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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들뢰즈 철학에 담긴 행복 : 세상과 접속하고 천 개의 고원을 창조하라

by 행복 리부트 2026. 4. 28.

행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기분이 좋다, 즐겁다 같은 감정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행복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였죠.

그에게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삶의 힘이 확장되는 과정, 즉 내가 더욱 잘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말합니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는 느낌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존재의 힘이 커지는 순간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말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많이 있습니다. 한 직장인은 퇴근 후 취미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손가락이 아프고 코드가 잘 잡히지 않았지만,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완주하였습니다. 그 순간에 그는 이렇게 느끼죠. 아~~나는 열심히 살고 있구나~~ 이런 느낌이 들뢰즈가 말하는 존재의 힘이 커지는 순간이고 삶이 확정되는 과정이며 행복의 순간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 넓어지며 마음이 밝아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한 대화는 그냥 느끼는 즐거움이 아니라 사유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과도 같습니다.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다 보면 몸이 가벼워지고 에너지가 살아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들뢰즈가 말하는 행복의 한 형태이죠. 그가 말하는 행복은 감정의 파도가 아니라 내 안의 힘이 커지는 순간들입니다.

들뢰즈가 말하는 능력의 증가란 무엇인가

들뢰즈는 행복을 능력의 증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시험 잘 보기, 돈 많이 벌기 같은 능력을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능력은 더 많이 느끼는 능력, 더 많이 연결되는 능력, 더 많이 시도하는 능력, 더 많이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자신의 삶이 더 넓어지는 힘 같은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하던 습관을 바꿔 다른 길로 걸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길에서 새로운 카페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취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런 작은 변화가 그의 삶을 더 넓힌 것입니다. 들뢰즈의 말대로 하면 능력이 증가한 순간입니다.

스피노자와 들뢰즈: 기쁨은 능력이 커지는 경험

들뢰즈의 행복론은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출발합니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하나는 기쁨(joy)이죠. 존재 능력이 증가하는 상태입니다. 다른 하나의 감정은 슬픔(sadness)입니다. 존재 능력이 감소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스피노자에게 기쁨은 내가 더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이러한 개념을 더욱 확장시킵니다. 그에게 기쁨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동하는 힘, 즉 되기(becoming)의 에너지를 말합니다. 디자이너는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왜 같은 스타일만 고집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색감과 새로운 도구를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디자인을 발견하였습니다. 디자이너는 이 순간에 새로운 과정을 경험한 것이죠. 들뢰즈의 행복은 이런 새로운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꾸만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고정된 명사(Being)로 규정합니다. 나는 능력이 딸려, 나는 못난 놈이야, 나는 끈기가 약해, 혹은 반대로 나는 승부를 즐겨, 나는 능력자야 처럼 말이죠.

 

하지만 들뢰즈의 생각은 다릅니다. "인간은 결코 완성된 조각상이 아니다.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로 변화하고 있는 과정 그 자체다! 이것이 들뢰즈 철학의 핵심인 생성(Becoming)입니다.

행복은 완성이 아니라 확장입니다. 들뢰즈에게 행복은 목표를 달성해서 얻는 보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의 행복은 과정에 있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움직일 때, 어제보다 가능성이 조금 더 열려 있을 때, 더 많은 환경 및 관계와 연결하는 순간이 바로 행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완벽한 영어 실력을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완벽함은 끝이 없는 것이죠. 그러다 그는 목표를 바꿨습니다. 영어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으로 말이죠. 그런 순간에 영어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삶을 확장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행복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어제 실패하였다고 해서 오늘부터 당신이 실패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오늘 아침 좋은 책 한 구절을 읽고(접속), 길을 걷다 따뜻한 봄바람을 맞고, 누군가에게 다정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순간에 당신은 어제의 우울했던 사람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생성되고 있습니다. 당신은 마침표가 찍힌 명사가 아닙니다. 살아서 펄떡이는 끝없이 현재 진행형으로 변화하는 위대한 동사입니다.

