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의 행복 이야기는 그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시작합니다. 그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텔로스)은 행복이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퀴나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는 행복을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지상에서의 좋은 삶 (불완전한 행복)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행복(에우다이모니아)과 비슷합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이성과 의지를 사용해 덕(德) 있는 삶을 살 때 얻는 행복입니다. 아퀴나스도 행복이 '활동'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네 가지 기본 덕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을 사추덕(四樞德) 또는 네 가지 기본 덕이라고 부릅니다. 지혜는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정의는 각자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몫을 주는 것입니다. 용기는 어려움 앞에서도 꿋꿋하게 선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절제는 이성으로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덕들은 우리가 이성(자연법)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꾸준한 실천과 습관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 안에서 이 덕들을 실천하며 사는 삶이 바로 인간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첫 번째 행복입니다.
하지만 아퀴나스는 이 행복을 불완전한 행복이라고 불렀습니다. 왜일까요? 이 행복은 외부 요인에 의해 쉽게 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병, 가난, 혹은 친구의 죽음 같은 일들이 닥치면 행복은 방해받습니다. 또한 이 행복만으로는 인간의 궁극적인 갈망을 완전히 채울 수 없습니다.

신과의 만남 (완전한 행복)
아퀴나스는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을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갈망이 있습니다. 무한한 진리와 선을 향한 갈망입니다. 그렇다면 이 갈망을 완전히 채워주는 완전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직 내세(來世), 즉 천국에서만 가능합니다. 아퀴나스는 이것을 '지복직관(至福直觀)'이라고 불렀습니다. '지복직관'은 조금 어려운 말입니다. 쉽게 말해, 신을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자 완전한 진리 그 자체인 신을 직접 보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인간 영혼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모든 지적 탐구와 사랑의 갈망이 마침내 도달하는 종착점입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 더 이상 믿음이나 희망이 필요 없습니다. 이미 눈앞에서 진리를 직접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신과의 완전한 합일, 그리고 영원한 사랑과 환희만이 존재합니다. 완전한 행복이야말로 아퀴나스가 제시하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행복으로 가는 사다리, 덕
그렇다면 지상의 불완전한 행복에서 천상의 완전한 행복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요? 아퀴나스는 두 종류의 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첫째, 네 가지 기본 덕(위에서 말한 지혜, 정의 등). 이것은 자연적 덕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덕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 좋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궁극적인 목적인 신에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때 신이 우리에게 직접 불어넣어 주시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 가지 신학적 덕(향주덕, 向主德)입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이성을 넘어서는 신의 진리를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둘째는 희망입니다. 신의 도우심을 굳게 믿고, 완전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랑입니다. 모든 덕 중에서 가장 위대한 덕입니다. 신을 사랑하고, 신 때문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퀴나스는 이 사랑이야말로 모든 덕의 형식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다른 모든 덕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완성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덕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신의 은총을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아테네와 예루살렘의 위대한 화해
결론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행복론은 두 세계를 하나로 합친 것입니다. 아테네의 이성(아리스토텔레스)과 예루살렘의 신앙(아우구스티누스)을 종합했습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 있는 삶이라는 지상의 행복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행복의 중요한 기초로 인정했습니다. 우리는 이성으로 훌륭한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행복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 지상의 행복이라는 튼튼한 토대 위에, 그는 신앙과 은총, 사랑이라는 기둥을 세웠습니다.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드높은 성전을 지은 것입니다. 그 성전의 가장 높은 곳에는 '지복직관'이라는 완전한 행복이 빛나고 있습니다.
아퀴나스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행복은 이성만으로도, 신앙만으로도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최선을 다해 이 땅에서 좋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신의 은총에 의지해 저 높은 영원한 행복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퀴나스가 제시하는 행복의 길입니다. 이성과 신앙이라는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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