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성격 말이죠? 제 주변을 보면 진짜 맞아요. 제 친구 철수는 B형인데 진짜 다혈질이거든요. 지난 1부에서 우리는 세계의 통계와 연구 결과를 통해 혈액형 성격설이 허구임을 확인했습니다. O형만 사는 나라에도 소심한 사람과 급한 사람은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많은 사람이 경험적으로 혈액형이 맞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혈액형이 맞는 게 아니라, 우리의 뇌가 착각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뇌가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뇌가 하는 세 가지의 착각이 무엇인지 알아 봅니다.

첫째 착각, 확증 편향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강력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확증 편향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 증거는 수용하고 일치하지 않는 증거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A형 친구가 있다고 칩시다. 그 친구가 어느 날 화를 냅니다. 우리는 그냥 넘어갑니다. 며칠 뒤 그 친구가 메뉴를 고르며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때 우리의 뇌는 유레카를 외칩니다. "확실해! 역시 A형이라 소심하네." 활발한 A형을 보면 너는 특이한 A형이라며 예외로 칩니다. 반면 소심한 A형을 보면 역시 혈액형은 사이언스라고 확신합니다. 수많은 성격 중 혈액형 틀에 맞는 행동만 기억에 남기기 때문에 혈액형 이론은 언제나 맞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둘째 착각, 자기 충족적 예언 (낙인 효과)
더욱 확실한 것은 자기 충족적 예언입니다. 사회적 기대가 실제로 사람의 성격을 만들어버리는 현상입니다.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계속 말합니다. 너는 O형이라서 친구가 많겠구나, 너는 O형이라서 씩씩하네. 이런 말을 계속 듣는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합니다. 소심해지고 싶어도 나는 O형이니까 대담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행동합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O형의 성격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한 게 아니라 혈액형에 대한 믿음이 성격을 만든 것입니다.
셋째 착각, 바넘 효과의 확장
혈액형별 성격 묘사를 보면 대부분 모호합니다. A형은 신중하다고 합니다. 누구나 중요한 일엔 신중하게 처신합니다. B형은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고 합니다. 어떤 유형의 혈액형이라도 고집부릴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보편적인 정의는 바넘 효과와도 맥이 통합니다.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특징을 특정 혈액형의 고유한 특징인 양 포장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해석입니다.

바넘 효과의 배경에는 19세기 최고의 서커스 단장과 20세기 심리학자의 흥미로운 실험이 있습니다. 테일러 바넘(P. T. Barnum)은 19세기 미국에서 서커스와 기괴한 전시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사업가입니다. 영화 <위대한 쇼맨>의 실존 모델이기도 하죠. 그는 대중이 무엇에 열광하고 속아 넘어가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해당할 법한 모호하고 일반적인 말로 관객들의 성격을 맞히는 쇼를 선보였는데, 사람들이 이를 자신만의 특별한 이야기로 믿으며 환호하는 모습에서 바넘 효과라는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이처럼 막연한 현상을 과학적인 실험으로 증명해낸 사람이 바로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Bertram Forer)입니다. 1948년, 그는 학생들에게 성격 검사를 실시한 뒤 며칠 후 결과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포러는 학생 개개인의 답변은 무시한 채,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결과지를 주었습니다. 그 내용은 신문의 별자리 운세에서 짜깁기한 모호한 문장들이었죠. 이 결과가 당신의 성격과 얼마나 일치합니까?"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5점 만점에 평균 4.26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놀라운 결과이죠. 실험을 통해 사람들은 보편적 특성을 개별적 진실로 착각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포러 효과(Forer Effect)라고도 부릅니다.
바넘이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현상을 만들었다면 포러는 실험을 통해 원리를 밝혀낸 것입니다. 바넘 효과의 핵심 메커니즘은 다음의 네가지로 요약됩니다. ①모호성입니다.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②긍정성입니다. 비판보다는 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습니다. ③권위를 이용합니다. 검사지나 전문가(혹은 유명 점술가)라는 권위를 빌립니다. ④듣는 사람의 주관적 검증입니다. 듣는 이가 자신의 경험 중 그 말에 들어맞는 사례만 골라내어 믿는 것입니다. 이제 혈액형과 MBTI 결과지를 보실 때, 바넘 효과를 상기하시면서 검사 결과지를 한 번쯤 의심해 보는 재미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복잡함을 싫어하는 게으른 뇌
우리는 왜 혈액형 성격의 틀을 버리지 못할까요? 인간의 뇌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뇌는 에너지 소모를 싫어합니다. 사실 뇌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1.4 킬로그램의 뇌가 사람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약 20퍼센트를 소모합니다. 뇌는 스스로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뇌의 모든 부분에 전등을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활동하지 않는 뇌의 부분은 소등합니다. 따라서 뇌는 복잡한 것을 싫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전기를 사용해야 하니까요. 뇌는 단순한 것을 좋아합니다. 뇌는 그렇게 특화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혈액형이라는 틀을 쓰면 단 1초 만에 상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부장님은 B형이라서 저래 라고 단정 지으면 마음이 편합니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단순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혈액형 성격설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프레임 밖의 사람을 바라 보자
혈액형 성격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진실로 믿는 순간에 타인에 대한 편견의 색안경을 끼게 됩니다. 바로 프레임 (Frame) 입니다. 다양한 사람의 성격을 네가지 유형으로 진단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1부 첫머리에서 소개 드린 배우 김성수는 B형, ISFJ 의 성격이었습니다. B형의 정열적이고 행동적인 면은 ISFJ의 내향적이고 책임감 있는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수혈할 때를 제외하고는 혈액형을 잊으십시오. 당신 앞의 A형 친구는 소심한 게 아니라 당신을 배려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B형 친구는 다혈질인 게 아니라 열정이 넘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A형도 O형과 B형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주위에는 많습니다. B형도 타인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고작 4가지 유형으로 가두기에는 너무나 다채롭고 신비로운 인간입니다. 이제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결정 하는 태도는 잠시 내려 둠이 어떨까요? 찾아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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