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인간을 어린 시절의 상처에 얽매인 노예로 보았고,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신비로운 집단 무의식의 동굴을 탐험했었죠.

하지만 이제 만날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는 두 사람의 이론을 모두 부정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과거의 상처 따위는 없다! 모든 것은 당신 삶의 목적과 용기의 문제일 뿐이다!"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 2013>의 주인공이자, 상처 받은 현대인들에게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무기를 쥐여 주는 아들러의 생애를 알아 보겠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다음 글은 아들러의 시각으로 알아 봅니다.

형 지그문트의 그늘과 구두 수선공의 굴욕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인간을 과거의 트라우마에 지배 당하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위대한 창조자로 격상 시킨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의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입니다.
저는 1870년 2월 7일, 오스트리아 빈의 변두리에서 유대인 곡물 상인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 났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한마디로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 이었습니다. 저는 구루병에 걸려 뼈가 휘어지고, 4살이 되어서야 겨우 걸음마를 뗐습니다.

5살 때는 심한 폐렴에 걸려 의사가 아버지에게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게다가 길거리에서 마차에 치여 죽을 뻔한 적도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반면에 한 살 터울의 형은 아주 건강하고 똑똑했으며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하필 그렇게 잘난 형의 이름이 훗날 저와 평생을 싸우게 될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똑같은 지그문트였습니다. 병약하고 볼품없는 둘째 아들인 저는 매일 밤 형을 질투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에 수학을 너무나 못했습니다. 수학 선생님은 아버지를 학교로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프레드는 머리가 나빠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차라리 지금 당장 학교를 그만 두게 하고 구두 수선 기술이나 배우게 하시죠. 이런 모욕적인 굴욕은 저의 가슴에 깊은 열등감(Inferiority)의 낙인을 찍었습니다.
열등감을 분노의 에너지로 폭발시키다
하지만 저는 구두 수선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모욕적인 말씀은 오히려 저의 오기를 자극했습니다. 저는 밤을 새워 수학 문제를 풀고 또 풀었습니다. 놀랍게도 몇 달 뒤, 저는 반에서 수학 성적이 가장 뛰어난 학생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제 심리학의 뼈대가 됩니다. 인간의 열등감은 끔찍한 질병이 아니라, 엄청난 도약을 하도록 하는 강력한 에너지임을 저는 알았습니다.
저는 죽음의 문턱을 오갔던 어린 시절의 결핍을 동력 삼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 했습니다. 그리고 빈 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 하였으며 안과 및 내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나는 당신의 제자가 아닙니다
저는 1902년 부터 빈의 뒷골목에서 서민들을 치료하는 의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정신분석을 창시한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저명한 신문에 조롱을 받는 것을 보고, 저는 프로이트를 열렬히 옹호하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이에 감동한 프로이트는 저를 매주 수요일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수요 심리학 모임에 초대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프로이트의 제자인 줄 알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칼 융(Carl Jung)처럼 프로이트를 아버지로 모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동등한 동료이자 토론 파트너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갈등은 폭발 직전의 활화산 처럼 끓어 올랐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성적인 욕망(리비도)에서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서민들을 치료해 온 저의 눈에, 인간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성욕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가진 열등감을 극복하고, 타인보다 우월해 지려는 권력에 대한 의지로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1911년, 저는 프로이트 면전에 대고 선언했습니다. 당신의 이론은 낡았소. 인간은 과거의 성욕에 끌려 다니는 짐승이 아니오. 저는 불같이 화를 내는 프로이트를 뒤로하고 저를 따르는 학자들과 함께 학회를 영원히 떠났습니다.
참혹한 전쟁터에서 발견한 공동체 감각
저는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저의 이론을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여기서 개인은 이기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라틴어 인디비두움(Individuum: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온전한 하나)에서 온 말입니다.

