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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핵심(2)

by 행복 리부트 2025. 10. 31.

 

나는 믿는다, 고로 이해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첫 번째 문은 바로 이 말에서 시작합니다. "나는 믿는다, 고로 이해한다." 이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자주 비교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믿으라'는 뜻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유한하고 불완전합니다. 특히 인간은 죄로 인해 마음이 어두워져서,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궁극적인 진리이신 신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믿음'이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믿음은 우리 이성이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비추어주는 '빛'과 같습니다. 일단 믿음이라는 빛 안으로 들어서면, 그때부터 '이성'*이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인 진리를 더 깊이 탐구하고, 그 논리적인 의미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임무입니다. 이처럼 신앙과 이성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돕고 완성하는 '드림팀' 같은 관계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신앙 없는 이성은 길을 잃고 방황하기 쉽습니다. 이성 없는 신앙은 맹목적인 미신에 빠지기 쉽습니다. 신앙이 먼저 길을 열어주고, 이성이 그 길을 탄탄하게 다지는 이 사상은 이후 중세 철학 전체의 기본 틀이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더위키

 

신의 세계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젊은 시절 아우구스티누스를 가장 괴롭혔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전지전능하고 선하신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세상에는 왜 이토록 끔찍한 악(惡)이 존재합니까?"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아주 날카롭습니다. 만약 신이 악을 막을 수 없었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신이 악을 막을 의지가 없었다면, 그는 선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아주 독창적인 해답을 내놓습니다.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지만 단순합니다. "악은 실체가 아닙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악은 선한 신이 창조한 어떤 존재나 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은 단지 '선(善)이 결핍된 상태' 또는 '선이 부재한 상태'를 가리키는 이름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둠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힘이 아니라, 단지 '빛이 없는 상태'입니다. 추위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힘이 아니라, 단지 '열이 없는 상태'입니다. 질병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이 결핍된 상태'입니다. 악(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악은 '선(善)이 결핍된 상태'일 뿐입니다. 신은 오직 선한 것만을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악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며, 신에게 악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의지와 신의 은총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습니다. 어둠이나 질병 같은 '자연적인 악'은 그렇다 쳐도, 우리가 경험하는 '도덕적인 악'(예: 증오, 질투, 살인)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것이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신은 인간에게 선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고귀한 능력, 즉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 의지를 사용하여 신을 향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기 자신이나 더 낮은 가치를 향하며 '선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불순종한 이후, 그 죄(원죄)가 모든 후손에게 유전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의지는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마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버린 것처럼, 우리의 의지는 악의 방향으로 기울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온전한 선을 행하거나 구원에 이를 자유를 상실했습니다. 죄를 지을 자유는 있지만, 죄를 짓지 않을 자유는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서 '신의 은총(Grace)'을 강조합니다. 은총이란, 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에게 신이 값없이 베풀어주는 신적인 도움과 사랑입니다. 병든 의지를 치유하고, 선을 행할 힘을 주며, 구원으로 이끄는 것은 오직 신의 은총뿐입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신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만으로도 선을 행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펠라기우스라는 사상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나약함과 신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하며, 중세 신학의 토대를 단단히 마련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역사의 의미를 묻다 (두 개의 도성)

로마가 함락되자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로마가 무너지다니, 역사는 그저 의미 없는 힘의 투쟁일 뿐인가?" 이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신의 도성)》이라는 위대한 책을 통해 기독교적 역사 철학을 제시합니다. 그는 인류의 역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두 개의 도성(도시, 공동체) 사이의 투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나의 도성은 지상의 도성 (The Earthly City)입니다. 이 공동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뭉쳐 있습니다. 구성원들은 지상의 평화, 부, 명예를 추구하며, 국가와 자신을 숭배합니다. 바벨론이나 로마 제국 같은 지상의 위대한 제국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도성은 결국 멸망할 운명입니다. 다음은 신의 도성 (The City of God)입니다. 이 공동체는 '신에 대한 사랑'으로 뭉쳐 있습니다. 구성원들은 지상에서는 순례자처럼 살아가며, 영원한 하늘의 평화를 갈망합니다. 이들은 지상의 국가에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충성은 오직 신에게만 향해 있습니다. 이 도성은 영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이 두 도성의 시민들이 뒤섞여 살아가며 벌이는 거대한 영적 투쟁의 과정입니다. 지상 국가들의 흥망성쇠는 그 자체로 궁극적인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이 투쟁의 끝, 즉 최후의 심판에서 신의 도성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고 완성되는 데 있습니다. 이 사상은 로마의 멸망에 절망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역사를 바라보는 거대한 관점을 제시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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