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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상과 삶(1)

by 행복 리부트 2025. 10. 31.

방황하는 청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AD 354 ~ AD  430)가 살았던 4세기 말 로마는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거대한 제국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야만족'이라 불리던 게르만족이 국경을 넘어왔고, 내부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수백 년간 박해받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관이 뒤집히는 거대한 전환기였습니다. 사람들은 영원할 것 같던 로마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깊은 불안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 불안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제미나이

 

 

쾌락과 지식 사이

아우구스티누스는 북아프리카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로마의 전통을 따르는 관리였고, 어머니 모니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똑똑했고, 감정적이고 열정이 넘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책에서 10대 시절의 충격적인 도둑질을 고백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배를 훔쳤는데, 배가 고파서 훔친 것이 아니고, 그저 나쁜 짓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즐겼다고 합니다. 나는 왜 선한 것을 알면서도 악을 행하는가? 이 질문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철학의 중심 주제가 되었습니다.

고백록  지금 우리가 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그가 직접 쓴 《고백록》에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인류 최초의 자서전으로도 불립니다. 이책은 신을 향한 그의 솔직한 기도이자 처절한 자기반성문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의 방황, 쾌락에 빠졌던 일, 심지어 배를 훔쳤던 사소한 죄까지 숨김없이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왜 선을 알면서도 악을 택했는가?'처럼 자신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이 책은 한 인간이 진리를 찾아 방황하다 마침내 신을 만나는 과정을 그린 위대한 영적 순례기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집문당

 

17세가 되던 해, 그는 더 큰 성공을 위해 대도시 카르타고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성공을 위해 웅변술(수사학)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화려한 도시의 쾌락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연극에 매료되었고, 한 여인과 15년간 동거하며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명예와 쾌락을 맛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공허함과 불안은 조금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진리향한 끝없는 여정

그의 지적인 공허함은 진리를 향한 탐구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당대의 여러 사상과 종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가 처음 매료된 것은 마니교였습니다. 마니교는 세상을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싸우는 전쟁터로 보았습니다. 이 사상은 그에게 아주 매력적인 변명거리를 주었습니다. "내가 악을 행하는 건 내 안의 악한 본성 탓이지, 내 책임이 아니야!" 그는 무려 9년 동안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니교의 교리는 그의 날카로운 지성을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논리적 모순에 부딪힌 그는 결국 마니교와 헤어집니다. "이 세상에 확실한 진리란 존재하지 않아." 이 생각은 모든 것을 의심하게 했지만, 어떤 해답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가 로마와 밀라노에서 웅변술 교사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시기, 그의 인생을 바꿀 철학을 만납니다. 바로 신플라톤주의입니다. 이 철학은 물질세계 너머에 모든 선의 근원인 궁극적인 실재가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특히 악에 대한 설명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악이란 악한 신이 만든 실체가 아니고, 그것은 단지 선이 부족한 상태(선의 결핍)일 뿐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어둠이 빛 자체가 아니라 빛이 없는 상태인 것과 같았습니다. 이 사상은 그에게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그는 신은 선하며, 물질을 넘어선 영적 세계가 존재함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밀라노의 기적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그는 기독교의 진리를 머리로는 거의 다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여전히 세속적인 명예와 쾌락의 낡은 습관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는 《고백록》에서 "두 개의 의지가 내 안에서 싸우고 있다"고 묘사합니다. 하나는 신을 향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낡은 습관에 머무르려 했습니다. 서기 386년 여름,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그는 이 내적 갈등으로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톨레, 레게! 톨레, 레게!"라고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는 라틴어로 "집어 들고 읽어라!" 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곁에 있던 성경을 집어 들어 무작정 펼쳤습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구절은 로마서 13장이었습니다.

로마서 13장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고,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마십시오.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마십시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마음을 덮고 있던 모든 의심의 어둠이 걷혔습니다. 평화의 빛이 그의 마음에 흘러 들어왔습니다. 긴 방황 끝에 그가 마침내 신에게 항복한 순간이었습니다.

DVD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한 장면

히포의 주교가 되다

회심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는 화려한 수사학 교사의 길을 버리고, 고향인 북아프리카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히포 레기우스라는 도시의 주교(교회 지도자)가 되어, 이후 34년간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개인의 구원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교리를 위협하는 여러 이단 사상들과 치열하게 논쟁하며 교회의 교리를 수호했습니다. 서기 410년, 마침내 로마시가 서고트족에게 함락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우리가 전통 신들을 버리고 기독교의 신을 섬겼기 때문에 이런 재앙이 닥쳤다!"라며 기독교를 비난했습니다.

바로 이 비난에 답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가장 위대한 저작인 《신국론(신의 도성)》을 집필했습니다. 이 책은 무려 13년에 걸쳐 완성된 방대한 작품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인류의 역사를 두 개의 '도성(도시)'이 투쟁하는 과정으로 설명했습니다. 하나의 도성은 지상의 도성 (The Earthly City)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세속적인 힘과 명예를 추구하는 나라입니다. (예: 로마 제국). 또 하나의 도성은 신의 도성 (The City of God)입니다. 신을 사랑하고 영원한 가치와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가 무너진 것은 기독교 때문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로마와 같은 '지상의 도성'은 원래부터 불완전하고 유한하기에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진정한 행복과 영원한 평화는 오직 '신의 도성'에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책은 기독교를 변호하는 것을 넘어, 이후 천 년간 서양 중세의 역사관과 정치 철학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책이 되었습니다.

 

천 년을 지배한 사상가

서기 430년,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침공하여 히포시를 포위했을 때, 그는 7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로마 제국의 종말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가 세운 사상의 도성은 이후 천 년의 중세 시대를 지배하는 가장 견고한 요새가 되었습니다. 그는 플라톤 철학을 기독교 신앙과 결합시켜 중세 철학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오늘날 아우구스티누스는 특정 종교를 넘어선 위대한 사상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나라는 존재의 내면을 깊이 탐구한 그의 《고백록》은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여겨지며, 오늘 날에도 변함없이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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