즉, 프로이트처럼 마음을 자아, 초자아, 원초아로 쪼개지 말고, 인간을 스스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분리할 수 없는 온전한 전체로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저는 군의관으로 참전했습니다. 참호 속에서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뇌가 망가진 병사들의 참혹한 비명 소리를 들으며, 저는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인간이 타인과 협력하지 않고 서로 우월해 지려고만 경쟁한다면, 인류는 결국 파멸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요. 전쟁을 겪은 후에 저의 철학은 크게 발전 하였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열등감 극복을 넘어, 타인과 연대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 즉 사회적 관심(Social Interest, 공동체 감각)이야말로 인간 정신 건강의 궁극적인 기반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미국 대륙을 열광시킨 낙관주의자
저는 1920년대에 우울하고 침침한 분위기의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미국의 반응은 폭발적이 었습니다. 프로이트의 음침하고 과거 지향적인 이론에 지쳐있던 미국인들에게,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라고 외치는 저의 밝고 낙관적인 심리학은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 강연을 하며 세계적인 스타 학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1937년 5월 28일, 저는 스코틀랜드 애버딘(Aberdeen)에서 길을 걷던 중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에 저의 나이는 67세였습니다. 저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다음 강연을 위해 이동 중 이었습니다.
저는 볼품 없는 구루병 환자에 수학 낙제생 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삶을 통해, 인간이 조건에 지배 당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전 세계에 증명해 보였습니다.
천박한 수박 겉핥기라는 조롱과 꼬마 난쟁이
제가 살았던 당대의 지식인들과 학계가 저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하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주류 정신분석 학계에서 저는 오랫동안 이단아이자 프로이트를 등진 배신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융과 비슷한 대접을 받은 것이죠.

제가 인간의 성욕(리비도)을 부정하고 열등감과 목적론을 주장하며 학회를 떠났을 때, 프로이트와 그의 맹목적인 추종자들은 저를 향해 엄청난 저주와 조롱을 퍼부었습니다. 그들은 제 이론이 무의식의 깊고 어두운 심연을 보지 못하는 얄팍하고 천박한 수박 겉핥기 심리학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1937년 스코틀랜드에서 길을 걷다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소식을 들은 프로이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을 정도로 저를 증오했습니다. 꼬마 난쟁이(Pygmy)가 나보다 먼저 죽어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다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군.
하지만 고상한 서재에 틀어 박혀 있던 학자들의 비웃음과 달리, 당대의 대중들과 교육자들은 저에게 열광했습니다. 제 이론은 복잡하고 음침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교실에서 엇 나가는 아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가난과 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어떻게 희망을 품어야 할지를 알려 주는 아주 실용적인 학문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1920년대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과거의 노예가 되지 말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라는 제 철학은 진취적인 미국인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저는 수천 명을 몰고 다니는 당대 최고의 스타 강연자가 되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현대 심리학의 할아버지
제가 죽고 난 뒤에 심리 학계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수십 년이 흐른 현대에 이르러서야, 학자들은 깜짝 놀라며 저 알프레드 아들러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100년 전에 쏟아냈던 주장들이 현대 심리학의 가장 핵심적인 줄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대 심리 치료의 대세인 인지행동치료(CBT)를 아십니까? 일어난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반응을 결정한다는 현대적 치료법의 진짜 원조가 바로 저입니다.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과 긍정성을 강조하는 매슬로우(Maslow)나 칼 로저스(Carl Rogers)의 인본주의 심리학,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쓰는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의 뿌리 역시 모두 저의 개인심리학에서 출발했습니다. 학자들은 저를 가리켜 시대를 너무 일찍 앞서 간 비운의 천재, 현대 심리 치료의 진정한 할아버지라며 뒤늦은 헌사를 바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왜 아들러를 부르는가?
무엇보다 가장 감격스러운 평가는 바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여러분, 대중의 평가입니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저의 철학을 담은 책 <미움 받을 용기>가 수백만 부가 팔리며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의 사람들이 왜 저를 찾을까요? 타인과 자신을 끊임 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끔찍한 SNS의 홍수 속에서, 인정 욕구의 노예가 되어 우울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저의 철학만큼 완벽한 해독제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학계의 고상한 평가나 타이틀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의 유일한 목적은 단 하나, 절망에 빠진 한 명의 인간이 과거의 사슬을 끊고 다시 일어 설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변할 수 있다. 세계는 단순하다. 누구든 행복해 질 수 있다. 이처럼 단순한 진리가 10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여러분의 멍든 가슴을 다시 뛰게 하고 있다면, 구두 수선공이 될 뻔 했던 저 아들러의 삶은 그 것 만으로도 이미 눈부시게 성공한 것입니다.
'행복 만들기 > 마음과 관계 속의 행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심리학 여행 제10편] 아들러 철학에 담긴 행복론 : 불완전할 용기 (0) | 2026.07.02 |
|---|---|
| [심리학 여행 제10편]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 : 원인론은 거짓말이다 (1) | 2026.07.01 |
| [심리학 여행 제9편] 융이 전하는 행복 메시지 : 당신의 그림자를 수용하자 (0) | 2026.06.29 |
| [심리학 여행 제9편] 융의 심리학에 담긴 행복론 : 개성화의 기적 (0) | 2026.06.28 |
| [심리학 여행 제9편] 융 심리학의 핵심 : 인류의 지혜가 담긴 집단 무의식 (2) | 2026.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