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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토마스 아퀴나스가 전하는 행복 메시지(4)

by 행복 리부트 2025. 11. 1.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정보와 선택지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떤 이들은 오직 과학과 이성만이 진리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성적인 질문을 두려워합니다. 만약 중세의 위대한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금 우리 시대를 본다면 어떤 말을 해줄까요? 그는 자신을 격정적인 고백가(아우구스티누스)나 해체하는 사상가(나가르주나)가 아니라고 소개할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건축가'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흩어진 진리의 돌들을 모으고 정교하게 다듬어, '이성'과 '신앙'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기둥 위에 장엄한 성당을 지은 사람입니다. 아퀴나스가 보기에, 이성과 신앙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나 불필요하고 비극적인 분열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진리에 이르는 길은 두 갈래로 나 있을 뿐입니다. 하나는 이성의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앙의 길입니다. 이 두 길은 처음에는 달라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같은 정상, 즉 모든 진리의 근원이신 신에게서 만나게 됩니다.

 

아퀴나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생각하는 능력, 즉 이성을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신께서 주신 이성이, 신을 향한 신앙을 방해할 리가 없습니다. 그는 우리가 한쪽 눈만 뜨고 세상을 보려 한다고 안타까워할지 모릅니다. 이성의 눈만 뜬 사람은 창조된 세상의 경이로움은 봅니다. 하지만 그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는 보지 못합니다. 신앙의 눈만 뜬 사람은 창조주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분이 만드신 이성의 질서를 외면합니다. 아퀴나스는 우리에게 두 눈을 모두 뜨라고 말합니다. 이성과 신앙은 적이 아니라, 가장 훌륭한 동반자입니다. 이성은 신앙의 기초를 다져주고, 신앙은 이성이 홀로 오를 수 없는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줍니다. 그의 철학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분열된 것을 하나로 묶는 작업입니다. 그러니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토마스 아퀴나스는 우리가 이성과 신앙이라는 두 날개로, 진리라는 드넓은 하늘을 향해 온전히 날아오를 수 있도록 돕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성과 신앙의 눈, 제미나이

 

그대의 이성은 신성한 불꽃

아퀴나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첫 번째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은 선(善)하며,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 감각, 그리고 생각하는 능력인 이성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주께서 주신 가장 귀하고 신성한 선물입니다. 그는 세상을 신이 쓰신 거대한 책에 비유합니다. 하늘의 별, 바다의 물고기, 땅의 꽃 한 송이는 모두 그 책에 적힌 글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성은 바로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해독기입니다. 페이지 곳곳에 숨겨진 그분의 서명을 발견하는 돋보기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이성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길에 굴러가는 공을 보면, 누군가 그 공을 찼다는 것을 압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있음을 압니다. 복잡하고 정교한 시계를 보면, 그 시계를 만든 장인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아퀴나스는 이 이성의 돋보기로 우주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의 움직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계절의 질서, 씨앗 하나에 담긴 생명의 신비들.  이 거대하고 정교한 시계와 같은 우주가 어찌 시계공 없이 저절로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움직이는 것에는 그것을 처음 움직이게 한 움직이지 않는 원동력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스스로 존재하는 첫 번째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의 세계에는, 그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필연적인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신앙의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성과 관찰이라는 도구만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성의 길은 그 끝에서 하나의 존재를 명백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모든 것의 첫 번째 원인이자, 모든 완전함의 기준이 되는 존재, 이 우주라는 거대한 책을 설계하고 쓴 저자,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 부릅니다. 이성만으로도 우리는 그분의 존재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은 우리에게 그분이 어떤 분인지, 그분의 사랑이 어떠한지는 자세히 말해주지 못합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에게 두 번째 눈, 즉 '신앙'이 필요합니다.

