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자신의 성격이나 습관이 타고난 기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자 에릭 번(Eric Berne)은 교류분석 이론을 통해, 우리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한 인생 각본(Life Script)을 성인이 되어서도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고 설명합니다.

과거에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성인이 된 자신을 조종하여 익숙하지만 파괴적인 연극을 계속하게 만듭니다. 몸은 30대 40대가 되었지만 스트레스 상황이 닥치면 5살 아이의 대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반복해서 겪는 불행의 실체입니다.
관계의 양면성, 집착과 회피
내면 아이의 상처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인간관계, 특히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입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상반된 유형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유기 불안에 시달리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결핍을 타인에게서 채우려 합니다. 연인의 사소한 연락 두절에도 나를 버리는 게 아닐까라는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집착하거나 매달립니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주인공 마츠코는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갈구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에게조차 맹목적으로 헌신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사랑이 아니라 유기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둘째는 관계 회피 유형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침해당하거나 거부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미리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겉으로는 독립적이고 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친밀감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감정 조절의 실패, 폭발하거나 마비되거나
사소한 일에 불같이 화를 내고 나서 내가 왜 그랬지라며 후회한 적이 있나요? 이는 현재의 사건이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분노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퇴행(Regression)이라고 부릅니다. 직장 상사의 가벼운 지적에도 과거 자신을 비난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겹쳐지며 과도한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해리(Dissociation) 현상도 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감정의 스위치를 꺼버립니다. 성인이 된 후 이들은 슬픈 상황에서도 울지 못하고 기쁜 상황에서도 무덤덤합니다. 감정의 마비는 고통을 차단해주지만 동시에 생동감과 행복까지 차단해 버립니다.
자기 파괴적 중독과 강박
내면 아이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종종 외부의 자극에 의존합니다. 알코올, 도박, 쇼핑, 그리고 현대인에게 흔한 일 중독(Workaholic)이 대표적입니다. 존 브래드쇼는 중독을 고통스러운 감정을 회피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했습니다. 술에 취하거나 일에 몰두하는 순간만큼은 내면의 수치심과 외로움을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주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내면 아이의 믿음은 쉴 새 없이 자신을 몰아세우는 강박으로 이어집니다. 겉으로는 성실해 보이지만 내면은 휴식을 죄악시하며 스스로를 소진(Burnout)시키고 맙니다.
투사, 내 안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덮어씌우기
가장 경계해야 할 방어기제는 투사(Projection)입니다. 이는 자신이 인정하기 싫은 내면의 모습을 타인에게서 발견하고 비난하는 심리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의존적인 내면 아이를 억압한 사람은 의존적인 동료를 볼 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또 권위적인 부모에게 분노를 품었던 사람은 권위를 가진 상사나 선생님을 이유 없이 적대시하기도 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고 타인을 비난하기 전에 그 모습이 내 안에 억눌린 아이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투사를 거두지 않으면 우리는 타인과 끊임없이 갈등하며 세상을 전쟁터로 만들게 됩니다.
나의 방어기제 확인하기. 어린 시절의 상처와 독성 수치심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라는 갑옷을 입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 갑옷을 벗지 못하면, 오히려 이것이 우리를 짓누르는 파괴적인 행동 패턴이 됩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있나요? 아래 세 가지 유형 중 나에게 해당되는 질문은 무엇인지 잠시 멈춰 생각해보세요.
①폭발형 (The Exploder). 평소엔 한없이 착해 보이지만, 한순간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유형을 말합니다. 참고 참다가 사소한 일에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어 주변을 당황하게 하나요? 밖에서는 친절하지만, 가장 가깝고 편한 가족이나 배우자에게 감정을 쏟아붓나요? 화를 낸 뒤에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깊은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리나요?
②회피형 (The Avoider). 갈등이 생기면 입을 닫거나 상황 자체를 외면해버리는 유형입니다. 상대방과 불편한 대화가 시작될 것 같으면 침묵하거나 자리를 피하고 싶나요? 내 속마음을 말하는 것이 공격받는 것처럼 느껴져 아예 감정을 차단해버리나요? "다 괜찮아", "상관없어"라는 말로 문제를 덮어두는 것이 가장 편안한가요?
③완벽주의형 (The Perfectionist). 타인의 비난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완벽함에 집착하는 유형을 말합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불편함을 느끼나요? 사람들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나요? 내가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유능해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나요?

행복으로 가는 길목의 장애물
이러한 파괴적 각본들은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 곁에 있어도 의심하고 아무리 큰 성취를 이뤄도 불안해한다면 행복은 머물 수 없습니다. 이번 섹터에서 우리는 자신의 반복되는 행동 패턴을 직시했습니다. 이 과정이 다소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진단이 정확해야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무의식적인 반응을 멈추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제 문제의 원인과 증상을 알았습니다. 다음 제4부에서는 내면아이의 영향으로 성인인데도 아이처럼 책임을 두려워 하는 사람, 피터팬 증후군을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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