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기초, 신앙의 완성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신앙과 이성은 적이 아니라, 최고의 친구이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바로 이것입니다. 서로 싸우는 것처럼 보였던 신앙과 이성을 성공적으로 결합시켰습니다. 이 생각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그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자연이 무엇인가요? 이것은 인간의 이성을 뜻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며 경험하는 세계입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탐구했던 바로 그 영역입니다. 은총은 무엇인가요? 이것은 신앙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신의 영역입니다. 성경과 같은 신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세계입니다. 아퀴나스 이전의 많은 사람들은 이 두 세계가 서로 대립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퀴나스는 다르게 보았습니다.
그는 이성과 신앙이 결국 하나의 진리를 향해 가는 두 개의 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성(자연)은 기초 공사입니다. 우리는 이성을 통해 이 세상을 관찰합니다. 심지어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까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이성은 우리가 진리의 성(城)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튼튼한 길을 닦아줍니다. 신앙(은총)은 성의 완성입니다. 하지만 이성만으로는 신의 모든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 같은 신비는 이성만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한계를 뛰어넘어 성의 가장 깊은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신앙, 즉 은총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이성은 신앙을 위한 훌륭한 기초가 됩니다. 그리고 신앙은 이성이 닿지 못하는 더 높은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완성시킵니다.

삼위일체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매우 신비롭고 독특한 교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수학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1이 3이고, 3이 1이라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바로 기독교가 신을 이해하는 핵심 방식, 삼위일체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개념을 복잡하고 어렵게 느낍니다. 하지만 삼위일체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깊은 토대입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철저한 유일신 종교입니다. 신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이슬람교나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오직 하나의 절대자만을 섬깁니다. 이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대전제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 한 분의 신 안에 세 개의 구별되는 위격(Person) 이 존재한다고 고백합니다. 바로 성부, 성자(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입니다. 이 세 위격은 세 명의 다른 신이 아닙니다. 또한 한 신의 세 가지 다른 역할이나 가면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성부도 완전한 신, 성자도 완전한 신, 성령도 완전한 신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여러 비유를 사용했습니다.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은 세 잎 클로버를 예로 들었습니다. 잎은 세 개이지만, 결국 하나의 클로버라는 설명입니다. 혹은 물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물은 얼음(고체), 물(액체), 수증기(기체)라는 세 가지 상태로 존재하지만, 그 본질은 모두 H₂O로 같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비유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습니다. 세 잎 클로버는 각 잎이 클로버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하지만 삼위일체의 각 위격은 완전한 신입니다. 물의 비유는 한 존재가 시기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습니다(이것을 양태론이라 부르며, 교회는 이것을 정통 교리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삼위일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것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영원 전부터 서로 완벽한 사랑과 교제 속에 존재합니다. 그들은 하나의 신적 본질(본체)을 공유합니다. 하지만 각자의 역할은 구별됩니다.
성부는 주로 모든 것의 근원이자 창조와 계획으로 표현됩니다. 성자는 '말씀'이 되어 세상에 오신 분, 즉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성령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역사하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며, 신의 뜻을 깨닫게 하시는 분으로 설명됩니다. 하나의 신적인 생명이 세 가지 방식으로 존재하며, 완벽한 조화 속에서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삼위일체는 1+1+1=3이라는 산수 문제가 아닙니다. 차라리 1x1x1=1이라는 신비에 더 가깝습니다. 한 분의 신이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위격으로 영원히 존재한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통해 경험하는, 한 분 하나님의 다양하고 풍성한 모습을 설명하려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가 맹목적인 믿음의 대상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성적인 추론을 통해서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신학대전에서 다섯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에서 출발하여, 모든 것의 궁극적인 원인을 찾아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첫째, 움직임의 증명 (부동의 동자) 세상의 모든 것은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다른 것에 의해 시작됩니다. 이 연쇄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결국,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최초로 움직이게 한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 존재가 바로 신입니다. 둘째, 원인의 증명 (제1 원인)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이 원인의 원인을 계속 찾아 올라가면,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최초의 원인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 원인이 바로 신입니다.
셋째, 필연성의 증명 (필연적 존재) 세상의 모든 것은 존재하다가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이것을 가능적 존재라고 합니다.) 만약 모든 것이 이런 가능적 존재뿐이라면, 한때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아무것도 없어야 합니다.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반드시 존재하는 필연적 존재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 존재가 바로 신입니다. 넷째, 완전성의 증명 (완전성의 등급) 우리는 세상에서 더 좋음, 더 진실됨, 더 고귀함 같은 등급을 매깁니다. 이러한 더라는 비교의 기준이 되려면, 가장 완전하고 선한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완전함의 기준이 되는 그 존재가 바로 신입니다. 다섯째, 목적의 증명 (설계자) 지성이 없는 자연물조차도 어떤 목적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움직입니다(예: 식물이 해를 향해 자라는 것). 이렇게 세상 만물을 그들의 목적지로 이끄는 지적인 설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설계자가 바로 신입니다. 이 다섯 가지 길은 신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이성으로 이 세계를 관찰할 때, 그 모든 것의 궁극적인 근거로서 '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논증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네 종류의 법
아퀴나스는 인간 사회의 질서를 법이라는 개념으로 체계화했습니다. 그는 법을 위계질서에 따라 네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영원법. 가장 높은 법입니다. 이것은 신의 마음속에 있는 우주 전체의 질서이자 계획입니다. 우주를 다스리는 신의 이성 그 자체입니다. 오직 신만이 이 법을 완전히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자연법. 영원법 중에서, 인간이 자신의 이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자연법의 제1 원리는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성을 통해 생명을 보존하고, 진리를 찾으며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도덕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인간법. 각 국가나 사회가 만든 구체적인 실정법입니다. 자연법의 원리를 현실에 적용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자연법입니다. 이것을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처럼 구체적인 법으로 만든 것이 인간법입니다. 만약 인간법이 자연법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올바른 법이 아닙니다. 다섯째, 신법.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알 수 없는 법입니다. 신이 성경 등을 통해 직접 계시해 준 법입니다. 십계명이나 예수의 가르침이 여기에 속합니다. 신법은 자연법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며, 인간을 궁극적인 행복으로 이끌어 줍니다. 이 네 가지 법의 체계는 아퀴나스가 만든 위대한 설계도입니다. 신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가 어떻게 완벽하게 연결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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