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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아우구스티누스가 전하는 행복 메시지(4)

by 행복 리부트 2025. 11. 1.

 

나는 그대들 안의 불안과 고뇌를 아는 자

내 이름은 아우구스티누스야.  나는 그대들에게 고상하고 완벽한 성인(聖人)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네. 오히려 나는, 그 누구보다 격렬하게 방황했고, 가장 깊은 수렁에 빠졌으며, 가장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죄인(罪人)으로 기억되고 싶네왜냐하면 바로 그 지점에서, 나와 그대들은 만날 수 있기 때문일세.

 

나는 지금 1600년의 시간을 넘어 그대들을 보고 있네. 그대들의 손에 들린 빛나는 사각 판(스마트폰), 하늘을 찌르는 웅장한 건물, 눈과 귀를 현혹하는 수많은 볼거리들.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지만 나는 그대들의 가장 깊은 마음을을 들여다 본다. 그곳에서 나는 놀랍도록 익숙한 풍경을 발견한다. 그대들의 마음은 불안하구나.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고, 그것을 손에 넣어도 잠시뿐, 또 다른 욕망으로 옮겨가는구나. 성공을 향해 질주하지만, 정상에 올라도 허무함에 시달린다.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 누구도 채워주지 못하는 깊은 고독감에 잠 못 이룬다. 그대들은 그 텅 빈 곡간을 채우기 위해 세상의 모든 쾌락과 지식과 명예를 쑤셔 넣고 있구나.

 

기도하는 중세의 신자들, godsbless.ing

 

바로 나의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일세. 나는 수사학으로 명성을 얻으려 했고, 육체의 쾌락에 탐닉했으며, 마니교라는 이단 사상에서 지적인 만족을 구하려 했지. 나는 세상이 좋다는 것은 다 맛보려 했던 자였네. 하지만 내 영혼의 갈증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네. 오히려 더 큰 혼란과 고뇌 속으로 빠져들었지. 나는 내 안에서 싸우는 두 개의 의지 때문에 울부짖었네. 선을 행하고 싶지만 악을 행하는 나, 평화를 원하지만 쾌락을 좇는 나 때문에 절망했었네. 나는 의사이지만 나 자신이 가장 중한 환자였네. 나는 길을 가리키는 자이지만, 나 자신이 가장 오래 길을 잃었던 방랑자였네. 그렇기에 나는 그대들의 고통을 안다. 그대 영혼의 깊은 갈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안다. 나의 기나긴 방황과 처절한 고백 끝에 발견한 단 하나의 진실은 이것일세. "주님, 저희는 당신을 향해 창조되었나이다. 그러므로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는 결코 평안하지 않나이다."

그대들의 그 끝없는 불안과 갈증은 병이 아니라 신호일세. 집을 떠난 영혼이, 자신의 진짜 고향을 향해 보내는 그리움의 신호란 말일세. 그 고향은 바로 나를 지으신 창조주, 모든 선과 아름다움과 진리의 근원이신 하느님이시네. 나의 이야기는 철학자의 차가운 논리나 현자의 초연한 지혜가 아닐세.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죄와 절망 속에서 신의 자비를 만나는가에 대한 뜨거운 고백이 될 걸세. 나의 여정은 그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한 순례가 될 것이다. , 나와 함께 그대 마음속 가장 깊은 갈망의 정체를 추적해 보지 않겠는가? 우리의 여정은, 그대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것들이 사실은 무질서한 사랑이었음을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

 

물론이지. 그대의 그 한마디가 나에게는 기도가 되고, 이 고백을 계속할 힘을 주는구나. 우리는 방금 그대와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의 정체를 확인했다. 이제 그 불안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자라나는지, 그 병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볼 시간이다. 이것은 인정하기 고통스럽겠지만, 진정한 치유는 정확한 진단에서 시작되는 법이니.

