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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철학자와 행복

이성을 거부한 데이비드 흄의 불꽃 같은 삶(1)

by 행복 리부트 2026. 3. 15.

혹시 고민에 빠졌을 때, 차가운 이성으로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는 않습니까? 300년 전 유럽을 뒤 흔든 한분의 철학자는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이성을 가장 맹신했던 계몽주의 시대에 태어나 오히려 감정의 중요성을 외쳤던 위대한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입니다.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유쾌하고도 깊은 사유의 흔적은 오늘날 우리의 행복을 재부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을 제공합니다.

변호사가 되기 싫었던 천재

흄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탓에, 어머니는 그가 안정적인 변호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어린 흄은 어머니의 뜻을 따라 법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성적이고 차가운 법전보다는 고전 문학이나 철학 책을 몰래 읽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흄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보며 우리 데이비드는 참 착하지만, 정신은 약해빠진 아이다 라고 한탄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사람들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사유에 빠지는 것을 약점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눈에 걱정거리였던 약한 정신의 사람은 훗날 인류의 사상을 바꿀 위대한 철학의 씨앗을 뿌립니다.

세상에 죽은 채로 태어난 책

변호사의 길을 포기한 흄은 심각한 우울증을 겪은 뒤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군대 서기로 일하며 철학적 탐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모든 지식은 감각과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경험론(Empiricism)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그때, 고독한 사유의 결과물이 위대한 저작, <인간 본성에 관한 논, Treatise of Human Nature, 1739>입니다. 흄은 이 책에서 인간 행동의 진짜 동력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책의 내용이 너무 급진적인 탓에 대중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습니다. 흄 스스로 이 책은 세상에 죽은 채로 태어났다고 자조할 정도였지요. 젊은 천재의 도전은 그렇게 실패로 끝나는 듯했습니다.

착한 데이비드, 진흙탕에 빠지다

그는 날카로운 이성 비판의 선구자였지만 실제 성격은 놀라울 정도로 둥글둥글하고 사교적이었습니다. 그는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사랑해 상당히 뚱뚱했고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지식인들은 그를 착한 데이비드라 부르며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의 유쾌하고 실용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뚱뚱한 흄이 길을 걷다 진흙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생선 장수 아주머니가 그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흄이 소문난 무신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아주머니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으면 절대 구해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회의주의 철학자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화를 내는 대신, 껄껄 웃으며 아주머니가 시키는 대로 기도문을 완벽하게 외웠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구출되었죠. 그는 훗날 그 아주머니는 내가 만난 가장 영리한 신학자였다며 유쾌하게 회상했습니다. 독단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유연함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루소와의 악연, 이성과 감정의 충돌

당대 최고의 사상가였던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와의 일화는 철학계의 유명한 막장 드라마입니다. 마음씨 착한 흄은 급진적인 사상으로 쫓기는 신세였던 루소를 위해 연금을 마련해 주고 영국으로 피신시켜 주었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피해망상증을 앓던 루소는 흄이 자신을 조롱거리로 만들려 한다고 오해하며 끔찍한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선의를 베풀고도 뒤통수를 맞은 흄은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노라는 감정에 잡아먹히는 대신,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사실관계를 차분히 해명하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했습니다. 감정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현명함을 몸소 보여준 것입니다.

도덕의 기준은 차가운 이성이 아닌 따뜻한 공감

흄 철학의 정수는 '이성은 정념(Passion)의 노예일 뿐이다'입니다. 여기서 정념은 자연스러운 감정과 욕망을 뜻합니다. 그는 인간이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 역시 이성적 추론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보고 슬퍼하고, 타인의 기쁨을 보고 함께 즐거워하는 자연스러운 감정, 즉 공감(Sympathy)이 바로 도덕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파격적인 주장은 오늘날의 도덕 심리학과 감정 윤리학을 탄생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의 농담

1776년, 흄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전기 작가 제임스 보즈웰(James Boswell, 1740~1795)은 무신론자가 죽음 앞에서 얼마나 벌벌 떨까라고 생각하며 그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흄은 믿기지 않을 만큼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심지어 저승으로 영혼을 안내하는 뱃사공 카론(Charon)을 언급하며 농담까지 건넸습니다. 카론에게 내 철학이 사람들의 미신을 타파할 때까지 세월을 조금만 더 주시오라고 부탁할 텐데, 카론이 그때까지 기다리려면 수백 년은 걸리겠소!라며 억지로 나를 배에 태울 것 같네. 죽음 앞에서도 유쾌함과 이성을 잃지 않는 모습에 보즈웰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카론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저승의 뱃사공입니다. 죽은 자들의 영혼을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흐르는 강(스틱스강 또는 아케론강)을 건너 하데스의 지배를 받는 명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카론의 배를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행료를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장례를 치를 때 죽은 자의 입속이나 혀 밑에 오볼로스(obolos)라는 동전 한 닢을 넣어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만약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해 동전이 없는 영혼은 배를 타지 못하고 강가를 100년 동안 구천처럼 떠돌아야 했다고 전해집니다.

 

평생의 절친이었던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흄이 세상을 떠난 후 이렇게 추도했습니다. "내가 아는 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하게 지혜롭고 덕성을 갖춘 사람이었다."

흄이 전하는 삶의 철학

흄의 삶과 철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종종 머리인 이성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다 깊은 불행에 빠지곤 합니다. 이럴 때 흄은 이렇게 말하죠.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지 말라고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기쁨, 좋은 사람들과 대화할 때의 즐거움, 그리고 타인의 아픔에 함께 눈물지을 수 있는 따뜻한 공감의 능력, 이런 자연스러운 감정들에 솔직해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시작입니다.

완벽해지려 애쓰기보다는 한 번 더 웃고 한 번 더 공감하는 하루를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계몽의 시대 한가운데서 가장 따뜻한 마음을 품었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우리에게 남긴 삶의 철학입니다.

다음은 흄 철학의 핵심을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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