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이런 질문을 합니다. 에니어그램 몇 번 유형이세요? 에니어그램(Enneagram)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에니어(Ennea)는 숫자 아홉(nine)을 뜻합니다. 그라모스(Grammos)는 도형 또는 점(point)을 의미합니다. 즉, 에니어그램은 아홉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도형이라는 뜻입니다. 에니어그램은 사람의 성격을 아홉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심리 도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스트레스를 받고 성장하는지도 보여줍니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성격 진단 도구입니다. 그런데 에니어그램은 성격 유형뿐만 아니라 마음의 수준도 알려 줍니다. 지금 진단을 받는 사람의 마음 수준이 건강한지, 불건강한지, 보통 수준인지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를 마음의 발달 수준(Levels of Development)이라고 합니다. 같은 성격이라도 발달 수준에 따라 천사가 되기도 하고 악마가 되기도 합니다.
발달 수준은 총 9단계의 세분화된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9단계는 다시 크게 세 가지 범위로 나뉩니다. 가장 건강한 범위(Level 1~3),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범위(Level 4~6), 그리고 가장 힘든 불건강한 범위(Level 7~9)입니다. 이런 수준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시시각각 오르내립니다. 마치 빌딩의 엘리베이터와 같습니다. 발달 수준이 높다는 것은 마음이 자유롭고 건강하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낮다는 것은 마음이 감옥에 갇혀 고통받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발달 수준은 에니어그램 전문 검사지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손 쉬운 방법은 일상 속에서의 자기 관찰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이 몇 층에 머무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가장 쉬운 구별법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습니까? 이 질문 하나로 당신의 마음 층수를 알 수 있습니다.
건강한 수준 (Level 1~3)
마음의 엘리베이터가 가장 높은 곳, 펜트하우스에 있습니다. 건강한 범위입니다. 이곳의 특징은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입니다. 이들은 가진 것이 많아서 풍요로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사랑과 지혜로 꽉 차 있기 때문에 늘 충만한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 유형이 가진 약점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예를 들어, 1번 유형(개혁가)은 완벽주의와 비판에서 벗어나 너그러워집니다. 7번 유형(낙천가)은 쾌락 추구에서 벗어나 깊은 만족감을 느낍니다. 이들은 인간관계를 가질 때 이익의 여부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의 황금률인 받은 만큼 준다 또는 준만큼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고 베푸는 것입니다. 보답을 바라지 않습니다. 타인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됩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사랑과 지혜를 나눕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려 봅니다. 그는 스스로를 바보라 칭했습니다. 평생을 낮은 곳에서 어려운 이웃과 함께했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었고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각막까지 세상에 내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건 없는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그 자체로 행복했습니다.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재난 상황을 상상해봅시다. 위험을 무릅쓰고 낯선 사람을 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구하면 이득이 뭐지 라고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를 외면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건강한 수준의 사람들이 보이는 본질적인 인간애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오직 인류의 발전과 아름다움을 위해 바치는 예술가나 과학자도 이 범주에 속합니다. 명성이나 돈을 좇기보다는 순수한 탐구 정신과 창조적 열정으로 작품을 만들거나 연구에 몰두합니다. 그들의 작품과 발견은 인류 전체에 큰 공헌이 됩니다. 이들은 그 과정 자체에서 깊은 만족과 행복을 느낍니다.
갓난아기를 돌보는 어머니의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아기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어머니는 조건 없이 사랑하고 보살핍니다. 밤잠을 설쳐도, 힘든 육아에도 불구하고 아기의 미소 하나에 모든 피로가 녹아내립니다. 이것이 바로 건강한 수준에서 경험하는 희생을 넘어선 기쁨입니다. 이들이 느끼는 행복은 충만감입니다. 많이 나눌수록 내면이 더 채워지는 역설적인 기쁨을 맛봅니다. 특히 타인에게 공헌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깊은 행복감을 얻습니다. 긍정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만과 로버트 에먼스 같은 학자들은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건강한 수준의 사람들은 매 순간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감사할 것을 찾아냅니다. 이 수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집착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욕심, 나의 옳음, 나의 두려움을 내려놓을 때 마음은 가벼워져 위로 떠오릅니다. 자신을 초월하는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진정한 평화와 환희입니다.
