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날이었습니다. 업무는 평소와 다름 없었고 점심은 적당히 맛있었습니다. 동료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퇴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슬프지도 않는 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기도 하고 묵직한 돌덩이가 얹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저만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많은 성인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우울감에 시달립니다. 분명 몸은 어른입니다. 누군가의 부모이고 회사에서는 중견 간부입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나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내면 아이(Inner Child)라고 부릅니다. 내면아이가 자신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죠.
내면 아이는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말한 아동 원형(archetype)에서 시작된 개념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박제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감정의 집합체가 들어 있습니다. 몸은 자랐지만, 마음의 시계가 특정 시점에 멈춰버린 아이가 우리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수시로 당신에게 말을 하고 싶어 합니다.
이 개념을 대중화시킨 심리학자 존 브래드쇼(John Bradshaw)는 저서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Homecoming)>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성장이 멈춘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적절한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했을 때, 그는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되어 성인의 삶을 지배한다." 즉, 내면 아이는 우리의 인격 중 가장 생동감 넘치고 창조적인 부분이지만, 동시에 과거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보여주는 위로의 본질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조용히 서로를 치유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가난과 빚, 폭력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이지안(아이유)과 회사와 가정에서 모두 지쳐 있는 중년의 직장인 박동훈(이선균)이 우연히 얽히면서, 서로의 고통을 알아보고 묵묵히 곁을 지키며 삶을 버틸 힘을 찾아가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박동훈이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건물을 지탱하는 힘인 내력이 부족하면 건물이 무너지듯,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극 중 지안은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상처를 입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입니다. 반면 동훈은 성실한 어른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착한 아들이어야 한다는 압박에 짓눌린 아이가 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로의 내면에 있는 상처 입은 아이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동훈이 지안에게 "내, 너를 안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상황을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아픈 아이가 네 안의 아픈 아이를 알아봤다는 깊은 공감의 표현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연재를 통해 하려는 작업도 이와 같습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그 아이를 발견하고, 그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지안이가 동훈의 위로를 통해 비로소 숨을 쉬게 되었듯이 우리도 우리 안의 아이를 위로해야 합니다. 그래야 멈춰있던 우리 삶의 내력이 다시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사소한 사건에 폭발하는 어른의 비밀
어느 마흔 살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는 평소 온화한 성격으로 평판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저녁 메뉴를 묻지 않고 요리를 했다는 이유로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아내는 당황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부인의 말에 화를 낸 남편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무시당했다는 느낌만 들 뿐입니다.

남편은 상담을 통해 분노의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화를 낸 대상은 아내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였습니다. 어린 시절 방치된 채 홀로 식사해야 했던 그에게 메뉴를 묻는 행위는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받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아내가 메뉴를 묻지 않고 요리를 한 순간, 그의 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소외감이 불쑥 튀어 올라 온 것입니다. 그는 아내의 행동에서 무시당한 감정을 느낀 것입니다.
지금 화를 내고 있는 것은 마흔 살의 남자가 아니죠. 여전히 식탁에서 부모를 기다리며 서러워하던 다섯 살의 아이입니다. 이처럼 성인이 된 후 겪는 대부분의 감정적 충돌은 현재의 사건 때문이 아닙니다. 과거에 처리되지 못한 내면 아이의 구조 신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호를 알고 치유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의 열쇠는 내면아이가 쥐고 있다.
우리는 돈을 벌고, 성취를 이루고, 좋은 집을 삽니다.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마음이 불편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내 안의 아이가 울고 있다면 화려한 성공을 거두어도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다 가졌는데도 행복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답은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상처입은 내면아이의 작용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떠날 여정
내안의 우는 아이 연재는 총 6개의 섹터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먼저 내면 아이가 무엇인지 알려드립니다. 그 후 우리 마음에 상처가 생긴 어린 시절의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가 왜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내면아이는 상처입은 모습의 아이입니다. 상처입은 당시의 나이에서 성장이 멈추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릇없는 어른이나 피터팬 증후군에 대해서도 다룰 것입니다. 어떤 어른들은 아이처럼 굴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지 그분들 내면의 결핍을 분석해 봅니다. 마지막으로는 상처받은 아이를 스스로 재양육(Reparenting)하여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입니다.
이 여정은 쉽지 않습니다. 묻어두었던 아픈 기억을 꺼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내 안의 아이와 화해하는 순간, 당신은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는 용기
영화 <굿 윌 헌팅>에는 알려진 대사가 있습니다. 심리 상담가 숀이 천재 소년 윌에게 계속해서 말합니다.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니야)." 윌은 처음엔 화를 내고 부정하지만 결국 숀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오열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 한마디입니다. 우리가 겪었던 아픔, 우리가 만들어낸 방어기제, 우리가 저지른 실수들,그것들의 근원을 따라가 보면 결국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의 몸부림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스스로에게 그 말을 해줄 차례입니다.

이번의 연재가 여러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아이를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조심스럽게 그 아이가 머물고 있는, 시간이 멈춘 내면아이의 방문을 열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저도 끝까지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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