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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들뢰즈가 전하는 행복 메시지 : 너만의 사막을 미친 듯이 질주하라

by 행복 리부트 2026. 4. 29.

나는 돌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다. 나는 먼 나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마음만큼은 한국의 골목길을 걷는 사람처럼,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은 사람처럼, 새벽 편의점 불빛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당신 곁에 서 있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한국의 삶은 빠르다. 빠르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숨이 차고 때로는 마음이 따라가지 못한다. 가끔은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도 찾아온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잘 안다. 그런 순간이 바로 흐름(flow)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흐름은 고여 있다가도 다시 흘러간다. 당신이 지금 지쳐 있다면 그건 당신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는 증거다.

흐름 : 한강과 계절처럼 당신도 흐르고 있다

한국에는 흐름(flow)을 설명하기에 좋은 풍경이 많다. 한강이 그렇고, 사계절이 그렇고, 출근길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렇다.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흐름은 형태가 없다. 흐름은 이래야 한다는 수목형의 틀을 거부한다.

 

나에게 흐름(flow)은 단순한 물리적 흐름이 아니다. 나는 흐름을 존재의 방식, 세계의 움직임, 욕망의 에너지, 그리고 사회·정치·경제·심리적 움직임까지 포함하는 아주 넓은 개념으로 사용했다.

흐름은 형태가 없다.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흐름은 계속 변한다. 흐름은 단순히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생산하는 힘이다. 생산이 바로 흐름이다. 삶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흔들리고 움직인다. 그러한 전체가 흐름이다.

나는 인간, 사회, 세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나는 정체성(identity)보다 되기(becoming)를 강조했다. 흐름은 바로 되기의 원동력이다.

 

흐름이 멈추면 삶도 멈춘다. 우울, 무기력, 고립감은 흐름이 막힌 상태다. 흐름이 다시 열리면 삶이 다시 움직인다. 작은 변화와 작은 감각, 작은 선택이 흐름을 다시 연다.

흐름은 세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먼저 흐름은 연결(connection)된다.  흐름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흐름은 다른 흐름과 연결된다. 예를 들면, 욕망의 흐름과 사회의 흐름, 개인의 흐름과 타인의 흐름, 감정의 흐름과 몸의 흐름처럼 연결이 이루어 진다. 이러한 연결이 접속(connection)이다.

 

흐름은 절단(cutting)된다. 흐름은 계속 흐르지만 어떤 지점에서 잘리기도 한다. 사회적 규범, 억압, 트라우마, 피로, 책임과도 같은 것들이 흐름을 막는다. 하지만 흐름은 재구성(reconnection)된다. 흐름은 막혀도 다른 방향으로 다시 흐른다. 이것이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 개념이다. 막힌 흐름이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한국 나라의 삶은 빠르고 복잡하고 변화가 많다. 직장 이동, 관계 변화, 사회적 압박, 감정의 기복, 빠른 기술 변화, 치열한 경쟁이 흐름을 만들고, 흐름을 막고, 흐름을 다시 열게 한다. 그래서 나의 흐름 개념은 한국인의 삶을 설명하는 데 놀라울 만큼 잘 맞는다. 

 

우리는 흐름을 억지로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 흐름은 통제 대상이 아니라 함께 움직일 대상이다. 흐름이 막혔다고 자책하지도 말아라. 흐름은 막히는 것이 자연스럽다. 중요한 건 다시 흐르게 하는 작은 움직임이다.

당신의 작은 변화가 흐름을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5분 산책, 아메리카노의 향기, 창밖을 의미없이 바라 보기, 심호흡  한 번 하고 새로운 길로 걸어보는 것처럼 작은 움직임이 흐름을 다시 연다. 흐름은 나답게 살아가는 힘이다. 흐름은 남이 정한 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힘이다.

욕망 : 결핍이 아니라 살아보려는 힘

나는 욕망(desire) 을 결핍으로 보지 않는다. 욕망은 부족한 결핍을 메꾸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욕망은 살아보려는 힘에서 나온다. 한국 사람들은 욕망을 말할 때 종종 죄책감을 느낀다. 욕심이 많은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원하는 걸까? 이처럼 욕망하는 것을 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확실하게 말한다. 욕망은 결핍도 흉도 아니고 생성의 힘이다.