라캉과 들뢰즈: 결핍의 욕망 vs. 생산의 욕망

라캉과 들뢰즈가 바라보는 욕망은 서로 다르지만 다음 두 가지 점에서는 분명한 공통점을 있습니다. ① 욕망은 인간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다. 둘은 욕망을 단순한 감정이나 충동이 아니라 주체를 구성하고 세계와 관계 맺게 하는 힘으로 봅니다.

 

② 욕망은 의식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작동한다. 라캉은 무의식의 구조 속에서, 들뢰즈는 신체·사물·환경과의 연결 속에서 욕망이 작동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욕망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는 점에서는 두 철학자의 생각이 같습니다.

두 철학자가 바라보는 욕망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라캉은 욕망이 결핍에서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욕망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한다는 생각입니다. 라캉에게 욕망은 항상 부족함에서 출발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온전한 자아를 갖지 못하고, 언어와 사회(상징계)에 들어가면서 더 많은 결핍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라캉 욕망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욕망은 결핍의 산물입니다. 욕망은 타자의 욕망을 따라갑니다. 욕망은 완전히 충족될 수 없습니다.욕망은 늘 대체물을 찾아 이동합니다. 그의 욕망은 언제나 타자의 욕망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들뢰즈가 바라 본 욕망은 생산하는 힘입니다. 욕망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넘쳐서 흐른다고 그는 보았습니다. 들뢰즈에게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생산(production)인 것이죠. 욕망은 세계를 만들고,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인 것입니다.

들뢰즈 욕망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욕망은 생산적 에너지이다. 욕망은 새로운 연결을 만든다. 즉 배치를 달리 하는 것이죠. 욕망은 흐름(flow)이며 막히면 병이 된다.욕망은 충족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나는 저걸 하고 싶다. 왜냐하면 뭔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욕망을 창조적 흐름으로 보았습니다.

두 철학자의 이러한 차이는 철학적 논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행복, 주체성, 삶의 방식을 완전히 다르게 만듭니다. 라캉적 삶은 나는 늘 부족하다. 그래서 욕망한다는 것입니다. 즉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순환입니다.

 

들뢰즈적 삶은 나는 더 연결되고, 더 생성하고, 더 잘 살아진다는 것입니다. 즉 욕망은 삶을 확장하는 힘이죠. 들뢰즈의 행복론이 능력의 증가를 강조하는 이유도 생산적 욕망의 개념 때문입니다.

 

내재성의 삶: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삶을 긍정하는 힘

들뢰즈는 내재성의 삶을 강조합니다. 이 말은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간단합니다. 자신의 삶을 남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 긍정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자신에 대한 자책을 멈추고 자신을 둘러싼 배치를 바꾸어 보세요.

 

우리는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 흔히 자책합니다. 때로는 못난 자신을 경멸하기도 하죠. 하지만 들뢰즈는 우리 마음의 문제가 내면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맺고 있는 배치(Agencement)의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배치는 어떤 사람, 어떤 환경, 어떤 물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의미합니다.

화분에 심은 식물이 시들어가면 우리는 이 식물은 태생이 글러 먹었어라며 비난하지 않습니다. 화분의 위치(배치)를  햇빛이 잘 드는 창가로  옮겨줄 뿐입니다. 인간도 똑같습니다.

 

 

한 직장인은 늘 좋은 회사, 좋은 연봉이라는 기준에 맞춰 살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조금 덜 안정적이지만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끼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그러한 선택은 남의 기준이 아닌 자기 기준에서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 본 순간이 만든 것이죠. 그리고 배치를 바꾼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불행하다면 당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폭력적인 관계, 억압적인 직장, 자존감을 갉아먹는 나쁜 습관들과 잘못된 방식으로 접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은 아주 간단합니다. 당장 잘못된 접속을 끊어버리고 새로운 배치를 해보세요.

나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내 상처를 보듬어 주고 힘을 주는 사람들과 새롭게 접속하십시오. 방구석에 누워 과거를 후회하는 접속을 끊고 밖으로 나가 싱그러운 자연과 접속하십시오. 나를 둘러싼 배치를 바꾸는 순간, 당신의 내면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는 기적처럼 다시 솟아 오릅니다.