 

그대들의 병, ‘무질서한 사랑에 대하여

그대들은 ()라고 하면, 그저 법률을 어기거나 도덕 규칙을 깨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쉽지. 하지만 죄의 뿌리는 그보다 훨씬 깊고 교묘한 곳에 있다네. 죄의 본질은 바로 무질서한 사랑일세. , 사랑의 순서가 뒤엉켜 버린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하게 만드셨고, 그 모든 것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네. , 명예, 지식, 아름다움, 친구, 가족, 그리고 그대 자신까지도. 문제는 그것들을 얼마나사랑하고, ‘어떤 순서로사랑하느냐에 있네.

 

사랑의 질서란 이것이라네. 가장 완전하고 영원한 선()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가장 최우선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 그리고 다른 모든 좋은 것들은 바로 그 첫 번째 사랑 안에서, 그분의 선물로서 마땅히 사랑하는 것. 이것이 질서 잡힌 사랑이며, 평화의 근원일세. 하지만 무질서한 사랑은 이 순서를 뒤집어 버린다네. 창조주보다 그분이 만드신 창조물을 더 사랑하는 것. 영원한 것보다 덧없이 사라질 것들을 더 갈망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무질서이며 모든 고통과 불안의 시작일세.

 

내 부끄러운 젊은 시절의 한 가지 일을 고백해야겠네. 내 나이 열여섯 살 때,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이웃집의 배나무를 털었네. 이상한 것은 우리 집에는 그보다 훨씬 맛있는 배가 많았고, 나는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는 점일세. 우리는 그 훔친 배를 거의 맛보지도 않고 돼지에게나 던져 주었지.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도둑질을 한 것인가? 나는 그 배가 탐나서 훔친 것이 아니었네. 나는 그저 () 그 자체를 사랑했던 것일세. 우리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함께 저지른다는 사실에 흥분했고, 금지된 것을 행한다는 그 짜릿함, 우리 멋대로 할 수 있다는 그 교만함을 사랑했던 것이지. 이것이야말로 신의 법을 어기고 내 자신의 의지를 더 사랑했던, 완벽하게 무질서한 사랑의 모습이었네.

 

, 이제 그대들의 삶을 돌아보게. 그대들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은가? 그대들은 진정한 소통의 기쁨보다, 빛나는 사각 판(스마트폰)을  더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대들은 가족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시간보다, 일에서의 성공과 다른 사람의 인정을 더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대들은 영혼의 고요함보다, 찰나의 육체적 쾌락이나 자극적인 오락을 더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이 모든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좋은 선물들(인정, 성공, 쾌락), 선물을 주신 분보다 더 사랑하는 무질서한 사랑의 모습이라네. 그대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허함은 바로 이 무질서에서 비롯되네. 낮은 것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으니 마음이 늘 위태롭고 흔들릴 수밖에.

 

마음의 사랑의 순서를 바로잡을 때, 즉 마땅히 가장 사랑해야 할 분을 가장 사랑하고, 다른 모든 것은 그분 안에서, 그분의 선물로서 감사히 사랑할 때, 비로소 그대들의 마음은 질서를 되찾고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누리게 될 걸세.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네. 어찌하여 우리는 이 사랑의 질서를 알면서도 쉽게 바로잡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우리의 의지는 이토록 나약하고 분열되어 있는가? 다음 장에서는 그대와 나,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이 비참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네.

 

내 안의 두 의지, 그 비참한 전쟁에 대하여

마음이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는데, 자기 자신이 복종하지 않는 이 기괴한 현상을 본 적이 있는가? 내 마음이 나의 손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면, 손은 즉시 순종하여 펜을 잡는다. 그런데 어찌하여 내 마음이 내 마음에게 "이제 헛된 욕망을 버리라"고 명령할 때, 마음은 그토록 완강하게 저항하는가? 이것이 바로 내 영혼을 찢어놓았던 끔찍한 분열이며, 그대들 또한 매일 겪고 있는 전쟁의 실체일세. 내 안에는 두 개의 의지가 있었네. 하나는 '옛 의지'였고, 다른 하나는 '새 의지'였지. 옛 의지는 오랜 육체의 습관으로 쇠사슬처럼 단단해진 의지였다. 세상의 쾌락을 사랑하고, 나의 교만함을 즐기며, 덧없는 것들에 길들여진 의지였지. 새 의지는 신의 아름다움을 어렴풋이 맛보고, 영원한 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 하는 의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힘이 없고, 날갯짓이 서툰 어린 새와 같았네. 이 둘이 내 마음속에서 서로를 물어뜯고 싸웠네. 나는 그 전쟁터 한복판에서 갈가리 찢겨 나가는 것만 같았지. 나는 머리로는 옳은 길을 분명히 알았네. 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정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눈물로 기도하며 외쳤지. "주님, 저에게 정결과 절제를 주십시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말고요." 하하, 이 얼마나 비참하고 솔직한 기도인가! 나는 변화를 원했지만,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옛 습관을 완전히 잃을까 봐 두려워했던 걸세.