보통의 수준 (Level 4~6)
엘리베이터가 중간층으로 내려옵니다. 우리가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보통의 수준, 보통의 범위입니다. 이곳은 시장바닥과 같습니다. 모든 관계는 거래(Deal)입니다. 이곳에서는 인간관계의 황금률이 철저히 적용됩니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얼핏 훌륭해 보입니다. 하지만 속뜻은 조금 다릅니다. 내가 준 만큼 너도 내놔입니다.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정확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손해 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보상 없는 희생은 회피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은 보통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들의 사회적 관계도 보통의 수준에서 이루어 집니다. 나의 진짜 모습보다는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 애씁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는 이미지를 지키려 합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합니다.
직장인 김 대리를 봅시다. 동료의 결혼식에 10만 원의 축의금을 냈습니다. 그런데 자기 결혼식에 그 동료가 5만 원만 냈습니다. 김 대리는 은근히 화가 납니다. 내가 어떻게 했는데! 라며 억울해합니다. 자신이 베푼 만큼 돌려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회식 자리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오늘은 내가 1차 샀으니 2차는 네가 사야지? 계산적인 태도가 은연중에 드러납니다. 상대방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1차는 친구가 샀으니 2차는 내가 사야지. 일을 나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난번에 야근했으니 이번에는 네 차례야. 보통 수준의 사람들은 공정한 거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정한 거래는 인간관계의 황금률이 된 것입니다. 가족 관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부부 사이에도 은근한 거래가 존재합니다. 내가 설거지했으니 당신은 청소기 돌려. 역할을 공정하게 분담해야 가정의 평화가 유지됩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한다고 느끼면 불만이 쌓입니다. 나는 이렇게 해주는데, 당신은 왜 안 해줘?라는 말이 당연히 나옵니다. 모두 보통 수준의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키울 때도 네가 숙제를 잘하면, 게임 한 시간을 허락해 줄게와 같은 거래가 발생합니다. 사랑과 보상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친구 관계에서도 품앗이가 중요합니다. 친구가 이사할 때 도와주었습니다. 다음에 내가 이사할 때 그 친구가 도와주지 않으면 서운합니다. 나는 늘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넌 왜 내 고민은 들어주지 않아?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생일 선물도 가격대를 맞춰서 주고받는 것이 보통입니다. 서로에게 적절한 기대를 합니다. SNS 활동도 보통 수준에서 많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멋진 사진을 올립니다. 좋아요와 댓글에 기분이 좌우됩니다. 내가 올린 게시물에 반응이 없으면 실망합니다. 내가 이만큼 보여줬으니, 이만큼의 관심은 받아야 해 라는 무의식적인 기대가 깔려 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며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이곳의 행복은 공정함에서 옵니다. 손해 보지 않았을 때는 안도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러나 내가 헌신하거나, 관심을 보였거나, 물질을 주었거나 하면 반드시 그정도 수준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그 정도가 안되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신경질이 나며, 불안해 지기도 합니다. 마음이 보통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이 정당하게 인정받았을 때 기뻐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만 잠시 행복합니다. 칭찬을 받으면 칭찬을 돌려줍니다. 무시를 당하면 똑같이 무시합니다. 마음은 인간관계의 황금률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고 받음, 받고 주는 것의 계산이 명확합니다. 그러한 계산과 저울질로 쉽게 피곤해집니다. 때로는 행복감은 짧고 갈등이 길어 지기도 합니다. 친구사이, 부부관계, 친족관계, 모든 사회생활의 기준이 공정한 주고 받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불건강한 수준 (Level 7~9)
마음에 경고음이 울립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깊은 곳으로 추락합니다. 불건강한 범위입니다. 이곳의 마음은 블랙홀과 같습니다. 끝없이 흡수하려 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오직 받기만을 원합니다. 상대에게 줄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세상이 나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은 그저 나의 욕구를 채워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모든 관계를 착취의 대상으로 봅니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성격 유형이 가진 가장 어둡고 병적인 모습이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8번 유형(리더자)은 지배적인 폭력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4번 유형(예술가)은 극심한 우울과 자기 파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깊은 곳으로 떨어지게 될까요? 감당할 수 없는 큰 스트레스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거나, 어린 시절 깊은 상처(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심한 충격을 받아 건강한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자아(ego)를 지키려는 방어기제가 과도하게 작동하여 오히려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게 됩니다. 현실 감각을 잃습니다. 자신의 망상 속에 갇힙니다. 타인을 적으로 간주하며 극심한 피해의식에 시달립니다.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이 사람을 지배합니다.
