 떠 있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습니다. 어떤 냄새도, 맛도, 감촉도 없습니다. 바람도, 온도도, 중력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내 심장이 뛰는지, 내 몸이 어떤 모양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 완전한 허공 속에서 당신의 몸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도,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할 수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존재하는가?라고 의심하고 있다면, 바로 그 의심하는 나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외부 감각 없이, 오직 순수한  생각만으로 우리 존재의 가장 확실한 근거에 도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순수한 자아의식입니다. 아비센나는 이것을 영혼(Nafs)이라 불렀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모든 앎의 가장 단단하고 확실한 출발점입니다.

 

제3처방, 진리의 빛과 연결

우리 안에 불멸하는 영혼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혼은 어떻게 보편적 진리를 알게 될까요? 눈앞의 특정한 삼각형이 아니라, 모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보편 원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두 철학자는 강력한 비유를 사용합니다. 바로 빛입니다. 우리의 지성은 눈(目)과 같습니다. 눈은 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습니다. 세상의 사물들은 색깔과 형태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빛'입니다. 빛이 있어야만, 눈은 비로소 보고, 사물은 비로소 보이게 됩니다. 이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저 하늘의 능동지성입니다. 능동지성은 모든 보편적 진리의 원형을 담고 있는, 신(神)으로부터 흘러나온 우주적 지성입니다. 우리가 어떤 진리를 깨닫는 모든 순간은, 사실 우리 영혼의 거울이 이 능동지성의 빛을 받아 잠시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체험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발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동지성의 도움으로 발견하는 것입니다.

통합을 이룬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 제미나이

 

 

제4처방, 건강한 공동체'

개인의 영혼은 홀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며, 공동체 안에서만 참된 행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훌륭한 도시, 즉 덕치 도시란 어떤 모습일까요? 알파라비는 이 도시를 건강한 인체에 비유했습니다.가장 중심에는 심장(통치자)이 있습니다. 통치자는 최고의 지혜(능동지성)를 갖춘 철학자입니다. 그는 도시 전체에 생명의 피를 보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다른 시민들은 두뇌, 눈, 손, 발과 같습니다. 이들은 모두 심장의 뜻에 따라 각자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조화를 이룹니다. 이 도시의 목적은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상의 덕(德)을 발휘하고, 궁극적으로 참된 행복(영혼의 완성)을 이루도록 돕는 것입니다. 진정한 정치는 모든 시민이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돕는 영혼을 돌보는 기술입니다.

 

마지막 처방, 통합

이제 긴 진료의 마지막입니다. 우리는 혼돈의 원인이 분열에 있음을 진단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꿰뚫는 알파라비와 아비센나의 마지막 처방전은 단 하나의 단어입니다. 바로 통합 하십시오. 우리 시대의 병이 분열에서 왔으니, 그 치유는 통합에서 올 수밖에 없습니다.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영혼을 통합하십시오. 이성으로 파악한 지식이 영혼의 기쁨이 되게 하십시오. 앎(지식)과 삶(실천)을 통합하십시오. 무엇이 선인지 알았다면, 거리로 나가 그렇게 살아내십시오. 개인의 완성(행복)과 공동체의 건강을 통합하십시오. 나의 지혜는 내가 속한 공동체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쓰여야 합니다.

이 모든 통합은 앎을 향한 끊임없는 추구를 통해 가능합니다. 진리를 아는 것, 특히 모든 진리의 근원인 신적 존재에 가까워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며, 영혼을 치유하는 가장 확실한 약입니다. 1,000년 전의 두 의사가 우리에게 남긴 처방전은 결국 이렇습니다. "부디 그대 자신과, 그대 시대의 훌륭한 의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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