 

은총, 자연의 완성

이제 우리는 두 눈을 모두 뜨려 합니다. 이성과 신앙은 새의 양 날개와 같습니다. 한쪽 날개만으로는 결코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없습니다. 이성(자연의 영역)은, 우리가 딛고 설 단단한 1층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이 세상의 법칙을 이해하고, 신이 계시다는 사실까지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은총의 영역)은, 그 1층 위에 우리가 상상도 못 했던 아름다운 2층과 하늘을 향한 첨탑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성은 신이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그분이 '삼위일체'이시며 인간이 되셨다는 신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진리는 오직 신이 스스로를 드러내 보여주시는 '계시(啓示)'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퀴나스 철학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나옵니다.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시킨다."  생각해 보십시오. 훌륭한 스승은 재능 있는 제자의 재능을 짓밟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재능을 더욱 갈고닦아 잠재력을 최고로 이끌어냅니다.

 

신의 은총이 우리의 이성에게 하는 일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신앙은 이성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이 볼 수 없었던 더 높은 진리를 향해 그 눈을 열어주어, 이성을 더욱 이성답게 완성시킵니다. 진정한 과학(이성)은 신이 만드신 자연의 질서를 밝혀냅니다. 그러니 어찌 신앙과 모순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재능, 노력, 인간적인 사랑, 이 모든 자연적인 선(善)들은 그 자체로 귀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신의 은총이라는 빛을 만날 때, 즉 신을 향한 사랑 안에서 이루어질 때,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중세시기에 기도를 드리는 신자들의 모습, 제미나이

선하게 사는 법

이성과 신앙이라는 두 눈으로 세상을 보니, 모든 것에는 자신의 목적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도토리의 목적은 떡갈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 이성의 빛은 알려줍니다.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 이것이 바로 신이 우리 본성에 심어두신 자연법입니다. 그렇다면 악(惡)이란 무엇일까요? 악은 선의 반대편에 있는 거대한 실체가 아닙니다. 악이란, 마땅히 있어야 할 선(善)의 결핍일 뿐입니다. 눈이 보지 못할 때 맹목이라는 악이 생겨나듯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선하게 살 수 있을까요? 아퀴나스는 네 가지 중요한 덕(德)을 제안합니다. 지혜는 무엇이 참된 선인지 올바로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정의는 각자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몫을 내어주려는 의지입니다. 용기는 옳은 일을 행할 때 두려움을 이겨내는 꿋꿋함을 말합니다. 절제는 쾌락에 대한 욕망을 이성의 통제 아래 두는 능력입니다. 이 네 가지 덕을 실천할 때, 우리는 자연적인 행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목적지일까요? 아퀴나스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이 세상의 어떤 것(부, 명예, 쾌락)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무한한 갈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직 모든 진리의 근원이시며, 완전한 선 그 자체이신 신만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며, 완전한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완전한 행복이란, 저 세상에서 신의 본질을 직접 보는 것(지복직관)이며, 그분과 완전히 하나 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선한 삶은 바로 그 최종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의 과정입니다.

 

혼돈의 시대,  '질서'의 초대장

아퀴나스의 철학은 위대한 건축물과 같습니다. 이성이라는 기초 위에 신앙이라는 기둥을 세웠고, 덕(德)이라는 벽돌을 쌓아 행복이라는 지붕을 얹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목적'을 잃어버린 시대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이 파편화되고 상대적이라 말하는 혼돈 속에서 길을 잃기 쉽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토마스 아퀴나스가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지극히 간단명료합니다. "그대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라" 질서란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정점에 마땅히 있어야 할 분, 즉 신을 두십시오. 이것이 모든 질서의 시작입니다. 그 질서에 맞게 살아가기 위해 덕(德)을 실천하십시오. 세상의 좋은 것들을 사랑하되, 그것들이 최종 목적지인 양 착각하지 마십시오. 가족, 성공, 재능은 그분을 가리키는 소중한 '이정표'입니다.

 

이정표 자체에 머물러 길을 잃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 각자의 목적에 맞게 움직일 때, 그 안에서 비로소 평화가 깃듭니다. 아퀴나스는 평화를 질서의 고요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니 흩어지지 마십시오. 방황하지 마십시오. 그대의 이성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대의 신앙을 뜨겁게 끌어안으십시오. 그대의 삶의 모든 조각들(학문, 일, 사랑, 기도, 휴식)을 신이라는 단 하나의 중심을 향해 아름답게 정돈하십시오. 그 질서 속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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