가장 무해하고 눈부신 생명력, 동물되기

들뢰즈는 우리가 사회의 억압적인 규율에서 벗어나 아주 매력적인 방법으로 동물되기(Becoming-animal)를 제안합니다. 진짜 동물이 되라는 뜻은 아니죠. 동물이 가진 얽매임 없는 야생성과 직관적인 생명력을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집안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떠올려 보세요. 강아지들은 내가 어제 주인을 화나게 했는데 어떡하지?(과거의 후회), 내일 산책을 못 나가면 어떡하지?(미래의 불안)라는 복잡하고 우울한 망상에 빠지지 않습니다. 녀석들은 그저 지금 내 코앞에 있는 간식, 따뜻한 햇살, 주인의 보드라운 손길의 완벽한 현재에 접속하여 온몸으로 기쁨을 터뜨립니다.

우리가 반려견의 털을 쓰다듬으며 아무 조건 없이 웃음 지을 때, 들뢰즈가 말한 동물되기의 경지에 접속되는 것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고상하고 완벽한 인간이 되려다 상처받지는 마십시오. 때로는 강아지들처럼 꼬리를 흔들고 잔디밭을 뒹굴며 자신의 감정과 본능에 접속하는 순간에 엉망진창인 우리 삶을 구원할 수도 있습니다.

에베레스트는 없다. 천 개의 고원에서 너만의 춤을 춰라

들뢰즈의 행복론은 현대인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줍니다. 나를 약하게 만드는 관계에서 벗어나기,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경험을 선택하기,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삶을 긍정하기, 욕망을 억압하지 말고 생산적 흐름으로 전환하기, 완성보다 확장을 선택하기 등입니다. 행복은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에베레스트산 같은 단 하나의 정상만 보여줍니다. 이 산의 정상(돈, 명예, 번듯한 직장)에 올라야만 성공한 거야 라며 모두를 똑같은 길로 몰아넣습니다. 그래서 정상에 오르지 못하거나 중간에 미끄러진 사람들은 평생 패배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함께 쓴 명저, <천 개의 고원, A Thousand Plateaus, 1980>이 있습니다. 들뢰즈는 세상이 하나의 뾰족한 산봉우리가 아니라 끝없이 넓게 펼쳐진 천 개의 다채로운 고원이라고 말합니다.

남들이 다 가는 뻔하고 숨 막히는 중심부의 정상을 반드시 오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굳이 1등이 되지 않아도, 굳이 세상이 말하는 정상인의 잣대에 맞추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발을 딛고 선 바로 그 곳, 당신의 독특한 결핍과 상처가 만들어낸 거칠고 투박한 땅 위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친 듯이 몰입하면 됩니다.

 

당신은 남들의 하나의 정상을 오르는 대신, 당신 인생에 단 하나뿐인 새로운 고원을 창조해 낸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세상의 잣대가 없습니다. 당신이 중심이고 당신이 곧 축제입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기쁨을 무한히 생산해 내는 공장

질 들뢰즈에게 욕망은 넘쳐 흐르는 에너지로 끝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 기계입니다. 우리는 남의 눈치를 보며 남들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돈 주고 사는 소비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가진 상처와 고통의 과거,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기쁨들을 재료로 삼아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투박한 행복을 직접 만들어 내는 제작자이며 기계들입니다.

들뢰즈는 행복을 위한 솔루션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행복은 내면의 힘이 커지고, 자신의 삶이 더욱 확장되고,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생각, 잘 살아가는 성장의 힘을 느끼는 과정입니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 완성이 아니라 확장, 결핍이 아니라 생산의 순간에 있습니다.

이제 현재를 옥죄는 과거의 상처에서 걸어 나와 당신의 엔진에 시동을 걸어 보세요. 당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나쁜 접속들과는 이별을 고하고, 좋은 환경과 대상, 다정한 사람들, 시원한 밤공기의 새로움과 접속하며 당신만의 행복을 만들어 보세요. 세상 모든 것과 접속하여 끝없이 변화하고 진동하는 당신의 삶 전체가 세상에서 빛나는 천 개의 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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