욕망은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욕망은 당신을 살아 있게 한다. 욕망은 당신을 다시 흐르게 한다. 욕망이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 당신이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건 당신 안의 힘이 아직 다 쓰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욕망은 당신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욕망은 당신을 생성한다. 한국인의 욕망은 특히 뜨겁다. 가족을 위해, 미래를 위해, 자신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려는 마음이 바로 욕망이다.

되기 : 완성된 사람은 없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완성된 사람을 좋아한다.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스펙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단 한번도 인간을 완성된 존재로 본 적이 없다. 인간은 늘 되어가는 존재, 즉 되기(becoming)의 존재다.

되기는 거창한 변신을 의미하는 것이 결단코 아니다. 되기는 작은 균열이다. 그런 작은 균열이 삶을 바꾼다. 오늘 10분 산책을 시작하는 것, 퇴근 후 잠시 동안 명상에 잠기거나 유익한 글을 한편 읽는것, 아침 햇빛을 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것 처럼 사소한 움직임이 바로 되기이다.

한국의 삶은 빠르다. 그러니 더더욱 작은 되기가 필요하다. 작은 되기가 당신을 다시 흐르게 한다. 되기는 나를 바꾸겠다는 선언으로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오늘 조금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작은 선택이면 충분하다. 그 작은 선택이 당신의 삶을 다시 열어 주고 흐르게 한다.

사건 :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감각의 순간

내가 말하는 사건(event)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큰 일이나 특별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은 감각의 순간, 즉 삶이 잠깐 열리는 틈이다.  퇴근길에 문득 들리는 기차 지나 가는 소리, 겨울 아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 향기, 비 오는 날 젖은 흙 냄새, 밤하늘에 뜬 달빛들이  모두 사건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왜 이런 사소한 감각이 사건인가? 그게 왜 중요한가? 우리는 그걸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하는가? 이제 질문에 대한 답을 차근차근 말해 보겠다.

 

사건은 삶이 잠깐 멈추고 새로운 감각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순간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날,  늘 걷던  퇴근길인데 갑자기 거리와 바람과 향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그런 순간이 되면 당신의 마음이 잠깐 멈춘다.

 

멈춤 속에서 당신은 아, 내가 살아 있구나라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이게 바로 사건이다. 사건은 당신의 일상을 깨우는 작은 충격이다. 아주 미세한 흔들림이지만 그 흔들림이 삶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사건은 나를 다시 느끼게 하는 감각의 회복이다. 사람은 바쁘면 감각이 무뎌진다. 한국의 삶은 특히 그렇다. 출근, 업무, 책임, 관계, 미래 걱정 등이 감각을 닫게 한다. 감각이 닫히면 삶은 평면처럼 무미 건조해 진다. 색이 사라지고, 맛이 사라지고, 시간이 흘러 가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사건은 닫힌 감각을 다시 열게 만든다. 붕어빵 냄새 하나가 당신의 닫혀 있던 감각을 열어 준다. 내리는 비가 만드는 냄새 하나가 당신의 기억을 흔들어 깨운다. 달빛 하나가 당신의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당신은 그러한 순간에 다시 살아 있는 자신을 느낀다. 이것이 사건의 힘이다.

사건은 삶의 입체감을 되찾는 순간이다. 사건을 느끼면 삶은 평면이 아니고 입체가 된다. 입체란 무엇인가? 삶이 깊이를 갖는다는 뜻이다. 평면처럼 흘러가던 하루가 갑자기 깊이를 갖게 된다. 퇴근길에 들은 기차 소리가 당신의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면 그 순간 하루는 단순한 일과가 아닌 느껴진 하루가 된다. 사건은 삶을 다시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사건은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작은 문이다. 당신은 사건을 느끼는 순간에 잠시 멈추고, 멈춤 속에서 새로운 생각, 새로운 기분, 새로운 선택이 들어온다. 비 냄새를 맡는 순간에 문득 오늘은 빗속을 조금 천천히 걸어볼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커피숍 창가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갈 수도 있다. 사건은 새로운 삶을 다시 열어주는 작은 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는 사건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사건은 억지로 만들 수 없다. 사건은 느끼는 것이다. 사건을 느끼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속도를 잠시 늦추는 거다. 잠깐 멈추면 사건이 들어올 틈이 생긴다. 감각을 열어 둔다.