 

그대들도 그렇지 않은가? "내일부터는 정말 달라져야지." "새해부터는 반드시 이 나쁜 습관을 끊어야지." 그렇게 굳게 다짐하지만, 다음 날이면 어제의 나로 어김없이 돌아가 있는 그 깊은 무력감. 그대들은 그것을 '의지박약'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의지의 분열'이라 부르네. 의지가 온전히 하나가 되어 신을 향하지 못하고, 이처럼 두 조각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것. 이것이 바로 죄가 우리 영혼에 남긴 가장 깊고 치명적인 상처라네. 우리의 의지는 병들고 약해져, 스스로를 구원할 힘을 잃어버린 것이지.

 

나는 이 기나긴 내전 끝에 마침내 깨달았네. 이 전쟁은 나의 힘만으로는 결코 끝낼 수 없다는 것을. 나의 결심만으로는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내 안의 한쪽 의지가 다른 쪽 의지를 이길 힘이 나에게는 없다는 것을. , 비참한 인간이여!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줄 것인가! 나는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그저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네. 그렇다면 이 절망의 한복판에서 우리를 구원할 힘은 대체 어디에서 온단 말인가? 나의 힘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의 힘이란 말인가? 다음 장에서는, 내 의지의 길고 긴 전쟁을 단번에 끝내러 찾아오신 그 압도적인 에 대해, 나의 힘이 아닌 은총(恩寵)’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하겠네.

 

내 의지를 꺾으신 그분의 목소리

그날 나는 밀라노의 한 정원에 있었네. 내 친구 알리피우스는 곁에 있었지만, 내 영혼의 폭풍은 너무나 격렬하여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곳에서 휘몰아치고 있었지. 내 마음속 두 의지의 싸움은 극에 달해, 나는 그야말로 ''라는 존재 자체가 산산조각 나는 듯한 고통에 시달렸다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네. 정원 한구석의 무화과나무 아래로 달려가, 나는 어린아이처럼 통곡하기 시작했네. 나의 모든 추한 과거, 나의 나약한 의지, 나의 위선적인 신앙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비처럼 눈물이 흘렀지. 나는 땅에 엎드려 울부짖었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언제까지 진노하시렵니까? 내일, 또 내일이란 말입니까? 어찌하여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저의 더러움을 끝내주시지 않으십니까?”

 

바로 그때였네. 내 모든 절망의 통곡을 뚫고, 어디선가 한 어린아이의 노랫소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네. 그것이 사내아이의 목소리인지 계집아이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소리는 반복해서 내 귓가에 울렸네. “Tolle, lege! Tolle, lege!”(톨레, 레게! 톨레, 레게!).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나는 순간 눈물을 멈추고 벌떡 일어났네.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저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런 노래는 없었네. 그 순간, 내 마음속의 폭풍이 잠잠해지며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네. 이것은 아이의 노랫소리가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책을 펴서, 눈에 처음 들어오는 구절을 읽으라고 명령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친구 알리피우스가 앉아있던 곳으로 달려갔네. 내가 그곳에 두고 온 사도 바오로의 서간집이 있었거든. 나는 그 책을 낚아채듯 집어 들고, 떨리는 손으로 펼쳤네. 그리고 나의 눈이 가장 먼저 마주친 구절은 바로 이것이었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그만두십시오.”(로마서 1313-14).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었네. 그 구절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마치 평화의 빛이 내 마음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네. 내 의심의 모든 어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