뉴스에서 접하는 '가스라이팅' 사건을 생각해 봅시다. 연인이나 가족에게 정신적 지배를 가하여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 합니다. 상대방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합니다. 이는 상대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소유물로 여기는 불건강한 마음 상태입니다.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을 통제하려 드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작은 시비에도 크게 분노하며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느낍니다. 내가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자 라는 극단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합니다. 타인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도 자신을 해치려는 의도로 오해합니다. 극심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알코올, 도박, 마약 등 각종 중독에 빠진 사람들도 불건강한 수준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쾌락에 의존합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회피일 뿐, 결국 자신을 더욱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습니다.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반복하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줍니다. 사회생활을 완전히 단절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회피하고, 외부 세계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합니다. 때로는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비난하거나 해치려 한다고 믿으며 극심한 고독과 공포 속에서 살아갑니다. 불건강한 마음의 수준에는 진정한 행복이 없습니다. 오직 고통의 회피만 있을 뿐입니다. 혹은 타인을 통제하고 파괴하면서 느끼는 가학적 쾌락을 행복이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잠시뿐입니다. 마음은 늘 전쟁터입니다. 끔찍한 고독과 두려움이 지배합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현실 감각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결국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심각한 경우에는 정신병원에서 일상을 보내게 됩니다.

마음 수준을 높이기
마음의 수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매 순간 변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의 층계를 오르내립니다. 아침에는 건강했다가도 운전 중 끼어드는 차에 불건강해지기도 합니다. 다시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보통으로 돌아옵니다. 자신의 마음 수준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알아차림은 내가 지금 가면을 쓰고 있나요?(보통 수준). 내가 지금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미움과 원망이 마음을 가득 채우나요?(불건강 수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있나요?(건강 수준). 이와 같이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수준은 바뀝니다.
마음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려놓을 용기도 필요합니다. 우리를 불건강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대부분 집착입니다. 나의 욕심, 나의 정의, 나의 불안, 타인의 시선에 대한 집착입니다. 관계의 질을 바꾸는 것도 영향을 미칩니다. 마음의 수준이 불건강한 상태라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은 선택입니다. 혼자서는 빠져나오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용기 내어 힘듭니다. 도와 주세요 라고 말할 때 치유의 문이 열립니다. 보통의 상태라면 계산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손해 보면 어때?라는 마음으로 먼저 베풀어 봅시다. 작은 친절이 나에게 더 큰 기쁨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연습을 해봅시다. 건강한 상태라면 이미 훌륭합니다. 이 상태를 유지하여야 합니다. 당신의 사랑과 지혜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십시오. 이는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빛이 됩니다.
최근 긍정심리학에서 추천하는 방법은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세 가지 감사한 일을 떠올려 봅시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따뜻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해,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감사해 등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 봅시다. 저녁 잠자리에 들 때도 오늘 감사한 일 세가지를 상상해 보세요. 물론 사소한 것들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더 높은 발달 수준으로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처럼 모두가 성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밥값은 하는 사람, 받은 만큼은 돌려주는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가끔은 손해를 보더라도 넉넉히 웃어주는 여유를 가져봅시다. 그때 당신의 마음 엘리베이터는 위층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결국 마음의 건강과 불건강은 나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나는 행복하게 하는 것도,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도 지금 자신의 마음 상태가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환경의 영향도 무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행복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수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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