 

바람, 냄새, 소리, 빛 같은 것들을 의식적으로 느껴보라. 일상 속 작은 순간을 존중한다. 사건은 거창한 곳뿐이 아닌 늘 당신 곁에 있다. 감각이 흔들릴 때 흔들림을 붙잡는다. 흔들림이 바로 당신의 삶을 다시 여는 문이다.

우리들의 일상은 바쁘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사건이 숨어 있다. 사건을 느끼는 순간에 삶은 다시 살아난다. 여유란 시간을 비우는 것이 아니고 사건을 느끼는 감각을 되찾는 것이다. 감각이 돌아오면 삶은 다시 입체가 된다. 그리고 입체감 속에서 당신은 다시 흐르게 된다.

리좀 : 한국인의 삶은 이미 리좀적이다

리좀(rhizome)은 중심 없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식물 구조다. 나는 <천개의 고원, A Thousand Plateaus, 1980>에서 리좀을 삶의 방식으로 설명했다. 한국인의 삶은 이미 리좀적이다. 하나의 길만 걷지 않는다. 직장인인데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공무원인데 밴드 활동을 하기도 하고, 회사 다니면서 유튜브를 하기도 한다.

 

리좀적 삶은 나는 하나의 모습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삶이다. 한국의 당신은 이미 리좀처럼 여러 방향으로 뻗어가고 있다. 리좀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리좀은 확장을 요구한다. 당신의 삶도 확장될 수 있다. 당신의 정체성도 확장될 수 있다.

접속과 배치: 삶은 연결될 때 더 강해진다

한국 사회는 관계의 힘이 크다. 가족, 친구, 동료, 지연,학연, 군연(軍緣) 들처럼 관계들이 서로 연결될 때 삶은 더 풍부해진다. 하지만 그들 만의 끼리끼리 문화는 달갑지 않다. 여기서는 끼리 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세계를 사물들의 집합으로 보지 않는다. 나는 세계를 접속(connection)배치(agencement)로 본다. 접속이란 서로 다른 것들이 연결되는 순간이다. 배치란 그 연결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다.

당신의 취미, 당신의 일, 당신의 인간관계, 당신의 감정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하면 그 연결이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삶은 혼자 존재할 때보다 연결될 때 더욱 풍성하고, 흥미로우며, 행복감을 느끼고 강해진다.

유목민: 한국적 유목은 마음의 이동이다

여기서 유목민(nomad)은 땅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목민은 고정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사람이다. 한국의 유목은 지리적 이동보다 마음의 이동에 가깝다.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유목민의 생각이다.

유목민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당신은 유목민인가? 당신도 유목민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된다. 그러한 벗어남이 새로운 길을 만든다.

탈주선 : 탈주는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길

나는 변화의 순간을 탈주(line of flight)라고 불렀다. 탈주선은 도망이 아니다. 탈주선은 새로운 길을 만드는 힘이다.

우리의 탈주는 모든 걸 버리고 떠난다가 아니다. 우리의 탈주는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길을 만든다에 가깝다.

오늘 하루를 버틴 것도 탈주다. 내일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것도 탈주다. 나를 괴롭히는 것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도 탈주다. 탈주는 현실을 버리는 게 아니고 현실을 다시 구성하는 힘이다. 당신이 이미 탈주선을 그리고 있다면 그 선은 당신만의 길이 된다.

당신은 멈춘 것이 아니다. 당신은 흐르고 있다. 당신의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힘이다. 당신의 삶은 사건으로 가득하다. 당신은 리좀처럼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은 유목민처럼 새로운 길을 만들 수도 있다. 당신은 언제든 탈주선을 그릴 수 있다.

여러분의 삶은 빠르고 치열하지만 그 속에서도 당신은 계속 살아가고 있다. 그런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대단하다. 비록 지금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드라도 당신의 길은 수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삶은 리좀처럼 언제든 다시 열린다. 나는 그 사실을 믿는다. 그리고 나는 사건을 만들며 접속과 배치를 통해 당신이 삶이 다시 흐르기를 바란다. 나는 진심으로 여러분이 행복하길 바란다. 여러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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