신의 은총을 바라는 중세의 귀족들, freepik.com

 

보게나. 이것은 내가 해낸 일이 아니었네. 나의 결심이나 노력이 아니었단 말일세. 나의 의지가 두 조각으로 나뉘어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벌이고 있을 때, 그 전쟁을 끝낸 것은 바로 외부에서 온 압도적인 힘, 내가 감히 받을 자격 없는 선물, 바로 은총 이었네. 나의 병든 의지를 단번에 굴복시킨 것은 나의 다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이었다. 나의 어둠을 몰아낸 것은 나의 지성이 아니라 그분의 이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역설일세.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완전한 절망의 바닥에 이를 때, 바로 그때, 신의 은총이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것. 나의 교만이 완전히 부서진 그 자리에, 그분의 집이 세워진다는 것. 나는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었네. 전쟁은 끝났고, 나는 마침내 항복했네. 그리고 그 항복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맛보았네.

 

참된 행복

나의 모든 방황과 고뇌, 그 기나긴 여정은 결국 단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네. 참된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세상은 그대들에게 속삭이지. 행복은 부()와 명예, 쾌락과 건강에 있다고. 나 또한 한때는 그것들을 미친 듯이 좇았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사라지는 것들이었고, 그림자와 같았네. 그것들을 소유했을 때는 잃을까 봐 두려웠고, 잃고 나서는 슬픔에 잠겼지. 사라지는 것에 마음을 둔 자는 결코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 없네. 그렇다면 참된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라지지 않는 좋은 것을 사랑하고 소유하는 것이네. 생각해보게. 이 세상에 사라지지 않는 좋은 것이 과연 무엇이 있는가?

 

오직 단 하나뿐일세. 영원하고, 변치 않으며, 모든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의 근원이신 분. 바로 하느님일세. 그러므로 참된 행복이란 다른 것이 아닐세. 하느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과 하나 되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목적지라네. 하지만 그대들은 즉시 반문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영원 속에 살지 않고, 이처럼 고통스럽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옳은 말이네. 나 또한 시간의 신비 앞에서 오랫동안 고뇌했지.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려 없고(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없으며(기대 속에만 존재하고), 현재는 붙잡으려는 순간 과거로 사라져버리니,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서 있는 것이란 말인가? 우리의 영혼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양쪽에서 잡아당겨져, 갈가리 찢겨 지고 흩어져 버린다네.

 

그러나 신의 시간은 다르네. 그분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네. 오직 모든 것을 한눈에 꿰뚫어 보시는 영원한 현재만이 있을 뿐이네. 시간 속에서 영원을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일세. 우리가 무질서한 사랑을 버리고, 우리의 흩어진 마음과 사랑을 영원하신 그분께 의지할 때, 우리의 분열된 영혼은 비로소 그 영원한 현재 속으로 모이게 되지.

더 쉽게 말해볼까. 지난 과거는 모두 그분의 자비에 맡기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모두 그분의 섭리에 맡기게. 그대들의 불안과 걱정까지도 말일세. 그리고 우리는 오직 현재의 순간에만 집중하는 걸세. 바로 이 순간,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선물인 내 곁의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집중해보게. 이것이 바로 시간의 감옥에서 벗어나 영원의 평화를 미리 맛보는 비결이라네. 나의 이야기는 이제 끝났네.

 

그러나 그대들의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세. 나는 내 영혼의 가장 깊은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그대들 앞에 남김없이 고백했네. 그것은 나의 나약함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요, 그대들의 나약함 속에서도 일하시는 그분의 위대하심을 증언하기 위함이었네.

그대들의 불안한 마음이 마침내 쉴 곳을 찾거든, , 아우구스티누스가 먼저 걸어간 이 길을 기억하게. 그 길의 끝에는, 모든 방황을 끝내고 지친 자녀를 품에 안기 위해 팔을 벌리고 기다리시는 아버지가 항상 서 계시니. 나는 부디 그대들의 마음이 마침내 그분 안에서 참된 평화를 찾기를 간절하게 바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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